저는 전투 경찰로 병역 의무를 마쳤습니다. 논산 훈련 후, 김포공항 경비대를 거쳐, 서대문 경찰서 관내의 프랑스 대사관 경비를 하다가 전역했습니다. 그 당시 수경(병장) 월급이 6천 원인데, 이와 별도로 프랑스 정부에서도 매달 10만 원을 주었습니다. 이런 거금을 받으면 광화문 나가서 <민법총칙>(곽윤직) 등의 법학 기본서들과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같은 시집들, 문학 평론집, 철학 서적 등을 사곤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도 한국 나갈 때면, 꼭 책방에 들러 오랜 관심 분야인 성령론과 신화(神化) 관련 코너를 살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눈에 들어온 책들 중에 <성령, 영으로 오신 하나님>(대한기독교서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책 안에 아침에 묵상한 아래 본문을 다룬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 가장 깊은 곳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요 7:37-39).
요한복음에는 평범해 보이나 난해한 구절들이 제법 있습니다. 위 본문도 그중 하나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위 대목을 다룰 때 ‘생수의 강들’을 많이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 바로 뒤의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개역성경을 읽을 때는 이 구절을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개역성경에 있는 1) ‘저희에게’(‘given’), 2) ‘성’(聖)에 해당되는 ‘하기온’, 3) 정관사 ‘The’가 헬라어 원문에는 없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허브 바이블 앱이 소개하는 수십 개의 영어 번역들을 원문과 대조해서 읽어 본 결과, “for [the] Spirit was not yet”이라고 번역한 다아비 역이 가장 원문과 일치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위 회복역 한글 본문도 이런 번역과 일치합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위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인데, 사실 이에 대한 힌트는 바로 앞의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아서’에 있습니다. 더 추구해 본 결과, 이 말은 예수님의 인성이, 장차 부활하신 후에 다시 죽지 않는 인성이 되실 것을 가리킴을 알게 되었습니다(눅 24:26, 고전 15:43 상, 빌 3:21). 따라서 위 본문의 (그) 영은 논리상 예수님의 부활한 인성이 포함된 어떤 영이라는 잠정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 후 이런 결론을 더 확신하게 된 것은, 1860년대에 네덜란드 개혁교회 총회장을 6회나 역임했던 앤드류 머레이가 <그리스도의 영> 제5장에서, 위 (그) 영이 예수님의 인성이 포함된 “신인(神人)의 영”이라고 말한 것을 읽게 된 후입니다(“And the Holy Spirit could come down as the Spirit of the God-man ?most really the Spirit of God, and yet as truly the spirit of man”).
삼위의 제3 격인 성령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따라서 ‘성령’ 안에는 인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참 사람이신 예수님이 부활 후에 생명 주는 영이 되셨고, 그 영 안에는 그분의 부활하신 인성이 포함된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십수 년 동안 소위 성령론을 다룬 국내외 신학자들의 저서나 논문들을 최대한 찾아서 읽어보았지만, 이런 관점으로 위 본문에 접근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책방을 뒤지다가 아래와 같이 말하는 책을 만났을 때의 제가 느꼈던 반가움과 기쁨은 말로 다 하기 어려웠습니다. 드디어 한국 교계에도 이 진리를 깨닫고 전하는 분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의 인성은 단순히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은 하나님의 신성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함께 가진 영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의 영이 순수한 신성만 가지고 계셨다면, 신약시대의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자 또한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신성과 더불어 인성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까지 성령께서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던 이유입니다. 이것이 … 요한복음 7:38-39와 16:7의 의미입니다.”(성령, 영으로 오신 하나님, 2009, 94쪽).
사실, 선입관만 내려놓는다면 위 본문은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위 본문에서 “나에게로 와서 마시십시오”, 혹은 “나를 믿는 사람”이 “받을 (그) 영”을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영접하면), 당연히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다만 그분이 부활하셔야 부활하신 인성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 있으셨습니다(고전 15:45 하, 요 3:6). 요약하면, 위 본문이 말하는 영은 삼위 전체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한 인성이 포함된 영이십니다. 오, 우리 안에 계신 이 영은 초기 믿는 이들을 박해하던 다소의 사울에게,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분이십니다!
이러한 묵상과 추구를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다 받는 영의 바른 정체성이 지금까지 다수에게 가려져 있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비록 소수이지만 이 영에 대해 바르게 보고, 책을 써서 증거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제 안에 깊은 감사가 있습니다.
오 주님, 당신은 당신의 부활하신 인성이 포함된 복합적인 영이십니다.
매 순간 이 영을 마시고 누려서 이 영으로 충만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