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국어사전은 맏아들을 “둘 이상의 아들 가운데 맏이가 되는 아들”로 정의합니다. 마리아의 아들이신 주 예수님은 이러한 맏아들이셨고, 밑에 여러 동생을 두셨습니다(요 7:3, 행 1:14, 고전 9:5). 성경은 “이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닙니까?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 그의 형제들은 야보고,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닙니까?(마 13:55)”라고 하여, 그분에게 최소한 네 명의 남동생이 있었음을 증거합니다. 이 중에 야고보는 야고보서(약 1:1, 갈 1:19), 유다는 유다서의 저자(유 1)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침에 아래 말씀을 묵상하고 추구하면서 얻게 된 <맏아들 예수님>에 대한 깨달음은 위와 같은 혈육 관계가 아니라, 믿는 우리가 그분의 동생들이 되는 그분의 영적인 맏아들 되심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그들의 자녀인 우리에게
이 약속을 온전히 이루어주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이 편에 기록된 것과도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처음에 위 말씀을 읽었을 때는 솔직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위 본문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여러 번 읽은 후에야, ‘1) 과거에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있었는데, 2) 그 약속은 예수님의 부활로 실제로 이뤄졌고, 3) 그것은 바로 부활 시점(“오늘”)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낳아지는 것’이라는 대강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큰 틀 안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갈 때 먼저 갖게 되는 궁금증은 과연 “그 약속”이 “복음”의 내용 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복음의 내용은 죄들의 용서와 거듭남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1. 약속의 복음(the gospel of the promise): 이 문제는 ‘그 약속’과 ‘복음’을 동일시한 다음의 번역본들을 통해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쁜 소식 즉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한글킹제임스 성경), “기쁜 소식을 알게 하노니 이 소식은 곧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흠정역),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개역 성경). 여기서 쓰인 ‘전파하노니’는 헬라어로 ‘유앙겔리조’(2097)인데, 다른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다’(눅 4:18), ‘좋은 소식을 전하다’(롬 10:15), ‘전도하다’(행 5:42), 기쁜 소식을 전하다(살전 3:6)로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처럼 거의 모든 번역본에서 “그 약속”이 곧 “복음”으로 되어 있다면,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무슨 약속을 하셨기에 그것이 복음의 내용이 되는가 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2. 맏아들 복음: 주님께 나아가 이러한 궁금증을 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생각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중에, 아래 히브리서 1장 5-6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 중 누군가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며, 또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에게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맏아들을 이끄시어 세상에 다시 오게 하실 때, “하나님의 모든 천사는 그분께 경배하여라.”
놀랍게도 위 말씀은 위 사도행전 본문이 인용 소개한 시편 2편 7절 뒤에 바로 이어서 다음과 같은 사무엘하 7장 말씀을 소개하고 또 그것을 ‘맏아들’과 연결 짓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삼하 7:11-14).
위 말씀은 솔로몬을 통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집을 건축하리라’는 약속과 ‘하나님 나라(왕국)를 세워 그 왕위를 견고케 하리라’는 약속은 다윗의 씨로 오신 그리스도(마 1:1)를 통해 이뤄지며, 특히 그분의 부활 때 성취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다윗)의 씨에서 나신 구주 예수님을 이스라엘에게로 이끌어 오셨는데”(23절) 라고 하여 ‘약속’과 ‘구주 예수님’을 연관 지어 말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윗의 씨이신 주 예수님께서 부활 시에 맏아들로 태어나신 것(두 번째 출생)이 어떻게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3.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이 말씀은 신약에서 최소한 세 곳에서 인용되었습니다(행 13:33, 히1:5, 5:5). 난해 구절 중 하나인 이 말씀에서 1) 오늘은 언제이며, 2) 하나님은 어떤 아들을 낳으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참고로 이에 대해 신약 성경 회복역(각주1)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사람 예수님께 또 다른 출생이 되었다..그분은 부활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시어 많은 형제들 가운데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롬 8:29). 그분은 영원부터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다(요 1:18, 3:16). 그러나 육체가 되신 후 부활을 통해 그분은 인성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셔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33절).
먼저 ‘오늘’(this day)은 전후 문맥을 볼 때 ‘부활의 때’임이 분명합니다. 신약학계에서도 “시편 2:7이 초기 교회에서 예수의 부활과 연계되어 처음 사용됐을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고, 7c 절의 ‘출산(出産)’ 모티브가 이미 초기 교회에서 부활과 연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주 예수님의 부활 때 ‘어떤 아들’을 낳으셨다는 말인가? 먼저 ‘특정 시점’을 말하고 있으니, 영원하신 아들 하나님이신 독생자(요 1:18, 3:16)는 마땅히 제외되어야 합니다. 마리아의 태에서 나신 이후의 사건이므로 성육신을 말한 것도 아님이 분명합니다(마 1:21). 그렇다면 여기서의 아들은, 많은 아들들이 포함된 ‘맏아들’의 출생을 가리킨다는 위 설명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그분의 부활 때 그분 안에서 한 근원이신 아버지로부터 함께 태어났습니다(히 2:11)(그분의 부활 때 우리도 함께 부활했다(혹은 거듭났다)는 사실은 벧전 1:3, 엡 2:4-6 참조). 따라서 그분과 우리는 이 부활 안에서 사무엘하 7장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집’(엡 2:21-22, 딤전 3:15)이자 ‘하나님의 왕국’(롬 14:17, 막 4:26-29)의 실재가 된 것입니다. 이 어떠한 복음인지요! 오 이 어떠한 긍휼인지요!.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가 왜 복음인지 눈이 열려 보게 하시고,
또 그 실재를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