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79회 - 차에 엔진이 켜져 있어요.
에세이
청지기 , 2022-04-22 , 조회수 (187) , 추천 (0) , 스크랩 (0)


제가 사는 이곳에서는 차가 곧 발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대중교통 수단이 발달한 한국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에 미국에 온 후에, 처음 10개월은 차 없이 살았습니다. 그 후 2천 불짜리 중고차를 샀고, 중고차 타는 사람들이 겪는 온갖 경험을 저도 다 해보았습니다. 그 후 또 다른 중고차를 거쳐, 지금은 리스가 만료된 차를 소유하여 타고 다닙니다. 여기서는 대중적이면서도 엔진 하나만은 잘 만들었다는 말을 듣는 차입니다.

 

  그런 차의 거의 안 들리는 엔진 소리 때문에 겪은 일화입니다. 몇 해 전에 국제 집회 참석차 한국에서 오신 몇 분을 숙소에서 픽업해서, 집회 장소까지 모셔드린 때가 오후 3시가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그 후 차에 시동이 계속 켜져 있던 것을 알게 된 것은, 저도 함께 두 번의 집회를 참석한 후에, 다시 숙소로 가려고 차 문을 열었을 때였습니다. 무려 6시간가량 엔진이 공회전을 한 것입니다. 엔진 소리가 잘 안 들리고, 버튼으로 시동을 켜고 끄는 차라 생긴 해프닝이었습니다. 두어 번 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 

여러분 안에서 운행하시어(빌 2:13).

 

  아침에 노부부 형제자매님과 함께 위 말씀, 그리고 큐티 책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문장을 돌아가며 여러 번 선포하고 또 마음에 새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문득 위 차 엔진 사건이 생각나서 대략 이런 식으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우리 영 안에 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마치 자동차 엔진과 같으십니다. 우리의 혼(특히 우리의 생각과 의지)은 그 차에 있는 기어 역할을 하고, 은 차바퀴처럼 기어 상태에 따라 직진, 중립, 혹은 후진을 합니다.”

 

  사실 연로하신 분들의 이해를 돕도록 이런 예를 들었지만물질세계의 어떤 것으로 심오한 영적 사실을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가장 큰 차이는 자동차 엔진은 힘만 있지만,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는 분은 인격체이시므로 그분 자신만의 생각, 감정, 의지가 있으십니다. 따라서 비록 우리의 손이 차 ‘기어’를 움직이더라도, 자신의 의도대로가 아니라 ‘엔진’에 해당되시는 분의 의도에 따라 그리해야 합니다.

 

  묵상이 여기까지 이르자 제 자신이 많은 때 제멋대로 ‘차’를 몰고 다녔다는 사실이 빛 가운데 폭로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주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조금 더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이 기준으로 주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삶을 재어 보았을 때, 그분들은 아래와 같이 절대적으로 자신 안의 ‘엔진’에 해당하시는 분의  의도에 따라 ‘기어’를 움직이며 살았다는 점이 만져졌습니다.

 

  먼저, 주님은 빌립보서 2장 전반부를 볼 때 ‘엔진’에 해당되는 아버지의 의도를 따라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방향으로 ‘기어’를 움직이며 사셨습니다. 이것은 좀 더 구체적으로 주님이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라고 하셨고, 그분이 하신 많은 “말씀”도 스스로 하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께서 그분의 일을 하신 것”이라고 고백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요 5:30, 14:10). 즉 그분이 하신 모든 말씀은 그분 안의 엔진에 해당되는 아버지의 뜻의 표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했지만, 그러한 수고와 분투는 자기 멋대로 “차”를 끌고 다닌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바울은 자신 안에서 “운행하시는 분의 운행에 따라 수고하고 분투”했습니다(골 1:29). 그리고 그 목적은 “각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28절). 물론 이것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엔진’ 역할을 하신 결과일 것입니다. 한 예로 바울은 어떤 사람을 용서할 때 자기 마음대로가 아니라, 자신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인격”(혹은 얼굴, 프로소폰)이 지시를 따라서 그렇게 했습니다(고후 2:10, 4:6 참조).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우리 영 안에 살고 계시지만, 많은 때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엔진과도 같으십니다. 그러다 보니, 그분의 존재를 잊은 채 임의로 이것저것을 하며 살 때가 많았습니다. 이 아침에 깊은 돌이킴이 있습니다.

 

  이러한 추구와 묵상을 통해 다음 두 가지가 더 밝아졌습니다. 1) 순종하여”,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내십시오”(2:12). 혹은 이 세상에서 “발광체들로 빛나서 생명의 말씀을 밝히라”(15-16절)는 말씀은 우리 스스로는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2) 오직 ‘기어’를 움직이는 우리의 손이 우리 안에서 지금 운행하고 계시는 ‘엔진’이신 그분의 공급과 지시를 따를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 깊이 다가옵니다. 사실 그분은 그냥 ‘엔진’이 아니시며, 우리가 뜻을 세우고 행하게 하시는 우리 삶의 주관자이십니다.

 

 

 

오 주님, 당신은 과정을 거쳐 완결되시고 지금은 우리 영 안에서 운행하고 계십니다. 

저희로 매 순간 이 운행하심을 따라 뜻을 세우고 행동하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