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69회 - 하나님의 걸작품이 해야 할 일
에세이
청지기 , 2022-02-11 , 조회수 (589) , 추천 (0) , 스크랩 (0)


언제부터인가 성경을 읽을 때 나의 영으로 말씀 안에 있는 영을 접촉하고 흡수하는 것 외에, 두 가지를 더 신경 쓰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읽은 본문을 제대로 이해 했는지를 냉정히 돌아보는 것입니다(많은 때 ‘이 말씀은 이런 뜻일 거야’라고 어림짐작하고 넘어갔습니다). 둘째는 성경 본문에서 ‘하라’ 혹은 ‘하지 마라’는 것이 있으면, 그 내용으로 자신의 현재 상황을 비춰보는 것입니다. 며칠 전 아침에 아래 말씀을 먹고 누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선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것으로,

우리가 그것들을 행하도록 하기 위한 입니다(엡 2:10).

 

 

사실 위 말씀도 전에 많이 누리고 공급받았던 내용입니다. 특히 개역 성경이 헬라어 원문인 ‘포이에마’(4161)를 ‘만드신 바라’라고 번역한 것을, 신약 성경 회복역이 ‘masterpiece’ 즉 ‘걸작품으로 번역한 것(ISV와 NLT도 같음)이 참신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크티조’(2936) 역시 전후 문맥상 ‘창조되었다’가 더 좋다고 느꼈습니다(막 13:19, 엡 3:9, 골 3:10, 계 10:6에서는 개역 성경도 이 단어를 ‘창조’로 번역함).

 

그런데 최근에 교회가 실행하는 진도를 따라 위 말씀을 다시 읽고 묵상할 때, 저의 관심이 예전과는 조금 다른 부분으로 옮겨갔습니다. 즉 하나님의 걸작품인 우리가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 선한 일들이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것이고, 더구나 우리가 지금 그 선한 일들을 행하여야 한다면, 그 선한 일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묵상이 이 대목에 이를 때, ‘  예수님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은 무엇인지요저로 알게 하소서또한 매일의 삶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도우소서’라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 후에 위 본문에 있는 ‘선한 일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두 구절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 선하시다’라는 말씀(마 19:17)과 ‘사탄과 사탄에게 영향받는 모든 것이 악하다’라는 취지의 말씀(요일 5:19)입니다. 이 두 구절은 기존의 윤리적인 선악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선악 개념으로 성경이 말하는 선과 악을 이해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선하심: 여호와 하나님만 유일하게 선하시다는 아래 말씀은 위 본문이 말하는 ‘선한 일들’(good works)을 바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을 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왜 나에게 선한 에 관해 묻습니까? 선한 분은  분뿐이십니다”(There is only One who is good)(마 19:16-17).

 

같은 내용이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Taste and see that Jehovah is good)(시 34:8)를 포함하여 그 외 여러 곳에서도 확인됩니다(대상 16:34, 시 106:1, 107:1, 118:1, 29, 119:68, 135:3, 136:1, 렘 33:11).

 

사탄과 사탄에 속한 것은  악함아래 말씀에서 ‘악한 (the evil one)는 헬라어로 ‘포네로스’(4190)인데, 회복역 각주는 이 단어에 대해, ”’악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 파괴적이고 해악을 끼치는 자를 가리킨다. 즉 다른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주어 사람들을 사악하고 악독하게 만드는 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악한 자가 바로 사탄 마귀이며 온 세상이 그 안에 놓여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고,  세상이 악한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요일 5:19).

 

참고로 아래 본문들은 위 ‘포네로스’가 쓰인 사례 중 일부입니다. 이 역시 성경이 말하는 ‘악’이 단지 윤리적인 문제만이 아님을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의 말은 다만 ‘예’는 ‘예’라 하고, ‘아니요’는 ‘아니요’라 하십시오. 그 이상의 말은 악한 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마 5:37).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한 에게서 구출하여 주십시오”(6:13). “여러분이 악할지라도 좋은 선물을 자녀에게 줄 줄 아는데”(눅 11:13). “악한 이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짓눌러 이기니”(행 19:16). “모든 종류의 을 멀리하십시오”(살전 5:22). “누구든지 불신의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히 3:12).

 

에베소서 2 10절에서 ‘선한  의미: 우선 해당 본문을 그대로 읽어도, ‘선한 일’은 ‘하나님의 걸작품인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이라는 개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넓게 본문을 읽으면, “(악한 자의 조종 아래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사는 것”(엡 2:2), 혹은 “육체의 정욕(lusts)을 따라 살고” “육체와 생각의 욕구(the desires)대로 행하는 것”(2:3)은 ‘선한 일’이 아닙니다. 참고로 해당 각주는 선한 일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선한 일들은 우리의 일반적 관념에 따른 선한 일들이 아니라, … 이 선한 일들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이 책의 다음 장들에 계시된 대로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며 예수님의 증거를 나타내기 위한 이다”(각주3).

 

참고로 성경 헬라어 대학자인 헨리 알포드는 이 ‘선한 ’(good works)에 대해, ‘한 나무가 그 열매를 내도록 창조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just as a tree may be said to be created for its fruit.”)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은 ‘선한 일들’은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나무”의 자연스러운 “열매”와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요약하면, 악한 자인 사탄의 영향 아래에 있는 불신자들과 거듭난 믿는 이일지라도 그가 옛사람을 따라 산 어떤 행위들은 윤리적으로 볼 때는 선하더라도 위 본문이 말하는 ‘선한 일들’이 아닙니다. 대신에 선한 일들은 유일하게 선한 분이신 하나님, 즉 우리 영 안에 내주하시는 생명 주는 영을 근원으로 하여 우리의 존재(주로 혼)를 통과한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에베소서 2 10절이 말하는하나님의 걸작품인 우리가 마땅히 해야  “선한 일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내가 아니라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표현된 결과들’( 2:20)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가르침은 어디를 보아도 일관되고 모순이 없습니다.

 

 

오 주님, 우리를 당신의 걸작품으로 창조하심을 감사합니다.

걸작품에 걸맞은 ‘선한 열매들’을 맺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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