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63회 - 주님을 향하여 사는 삶을 사모함
에세이
청지기 , 2021-12-31 , 조회수 (361) , 추천 (0) , 스크랩 (0)


며칠 전부터 아래 말씀(고후 5:15)을 계속 묵상하며 누리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바로 앞 구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합니다”라는 부분을 주로 주목했고, 이 말씀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이 말씀을 읽어볼 때, 주님의 대신 죽으심이 단지 구속을 이루기 위함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식의 삶을 살게 할 목적의 죽음인 점이 새로웠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말씀을 붙들고 추구하며 씨름한 부분은, 이 본문이 말하는 ‘향하여 산다’(live to)라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매일의 삶에 적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향하여 살지 않고(no longer live to themselves),

자기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을 향하여 살도록(to Him) 하려는 것입니다(고후 5:15).

 

 

위 말씀을 여러 번 읽고 영어 성경도 보면서, ‘오 주님, 저를 대신하여 죽으심을 감사합니다. 저로 더 이상 저 자신을 향해 살지 않고, 당신을 향해 살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아래 각주를 읽기 전까지는 ‘live to’(향하여 산다)와 ‘live for’(위하여 산다)의 차이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습니다. 언뜻 듣기에는 그 말이 그 말 같았습니다.

 

“주님을 향하여 사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보다 그 의미가 더 깊다.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은 나와 주님이 여전히 둘이지만, 주님을 향하여 사는 것은 결혼 생활에서 아내가 남편과 하나이듯이 내가 주님과 하나라는 것을 암시한다”(각주2).

 

그러나 위 둘이 다르다고 하니까 그러면 다른 영어 성경에는 이 부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영어 성경 번역본들Bible Hub라는 앱의 도움을 받아 살펴보니, NIV, NASB 등 대다수의 영어 성경은 ‘위하여’(live for)로 번역했고, 헬라어 원문을 직역한 ‘Berean Literal Bible’, ‘Young’s Literal Translation’이나 KJV(KJ 2000 포함) 등 유력한 번역본 몇 개만 ‘live to’(혹은 unto)로 번역했습니다(회복역 성경도 ‘live to’로 번역함). 그러나 이 자료만 가지고는 꼭 ‘live to’로 번역해야만 할 당위성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이럴 때는 부득이 헬라어 원문의 도움이 필요하게 됩니다.

 

헬라어 원문: ‘자신을 향하여’와 ‘…분을 향하여’는 각각 ‘헤아우투’(1438)와 ‘호’(3588)인데, 모두 문법상 ‘여격’(Dative case)으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주로 ‘여격’은 영어의 ‘간접 목적어’ 그리고 우리말로는 ‘~에게’(to)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자료는 “여격의 기존 (성경) 번역은 "~에게, ~을 위하여"이다. 여격을 "~을 위하여"라고 번역하면 다른 전치사 용법과 중복되는 혼란을 겪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추구를 통해, ‘live for’ (위하여 산다)보다는 ‘live to’(향하여 산다)가 헬라어 원문에 더 근접한 번역임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런데도 다수의 영어 성경들이 ‘to’ 대신 ‘for’를 쓴 이유가 궁금해서 영어권 분들에게 물어본 결과, 아마도 요즘 영어의 ‘일반 용례’(common usage)를 따랐기 때문인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분을 향하여 삶: 한 신실한 성경 교사는 이 ‘그분을 향하여’ 사는 것을 같은 용법(여격)이 사용된 갈라디아서 2장 19절(I might live unto God)을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19절에서 바울은 그가 율법을 향하여 살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산다고 말한다. 율법을 향하여 산다는 것은 우리가 율법 아래에서 율법의 지시를 받으며, 율법의 통제에 의해 율법을 완성할 의무를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나 또는 주님을 향하여 사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지시와 통제 아래 그분의 요구를 완성하고, 그분의 갈망을 만족게 하며, 그분이 의도하시는 바를 완전케 하기 원하신다는 의미이다. … 바울은 그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외에 자신이나 어떤 것에 대해서도 살지 않았다. 그는 항상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만을 실행했다. …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는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추구하지 말고 주님을 향해 살아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그분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고린도후서 5장의 이 부분에 있는 중요한 주제이다”(롬 LS, #13).

 

실제적인 적용위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또 부활하신 주님을 향하여 사는 것’의 의미가 이해된 후에, 이 말씀과 실제의 삶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격이 있다는 깊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삶 속에서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알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다음 두 가지가 당장 실행 가능한 빛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1) 그분을 인격으로 취함: 그동안 무심코 습관적으로 행했던 일상생활 속의 작은 일들까지도 머리 되신 그분께 계속 묻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계속 날이 더운데 연세 드신 몇 분 지체분들에게 밖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 부담에 대해 주님께 상세하게 여쭈며 인도를 받을 때 마음속에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2) 그분을 더 알아가는 것: 상대방의 취향과 기호를 모른 상태에서 그 사람의 옷이나 신발이나 액세서리 선물을 사 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만일 이럴 때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고 자기 판단에 따라 그 사람을 ‘위해’(for) 무엇을 사면, 아마도 핀잔을 듣거나 다시 바꾸러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십상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향하여 살려면 그분의 인격(Person)과 역사하신 것(work)에 대해 더 자세히 그리고 체험적으로 아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래 몇 군데 말씀에서 보듯이 그리스도를 참으로 체험적으로 알고 그분을 살았습니다(빌 1:21). 그에 비하면 저는 참으로 주님을 모르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고후 1:5). “내가 용서한 것은 …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용서한 것인데”(2:10). “나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대로 … 권면합니다”(10:1). “그리스도의 진실성이 내 속에 있으니”(11:10).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장막으로 드리워지도록 …나의 약한 것을 … 자랑하겠습니다(12:9) (엡 LS, #83).

 

이런 추구를 통해 깊은 속에 회개와 탄식의 간구가 있습니다.

 

오 주님, 얼마나 많은 때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 좋은 대로 살았는지요!

주님, 회개합니다. 오 주님, 제게 긍휼을 베푸사 남은 일생은 크고 작은 일들에서

당신을 향하여 사는 날들이 되게 하소서!

 

오 주님,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이 성경책에만 기록되어 있지 않고,

제가 살고 체험한 주관적인 말씀이 되게 하소서! 아멘.

 

에세이,주님을 향햐여 사는 삶,고린도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