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는 6.25 때 인민군 포격으로 아내를 잃은 후에, 새장가를 가면 아이들이 힘들어진다며 평생 혼자 사셨습니다. 어머니는 오 남매의 맏이로서, 외삼촌들과 이모들에게는 외할머니의 빈자리까지 채우시다가, 안산 김씨 집안으로 시집오셨습니다. 그리고 첫아들로 저를 낳으셨습니다. 그래 그런지 외할아버지는 초등학교 시절 방학을 맞아 외가댁에 가면 저를 많이 챙겨주셨습니다. 어린 저를 당신과 맞상을 하고 밥을 먹게 하셨고, 방학이 끝나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장에 가실 때 볏짚 하나를 가져와 제 발을 재어 가곤 하셨습니다. 장에서 돌아오실 때는 늘 제 발에 꼭 맞는 새 신발을 사 오셨습니다. 그분은 늘 제 ‘발’ 크기에 ‘신발’ 사이즈를 맞추셨고, 그 반대의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침에 아래 말씀을 묵상하고 추구하면서 문득 수십 년 전의 이 일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십니다(요 15:1).
위 본문을 처음 읽었을 때는 다 아는 당연한 내용 같고 별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천천히 음미하며 반복해서 읽고, 기도하고, 관련 자료도 찾아보는 중에, 이 짧은 말씀 안에 온 성경의 중심 사상이 녹아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뭐랄까 거대한 포도나무 한 그루가 제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대목과 관련하여 보통은 가지들이 ‘열매’를 맺는 방면이 강조됩니다. 그러나 저는 참포도나무 그 자체와 이 포도나무 한 그루를 향한 농부이신 아버지의 마음이 많이 누려졌습니다. 한 예로, 1) 참 포도나무는 언제부터 존재하였고, 2) 어떤 정체성을 가졌나 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 안에는 영원 전부터 이 참포도나무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 안에서 피조물인 우리가 주님과 한 유기체가 된 것은 그분의 부활 후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야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을 나의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인격) 안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고(마 28:19), “그날(부활의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여러분이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요 14:20).
그런데 풀핏 주석은 이처럼 믿는 이들과 삼위 하나님이 한 유기체가 된 것을 ‘합병체’(Incorporation of the disciples into one personality with himself) 또는 “그분께서 아버지와 연합되신 것과 같이 믿는 이가 그분과 연합된 새로운 존재”(the new existence)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로 알려진, 지금은 작고한 한 장로교 목회자는 1953년 3월 25일 밤 부산 피난지 설교에서 이 본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포도나무의 연장이 곧 가지입니다. 단 부분이 아니라 연장한 작은 그리스도라는 뜻이 있습니다. 나무와
가지는 성질상 같습니다. 또 본질상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와 중생한 신자는 본질상 같습니다. 그 이상과
목적과 소망이 같습니다. 그만큼 밀접한 그 점을 이 비유에서 가르쳤습니다. 가지는 나무에서 솟아오르는
생명의 진으로 삽니다.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생명의 연결이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생명은 예수께서 준 것입니다. 마지막 저녁에 이런 귀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설교집 1권).
참고로 회복역 성경 각주는 “가지들(아들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이 있는 이 참포도나무(아들)는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이다. 이 유기체는 그분의 풍성으로 자라며, 그분의 신성한 생명을 표현한다”고 말합니다(각주 1).
저는 이러한 모든 설명들이 깊은 속에서 아멘이 되었습니다. 또한 왠지 모르지만 이 주제에 대해 묵상하는 내내, 현재의 조직신학이 가르치는 어떤 내용들은 이 참포도나무가 보여준 진리에 맞게 바로 잡혀야 할 필요가 있다는 무거운 부담이 저를 눌렀습니다. 즉 “합병체”, (가지들이) “작은 그리스도”, “예수와 중생한 신자가 본질상 같다”는 발에 해당되는 이런 표현들과 맞지 않는 어떤 가르침들(신발)은 발에 맞게 조절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현재의 교회론과 종말론의 일부가 그러합니다.
현재 농부이신 아버지의 마음은 온통 우주 안에 한 그루뿐인 참포도나무(그리스도의 몸, 새 예루살렘)에 가 있으십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생명의 진”을 자신 안으로 빨아들이고, 또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흘려보내는 이들을 볼 때 기뻐하십니다. 즉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과 간격이 있는 어떤 사역도 너무 늦지 않게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마 7:21-23). 그래야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불법을 행한 사역자로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저에게도 경고가 됩니다.
오 주님, 당신은 우주 안에 유일한 참포도나무이십니다.
우리를 이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의 일부가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