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70회 - 얼굴을 땅에 대고 하는 기도
에세이
청지기 , 2022-02-18 , 조회수 (401) , 추천 (0) , 스크랩 (0)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한 형제님이 이민 사기를 당했습니다. 믿을 만한 대행사를 통해 이민을 준비했는데,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을 때에야 사기당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단추부터 꼬인 형제님의 이민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책 한 권을 써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영주권이 없어도 부지런하기만 하면 먹고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자녀가 커서 대학 갈 때가 코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여권과 비자를 다 뺏긴 상태라 사람이 보기에 해결할 길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답답한 현실이 강한 압박으로 그 형제님을 짓눌렀습니다. 어느 날 화장실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양변기 뚜껑에 얼굴을 대고 간절히 기도하셨답니다. 그 후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며칠 내에 영주권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자녀도 큰 학비 걱정 없이 대학을 갔습니다. 살다 보면 이처럼 막다른 골목에서 간절히 주님을 찾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아침에 아래 말씀을 읽을 때, “얼굴을 땅에 대시고”라는 부분이 유독 제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조금  나아가시어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리셔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하실 수만 있으시다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주십시오.

그러나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 26:39)

 

위 본문은 예전에도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위 말씀은 제게 매우 새로웠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사람의 아들’(마 26:2)로서 겪으신 일이고, 더 나아가 이 주님의 자기 부인의 가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따라가야 할 길’(마 16:24)에 대한 본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벧전 2:21).

 

얼굴을 땅에 대시고”(기도의 태도): 예수님 당시에 그분께서 우리 같은 사람(죄는 없으신)이심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늘 그분이 하나님(혹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시빗거리였을 뿐입니다(요 5:18, 10:33, 19:7).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된 느낌입니다. 즉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는 이들 안에서도 그분이 지금도 여전히 참사람이시라는 인식은 그 당시보다는 다소 약화된 것입니다. 예전에 이 주제를 깊이 연구할 때 주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을 가지셨음을 보여주는 성경 구절들을 일일이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구절들입니다.

 

1) 먼저 주 예수님은 우리처럼 ‘죽으실  있는 이 있으십니다(마 27:58,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the body)을 달라 하자).

2) 그분은 또한 우리처럼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이뤄진 ’(soul, 프쉬케, 5590)이 있으십니다(마 26:38,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요12: 27, 지금 내 혼이 괴로우니). 여기서 말한 예수님의 ‘혼’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게 보존되어”(살전 5:23)에서 사용된  ‘혼’과 같은 단어입니다.

3) 또한 주님도 ‘우리와 같은 사람의 (spirit, 푸뉴마, 4151)이 있으십니다(요 11:33, 예수님께서 … 영 안에서 격분하시고(he groaned in the spirit), 마 27:50, 예수님께서 … 그분의 영을 내어 주셨다). (거의 모든 영어 성경은 ‘퓨뉴마’가 사람의 영을 가리킬 때는 ‘스피릿’을 소문자 ‘s’로 표현함).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죄는 없으신)이시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주님께서 죽음을 앞두시고 하신 이런 표현들이 더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다”(마 26:38). “지금  혼이 괴로우니… 아버지 때를 벗어나도록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요 12:27).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이시어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땀이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눅 22:44). “크게 부르짖으시며 눈물로 간구와 간청을 드리셨다”(히 5:7).

 

 잔을 지나가게  주십시오”(기도의 내용):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주님께서 간절히 기도하신 내용은 참으로 인간적이면서도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위대한 본입니다. 즉 “ 잔을 지나가게  주십시오”라는 기도는 웬만하면 안 죽게 해 달라는 간청입니다. 인간적인 솔직함과 고뇌가 짙게 묻어난 간구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라는 예수님의 이 후반부 기도는 우주 가운데 자기 부인과 순종의 본을 세운 위대한 외침입니다. 흔히들 쉽게 이야기하는 소위 ‘자기 부인’은 그렇게 가벼운 주제가 아님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적용):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 또한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고, 여러분이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여러분에게 본을 남겨  주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벧전 2:21). 또한  주님 자신도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십시오’(마 16:24)라고 하셨습니다. 위 본문과 이런 두 곳의 말씀들은 우리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내 뜻을 꺾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부부가 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 도중에, 심지어 차를 어디에 어떻게 파킹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생기는 여러 불협화음은 각자의 생각이 달라서 서로의 의견이 부딪치기 때문에 생길 때가 많습니다. 각자가 자기 논리가 있고,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고, 처한 입장에 따라 이해득실이 달라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로 조화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인간 사회(교회 포함)에서도 그러한 데,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르려고 자기의 자아를 내려놓는 일은 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이 상황에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분명히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따르자니 이미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포기해야만 할 때(어떤 때는 목숨), 우리 마음은 고민과 갈등에 싸이게 됩니다. 오, 최소한 이때만이라도 겟세마네(기름 짜는 곳) 동산에서 주님께서 겪으셨던 그 자기 부인의 본을 따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알의 밀알로 죽으사 많은 밀알을 얻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도  길을   있도록  주시고 넘치는 은혜가 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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