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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11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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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야훼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말할만큼 친밀하고 가까왔다 (민,12;8) 얼굴을 맞대고 말하는 것은 서로 숨김없이 없다는 것이다 모세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분의 심중의 뜻을 숨기지 않았다 하나님이 그 분을 드러내신 만큼(계시한만큼)모세는 하나님을 알수 있었다
모세가 처음부터 하나님을 그토록 친밀한 방식-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방식으로 아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의 머리털하나까지 셀만큼 모세의 모든 것을 알았지만 모세가 하나님을,주의 뜻을 헤아리기까지는 실로 시간안에서 많은 연단을 받아야했고 마침내 모세는 얼굴과 얼굴을 맞댈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수 있었다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가 하나님과 그토록 친말하고 가까운 사이엿다면 신약을 대표하는 바울또한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닿을 만큼 가깝고 친밀한 사이였다
바울은 주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어린 아이일때는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하나님을 알지만 장성한 어른이 되면 얼굴과 얼굴을 맞댄것처럼 온전히 주를 알게된다고 신앙을 고백한다 (고전13;12)
이어서 사도는 믿음 소망 사랑을 말하며 그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증거한다 생명과 사랑은 영원한 것인데,생명은 사랑의 존재적 근원이며 사랑은 생명의 속성이기에 생명의 자람이 주께 가까이 가는 것 -곧 얼굴과 얼굴을 맞닿을만큼 -이라면 생명이 자라는만큼 사랑의 크기도 커져가는 것이다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는 믿는 이는 생명의 속성인 사랑의 표현도 그만큼 비례하여 커지는 것이다
주와 얼굴과 얼굴을 맞닿는 것은 믿는 이가 주를 행하여 걸어가는 표시이며 주님 자신이 믿는 이의 푯대임을 증거하고 있다
성령으로 거듭난 모든 믿는 이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주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것인데,궁극적으로 모세나 바울처럼 얼굴과 얼굴을 맞닿을만큼 가깝게 주께 나아갈 것이다
믿는 이의 시선이 주께 고정되어 있다면 그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다 그가 주와 얼굴과 얼굴을 맞닿을 만큼 까까이 있을지는 알수 없지만 적어도 주의 낲을 피하여 도망하는 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주의 얼굴을 바라보는 자는 그가 순례의 여정에서 옳은 방향으로 서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의 낯을 피하여 무화과 나무 아래로 숨었고(창3;8) 죄의 소원을 이기지못하고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땅에서 우리하며 피하는 자가 되었다(창4;14)
세상에서도 죄를 지으면 낯을 들지 못한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죄인은 낯을 들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는데 주의 낯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주를 향하여 뒤돌아서는 것이다
이것이 주를 배반하는 것이다
주의 낯을 피하여 뒤돌아서면 그는 뱀의 낯을 향하여 서있는 것이다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께 부여받은 사명을 거역하고 주의 낯을 피하여 도망한 것은 그가 하나님과 등을 진것이다
등을 진다는 것은 원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출2;15에서는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달아나며
계12;14에서는 여자가 뱀의 낯을 피하여 독수리 날개를 받아 광야로 날아간다
모세는 바로를 등지고 원수가 되었고,여자와 뱀을 등지고 뱀과 원수가 되었다
오, 친구사이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허물없이 이야기를 하지만 등을 지고 서있는 원수와는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죄들을 처리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는 등을 지고 서있는 원수 사이일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들을 처리하시므로 하나님과 믿는 이 사이에는 죄가 없으며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달아날 일도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가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낯을 들지 못할 것이고 주의 낯을 피하여 뱀의 아가리 속으로 숨어 들어가야하기 때문이다
오, 죄인이 피할 곳은 뱀의 아가리 밖에는 없다 그곳은 바로 지옥이다 주의 낯을 피하여 도망가는 모든 죄인들은 다 뱀의 아가리 속으로 삼키울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이에게는 그가 어느 길위에 서 느냐라는 질문이 합당하지 않으며 그가 서있는 곳은 어느 방향인가가 문제가 된다
생명의 성장이란 믿는 이가 하나님을 향하여 가까이 가는 과정이며,이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뜻한다
우주 안에는 정반대의 두 방향을 가진 하나의 길이 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친밀한 사귐은 우리의 생각을 영안에 있게 한다
영의 생각은 육체의 생각과 달라 같은 환경을 가지고도 정반대의 방향을 가진 두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사람은 누구나 일생을 살면서 한번 쯤은 연애감정에 빠져보았을 것이다
연애를 하게되면 이성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게 되는데 만일 자기가 원하는 이성을 자기의 것(소유)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육신은 참을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또,원하는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을 때나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지 못했을 때,자기가 원하는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육체는 극심한 고통을 받으며 심한 좌절감에 빠져
"주여 왜 나에게 이런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주십니까?"라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환경이요 똑같은 상황이라도 영의 눈으로 보는 것과 육체의 안목으로 볼 때 정반대의 생각이 들어 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에 대하여 적극적으로는 생명을 주고 더욱 풍성한 생명을 주는 것과 소극적으로는 육체의 정욕대로 일어난 자아의 소원을 죽이는 하나의 목적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당신이 생각을 영에 두느냐 혹은 육체에 두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환경과 상황이라도 감사가 넘치든가 혹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당신 밖의 환경이 아니라 당신 안의 존재이다
당신이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것이 성령인가 아니면 육체인가
참 안식과 평안과 만족은 당신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는 전혀 상관없으며, 당신이 어떤 존재인가에 달려있다
욱체는 모든 것을 다 가져도 만족을 모르며,성령안에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그리스도 하나만으로 영원한 만족과 기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