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75회 - 맏아들 복음
에세이
청지기 , 2022-03-25 , 조회수 (360) , 추천 (0) , 스크랩 (0)


네이버 국어사전은 맏아들을 “둘 이상의 아들 가운데 맏이가 되는 아들”로 정의합니다. 마리아의 아들이신 주 예수님은 이러한 맏아들이셨고, 밑에  여러 동생을 두셨습니다(요 7:3, 행 1:14, 고전 9:5). 성경은 “이 사람은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닙니까?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 그의 형제들은 야보고요셉시몬유다가 아닙니까?(마 13:55)”라고 하여, 그분에게 최소한 네 명의 남동생이 있었음을 증거합니다. 이 중에 야고보는 야고보서(약 1:1, 갈 1:19), 유다는 유다서의 저자(유 1)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침에 아래 말씀을 묵상하고 추구하면서 얻게 된 <맏아들 예수님>에 대한 깨달음은 위와 같은 혈육 관계가 아니라, 믿는 우리가 그분의 동생들이 되는 그분의 영적인 맏아들 되심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도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을 여러분에게 복음으로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그들의 자녀인 우리에게 
 약속을 온전히 이루어주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이 편에 기록된 것과도 같습니다.

너는  아들이다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처음에 위 말씀을 읽었을 때는 솔직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위 본문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여러 번 읽은 후에야, ‘1) 과거에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있었는데, 2) 그 약속은 예수님의 부활로 실제로 이뤄졌고, 3) 그것은 바로 부활 시점(“오늘”)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낳아지는 것’이라는 대강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큰 틀 안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갈 때 먼저 갖게 되는 궁금증은 과연 “그 약속”이 “복음”의 내용 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복음의 내용은 죄들의 용서와 거듭남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1. 약속의 복음(the gospel of the promise)이 문제는 ‘그 약속’과 ‘복음’을 동일시한 다음의 번역본들을 통해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쁜 소식 즉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한글킹제임스 성경), “기쁜 소식을 알게 하노니  소식은 곧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흠정역),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개역 성경). 여기서 쓰인 ‘전파하노니’는 헬라어로 ‘유앙겔리조’(2097)인데, 다른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다’(눅 4:18), ‘좋은 소식을 전하다’(롬 10:15), ‘전도하다’(행 5:42), 기쁜 소식을 전하다(살전 3:6)로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처럼 거의 모든 번역본에서 “그 약속”이 곧 “복음”으로 되어 있다면,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무슨 약속을 하셨기에 그것이 복음의 내용이 되는가 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2. 맏아들 복음주님께 나아가 이러한 궁금증을 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생각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중에, 아래 히브리서 1장 5-6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 중 누군가에게 “너는  아들이다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며, 또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그는 나에게 아들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맏아들을 이끄시어 세상에 다시 오게 하실 때, “하나님의 모든 천사는 그분께 경배하여라.”

 

놀랍게도 위 말씀은 위 사도행전 본문이 인용 소개한 시편 2편 7절 뒤에 바로 이어서 다음과 같은 사무엘하 7장 말씀을 소개하고 또 그것을 ‘맏아들’과 연결 짓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내가 네 몸에서 날  씨를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삼하 7:11-14).

 

위 말씀은 솔로몬을 통해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집을 건축하리라’는 약속과  ‘하나님 나라(왕국)를 세워 그 왕위를 견고케 하리라’는 약속은 다윗의 씨로 오신 그리스도(마 1:1)를 통해 이뤄지며, 특히 그분의 부활 때 성취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다윗)의 씨에서 나신 구주 예수님을 이스라엘에게로 이끌어 오셨는데”(23절) 라고 하여 ‘약속’과 ‘구주 예수님’을 연관 지어 말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윗의 씨이신 주 예수님께서 부활 시에 맏아들로 태어나신 것(두 번째 출생)이 어떻게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3. 너는  아들이다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이 말씀은 신약에서 최소한 세 곳에서 인용되었습니다(행 13:33, 히1:5, 5:5). 난해 구절 중 하나인 이 말씀에서 1) 오늘은 언제이며, 2) 하나님은 어떤 아들을 낳으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참고로 이에 대해 신약 성경 회복역(각주1)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사람 예수님께  다른 출생이 되었다..그분은 부활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시어 많은 형제들 가운데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 8:29). 그분은 영원부터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다(요 1:18, 3:16). 그러나 육체가 되신 후 부활을 통해 그분은 인성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셔서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셨다(33절).

 

먼저 ‘오늘’(this day)은 전후 문맥을 볼 때 ‘부활의 때’임이 분명합니다. 신약학계에서도 “시편 2:7이 초기 교회에서 예수의 부활과 연계되어 처음 사용됐을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고, 7c 절의 ‘출산(出産)’ 모티브가 이미 초기 교회에서 부활과 연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주 예수님의 부활 때 ‘어떤 아들’을 낳으셨다는 말인가? 먼저 ‘특정 시점’을 말하고 있으니, 영원하신 아들 하나님이신 독생자(요 1:18, 3:16)는 마땅히 제외되어야 합니다. 마리아의 태에서 나신 이후의 사건이므로 성육신을 말한 것도 아님이 분명합니다(마 1:21). 그렇다면 여기서의 아들은, 많은 아들들이 포함된 ‘맏아들’의 출생을 가리킨다는 위 설명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즉 우리는 그분의 부활 때 그분 안에서 한 근원이신 아버지로부터 함께 태어났습니다(히 2:11)(그분의 부활 때 우리도 함께 부활했다(혹은 거듭났다)는 사실은 벧전 1:3, 엡 2:4-6 참조). 따라서 그분과 우리는  부활 안에서 사무엘하 7장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 2:21-22, 딤전 3:15)이자 ‘하나님의 왕국’( 14:17,  4:26-29) 실재가  것입니다 어떠한 복음인지요  어떠한 긍휼인지요!.

 

 

“너는  아들이다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복음인지 눈이 열려 보게 하시고,

  실재를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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