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60회 - 하나님은 왜 사람을 만드셨을까?
에세이
청지기 , 2021-12-10 , 조회수 (468) , 추천 (0) , 스크랩 (0)


사람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하는 사람의 기원을 놓고 창조론과 진화론이 오랫동안 대립하여 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이에 대한 자료들이 차고 넘칩니다.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창조론을 믿는 기독교인들도 그렇다면 하나님은 (why) 사람을 창조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는 사람이 사는 목적 내지는 거듭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바로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허공을 치는 것처럼 방향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 부흥 책자 진도를 따라 읽게 된 아래 말씀은 위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듭시다.

그리고 그들이… 통치하게 합시다( 1:26).

 

지금까지 30여 년이 넘게 교회 생활 하는 동안에 위 창세기 1 26은 수도 없이 읽고 또 들어 온 말씀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누릴 때 온 성경은 이 한 구절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쓰였구나 하는 깊은 인식이 생겼습니다. 아울러 이 구절의 의미와 실제적인 적용을 고려할 때 다음 세 곳의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4장 11절, 에베소서 3장 8-10절, 그리고 스가랴 12장 1절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람이 창조됨 :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의 주님, 우리의 하나님, 주님은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존재하며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계 4:11).

 

위 말씀에 따르면, 우리 하나님은 뜻과 목적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그분의 뜻에 따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위 창세기 1장 26절 본문에 따르면, 그 뜻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고, 만물을 통치하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새사람인 교회: 한편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하나님께서 … 자신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으로 전하게 하시고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영원부터 감추어져 있던 비밀의 경륜이 무엇인지를 모든 사람에게 밝히어 이제 교회를 통하여 하늘들의 영역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시는 이라고 말합니다(엡 3:8-10). 덧붙여 그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했습니다(11절).

 

아침에 위 창세기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롭게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가 …사람을 만듭시다’라고 할 때 쓰인 사람’-영어로 man(단수 남성 명사), 히브리어로는(아담)-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바로 뒤에서 ‘그들’이라고 복수 대명사로 지칭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부분에 매우 깊은 하나님의 경륜이 담겨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옛사람(타락한 인류)은  사람 아담(고전 15:45 )이고 주님의 몸의 모든 지체들은 둘째 사람 즉 마지막 아담(고전 15:45 하)에게 속했음을 함축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에게는 오직 두 사람 즉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만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도,  사람 아담 안에서는 불가능하고, 개인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위 에베소서 말씀처럼 오직 단체적인   사람인 교회만이 인간 창조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한 새 사람의 출현에 모든 사역을 집중하시고 계십니다. 제게도 이 한 가지를 깊이 깨닫는 데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람의 : 구약의 신언자인 스가랴는 여호와를 소개할 때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킹제임스 흠정역은, “사람 속에 사람의 을 지으신 이, formeth the spirit of man within him라고 함) ”라고 말했습니다(슥 12:1).

 

그렇다면 왜 스가랴는 그냥 여호와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하지 않고 “사람 속에 사람의 ”을 창조하셨다고 했는가? 깊이 묵상해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저의 경험에 따르면, 사람에게 몸(body)과 혼(soul)뿐 아니라 영(spirit)이 있음을 분명히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살전 5:23).

 

동물 중에 침팬지나 문어에게도 제법 높은 지능이 발견되었고 심지어 식물도 어느 만큼의 혼적인 기능들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종교 행위를 한다는 보도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을 믿고 경배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사람에게는 사람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슥 12:1).

 

그러나 타락으로 인하여 이 사람의 영은 죽었습니다(엡 2:1). 그 후 그 ‘기관’(organ)은 있으되 ‘기능’(function)을 잃어버려 마치 “영을 갖지 못한 이들”(having no spirit, 유 19) 혹은“이성 없는 짐승(like animals without reason)”처럼 되었습니다(10절). 이것이 모든 불신자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헨리 알포드는 이런 상태를 “이런 사람의 영은 침체되고 하락되어서 더 낮은 ‘프쉬케(혼)에 종속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타락 후에 죽은 영을 살려 거듭나게 하고(요 3:6), 하나님의 영과 연합하여 한 영(고전 6:17 ) 되게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어서 ‘속사람’이기도 한 이 거듭난 영으로부터 “마음까지” 그리스도의 거처가 확대되고(엡 3:16-17), 마침내 교회인 새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엡 3:19)되는 것이 구원의 완성이자 창조 목적의 성취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대한 다음과 같은  회복역 성경 각주 내용은 이러한 지금까지의 서술을 압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하나님을 표현하며 하나님의 통치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표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는 첫 사람(고전 15:45상)이며 옛사람(롬 6:6)인 아담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둘째 사람(고전 15:47하)이시며 새사람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 새사람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로 구성된다(엡 1:22-23, 고전 12:12, 골 3:10-11). … 하나님의 의도는 긍궁적으로  예루살렘으로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과 모양을 지니고서(계 4:3상, 21:11, 18상)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며, 또한 하나님의 신성한 권위를 사용하여 온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영원토록 유지할 것이다(계 21:24, 22:5)”(창 1:26 각주 6).

 

 

 여호와 하나님사람을 향한 당신의 경륜을 찬양합니다.

단체적인  새사람을 통해 속히 당신의 창조 목적을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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