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평창동 인근에 삼각산이라고 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만해도 그곳에는 적당한 기도처가 산재해 있어서 기도하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았습니다. 강서구 방화동 쪽에 살 때 한동안 금요 소그룹(구역 예배)이 끝나면, 몇 분 지체들과 그곳에 기도하러 가곤 했습니다.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기도하다가, 집에 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여의도에 있던 직장으로 출근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비닐을 뒤집어쓰고 기도하기도 했고, 여기저기서 들리던 ‘주우여~’ 혹은 ‘아버지~!’라고 외치는 소리가 기도 분위기를 한껏 돋우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침에 누렸던 아래 말씀은 이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사도 베드로가 한 권면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는 분을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여러분이 체류자로 사는 동안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십시오(벧전 1:17).
우리는 예수님 믿으면 기쁘고, 평강이 있고, 불안함과 두려움이 없게 된다는 말씀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위 말씀은 거듭난 사람도 행위에 따라 심판받고, 심지어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겁을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듣기에 달콤한 말뿐 아니라 이런 ‘단단한 음식’의 말씀도 있어야 우리의 믿음 생활이 균형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래 내용은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던 위 본문을 주님 앞에서 조금 더 추구하고 묵상한 결과입니다.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 성경에는 타락한 천사들에 대한 심판을 포함한 다양한 심판이 있습니다(벧전 2:23, 4:5-7, 벧후 2:3-4, 9, 3:7). 그런데 위 본문은 그중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 즉 그분의 자녀들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흔히 믿는 이들도 심판받지만, 오직 ‘큰상’이냐 ‘작은 상’이냐의 심판만 있고 ‘벌’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시대적인 경륜을 아는 사람들은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있게 될 혼인 잔치 들어가고 못들어 가고의 심판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추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여기서의 심판은 J. N. 다아비의 견해를 인용 소개한 아래 각주처럼, 믿는 이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아버지로부터 받고 있는 일종의 ‘징계’에 해당하는 심판이라는 것입니다(히 12:5-10).
여기서 베드로는 “마지막에 있을 사람에 대한 심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셨다.’(요 5:22). 여기에서 말하는 심판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매일 그분의 자녀들에게 집행하시는 통치적인 심판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여러분이 체류자로 사는 동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다비).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가족에게 행하시는 심판이다(벧전 4:17)(벧전 1:17, 각주 2).
두려운 마음으로 지내십시오 : 성경에는 언뜻 보면 서로 모순되는 듯한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을 사랑하지 마십시오”(요일 2:15)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어”(요 3:16)가 그것입니다. 두 구절 모두 원문이 ‘코스모스’(2889)로 같습니다. 그러나 전자는 현재 사탄이 왕으로 다스리고 있는 ‘세상의 체계’(조직)를 가리키고, 후자는 그 ‘세상의 구성원들’(사람)을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두려워 말라’ 혹은 ‘놀라지 말라’는 말씀에 더 익숙한데(사 41:10, 눅 12:32), 위 말씀은 우리에게 사는 날 동안 ‘두려워하라’고 말하니 처음에는 잘 납득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래와 같은 관련 말씀들과 각주를 찾아본 후에, 여기서의 두려움은 겁먹거나 무서워하는 두려움이 아니라(히 2:15, 딤후 1:7, 마 14:26-27), ‘건강하고도 진지한 신중성’ 혹은 ‘거룩한 두려움’을 가리킴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와 같이 거룩한 두려움, 곧 우리를 이끌어 거룩하게 행동하게 하는, 건강하고도 진지한 신중성을 나타낸다”(각주 4).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존중하십시오. 집 하인 여러분, 여러분의 주인에게 모든 일에 두려운 마음으로 복종하십시오. 착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뿐 아니라 못된 주인에게도 복종하십시오”(벧전 2:17-18). “남편들은 두려운 마음을 지닌 여러분의 순결한 품행을 눈으로 지켜봅니다”(3:2). “여러분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 … 언제든지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그러나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답변하십시오”(3:15-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룹시다”(고후 7:1).
위와 같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무엇’ 때문에 사는 동안 두려워해야 할지가 조금 정리가 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현실적인 손실과 고통이 있습니다. 지난해 6월에 있었던 가벼운 접촉 사고 때문에, 상대방 측 변호사로부터 50만 불이 넘는 터무니없는 청구를 받고 보험회사와 함께 처리하는 지난 1년여의 과정에서 주님의 주권적인 다루심을 깊이 느꼈습니다.
둘째, 우리의 불의와 부주의함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이 더럽혀질 수 있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가정과 일터와 그 밖의 사회생활에서 우리 때문에 거룩, 사랑, 공의, 빛이라는 하나님 가정(가문)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셋째, 아버지의 거듭된 경고에도 결국에는 맛을 잃은 소금처럼 실제적인 영향력이 없어진 ‘무익한 종’이 되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오 주님, 이러한 엄중한 의의 말씀을 마음을 열고 참되게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