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66회 - 참된 부자가 되는 법
에세이
청지기 , 2022-01-21 , 조회수 (393) , 추천 (0) , 스크랩 (0)


시골에서 태어나 겨우 생계나 유지하는 정도의 규모로 농사짓는 집에서 자란 탓에, 직계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중에 소위 ‘부자’ 축에 끼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저 자신이 재리나 재산 축적에 밝지도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늘 가난이란 단어가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껴지고, 부자 혹은 부자 되는 것은 저와는 무관한 일로 알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가난’ 혹은 ‘부자’ 개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가난’(poor) 혹은 ‘부유함’(rich)이 더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영께서 나에게 임하시니,

이것은 나에게 기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나를 보내시어 포로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4:18상),

 

위 말씀은 구약 이사야 61장 1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또한 위 본문은 레위기 25장 8-17절이 말하는 ‘희년’(禧年, Jubilee)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원래는 자기 땅도 있고 가족과도 함께 살던 어떤 이가 어떤 연유로 자기 소유의 땅을 모두 팔아먹고 생계유지도 어려워지니까 이제는 가족을 떠나 남의 종이 되어 살다가, 매 50년째가 되면 무조건 원래 소유를 되찾고 가족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제도가 구약의 희년(요벨)입니다. 이미 이런 배경을 가진 말씀임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까지는 위 ‘가난한 이들’도 구약의 경우처럼 물질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막연히 생각하면서 읽어 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아침에 이 말씀을 읽고 또 먹을 때 문득 복음 전파의 대상이 되는 ‘가난한 이들’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만일 여기에서 ‘가난’이 물질적인 가난의 의미라면, 돈 많은 불신자는 처음부터 복음 대상에서도 제외되어야 합니다. 물론 전후 문맥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저는 잠시 말씀에서 눈을 거두고 ‘오 주님,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 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불신자의 특징을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이들”로 묘사한 에베소서 2장 12절이 생각났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가난한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고후 6:10)라고 자신들을 묘사한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물론 이 본문은 바울 일행이 사람들을 물질적으로 부유하게 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님을 영접하여 누리게 했다>는 말입니다.

 

부자의 종류: 전에는 부자(富者)는 1) 축적한 재물의 이 많은 사람, 2) 그리고 ‘주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눅 6:38)라는 말씀이 믿는 이의 재물 관리 원칙이라고 가르친 워치만 니의 도움을 받아, 흘려보낸 재물의 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묵상 후에는 3) 하나님 없는 것이 ‘가난한 것’이고, 반대로 참된 가치요 부(富)이신 하나님을 얻고  풍성히 얻는 ( 10:10  2:19) 참된 부자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반대로 지금까지는 예수님 안 믿는 불신자는 죄인이고, 하나님의 원수이며, 영적으로 죽은 (마 8:22)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들은 참된 가치인 그분이 결여 된 가난한 이들’(the poor)이기도 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된 부자가 되는 한 때 중남미의 석유 부국이던 베네수엘라가 최근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해서 돈보다 금을 더 선호하여, 요즘 금 캐는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석유’나 ‘화폐’나 ‘금’보다도 우리를 참된 부자가 되게 하는 비결은 금의 실재이신 하나님(출 25:11)의 가치를 인정하고,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을 더 얻는 것입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추가 묵상이 제 안에 있었습니다.

 

1) 하나님만이 참되게 존재하시는 분임을 믿음: 히브리서 11장 6절은 우리가 1) 하나님께서 계심과 2) 그분은 상 주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계심’(that He is)은 헬라어 원문이 ‘에스티’(2076)라는 한 단어로서 ‘내가 존재하다’(I exist) 혹은 ‘나는 …이다’(I Am)라는 의미인 ‘에이미’(1510)의 3인칭 단수형입니다. 주 예수님도 유대인들에게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 인 줄을 믿지 않으면 여러분이 죄들 가운데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우주 안에서 ‘에고 에이미’라고 하실 수 있는 그분만이 참으로 존재하시고(출 3:14 참조), 우리는 아니다(That He is, we are not)라는 가치관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인생은 안개와 같으며, 재물을 추구하는 것도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허무한 일임을 깨닫고 사도 바울처럼 유일하게 존재하시는 그분만을 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빌 3:8, 12-16).

 

2주님의 이름을 부름: 로마서 10장 12절은 “한 분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시고, 그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rich)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얻게 되는 ‘풍성’은 다른 번역본에서 ‘부요’로도 번역되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부요’케 되는 것은 영적인 ‘비트코인’ 혹은 ‘금맥’을 캐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3) 모든 일에서 간구와 기도를 통해 평안이신 하나님을 얻음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여러분의 관용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도록 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5절). 옛말에도 ‘광에서 인심 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너그럽게 관용을 베풀려면 ‘너그러운 존재’이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더 많이 사셔야 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뒤이어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다만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 여러분의 구할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그러면 …하나님의 평안 …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빌 4:6-7). 신약성경 회복역 해당 각주는 우리가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얻게 될 ‘하나님의 평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한 결과는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사실상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가 기도로 그분과 교통할 때, 우리 안에 주입된 평안이신 하나님이다(빌 4:9). 하나님의 평안은 고민에 대한 안정제이고, 염려에 대한 해독제이다(요 16:33).

 

 

이처럼 비록 밖의 환경이 어렵더라도, 염려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그분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유업이신 하나님을 소유한 참된 부자가 되는 길임을 이번 추구를 통해 보았습니다(롬 8:28, 엡 1:14).

 

 

 주님당신만이 참으로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우리로  순간 모든 환경 가운데 주님을  얻음으로,

당신을 유업으로 소유하고 누리는 참으로 부유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에세이,참된 부자,하나님을 얻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