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헌신하는 일에 관해 잊지 못할 몇 가지 경험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20대에 전투경찰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 있을 때 ‘오산리 000 금식 기도원’이라는 곳에 가서 체험한 것입니다. 개인 기도굴 중 하나에 들어가 문을 닫고 밀폐된 공간에서 기도할 때였습니다. 기도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안에서부터 장래를 주님의 손에 내어 드리라는 강한 밀어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의도적으로 그런 인도를 무시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자신을 주님께 헌신합니다. 당신의 뜻대로 행하소서!’라고 고백하면, ‘신학교 가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실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무렵 저는 어떤 계기로 인해 장차 노동부 장관이 되는 것을 목표로 틈틈이 시험공부에 몰두하던 중이었습니다.
또 다른 경험은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30대 중반에 미국으로 떠나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때입니다. 한번은 헌신을 주제로 한 수업 중에 강사분이 한 말이 제게 깊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소유권(ownership)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유인지 아니면 주님의 소유인지를 진지하게 고려한 후에 원소유주이신 주님의 권리를 깊은 속에서부터 인정하라는 권면이었습니다. 법을 전공했기에 이 ‘소유권’이라는 단어는 제게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물론 그분께서 핏값 주고 우리를 되사오셨으니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고전 6:19-20). 그러나 실제 삶 속에서는 자신이 사실상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면 일종의 ‘불법점유’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아래 말씀을 여러 번 읽으면서 헌신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묵상하고 추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헌신하게 하고 …
제사장으로서 나를 섬기게 하여라(출 28:41 하).
물론 전과 달리 지금은 저 자신을 포함한 저의 모든 소유가 주님의 것이고, 하루하루 코로 숨을 쉬고 이 땅에 사는 이유가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임을 고백하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구를 통해서는 실제적인 헌신의 의미와 그 헌신의 목적이 무엇인지가 더 분명하게 이해되었습니다.
헌신의 의미: 한자어로 헌신(獻身)은 ‘몸을 드린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위 본문에서 ‘헌신’의 히브리어 원문인(우밀레에타하, 4390)는 흥미롭게도 ‘손을 가득 채우다’입니다. 영어 성경 중에서 ‘Jubilee Bible 2000’은 이러한 원문의 의미를 살려 ‘fills their hands’라고 번역했고, ‘Douay-Rheims Bible’도 ‘consecrate the hands of them’이라고 ‘손’이라는 단어를 번역에 반영했습니다. 그 외 대부분의 영어 번역은 ‘consecrate’(헌신)로 일부는 ’ordain’(임명)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렇다면 ‘손을 가득 채우다’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묵상하며 레위기 8장을 읽는 중에 아래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위 출애굽기 본문은 성막 이전에 말씀하신 것이라면, 아래 레위기 말씀은 성막이 지어진 후에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실행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곳은 “모세는 그 전부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손바닥에 얹어 주고”라는 부분입니다. 바로 이것이 헌신의 의미인 셈입니다.
“모세는 기름 덩이와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 덩이와 간에 붙은 것과 두 콩팥과 콩팥에 붙은 기름 덩이와 오른쪽 넓적다리를 가져오고, 여호와 앞에 놓인 무교병 광주리에서 무교 과자 하나와 기름 섞은 과자 하나와 전병 하나를 가져다가 그것들을 기름진 부분들과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았다. 모세는 그 전부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손바닥에 얹어 주고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요제물로 흔들어 바치게 하였다”(레 8:25-27).
스코필드 주석성경으로 유명한 C. I. Scofield는 자신의 <성경 통신강좌>에서 “우리는 레위기의 모든 장(章)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위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또 실생활에 적용하려면 레위기가 말하는 각종 제물의 실재가 그리스도이심을 보아야 합니다(골 2:17, 히 10:1-10). 즉, 위 ‘헌신을 위한 숫양’(the ram of consecration, 레 8:22)의 ‘각 부위’이나 ‘과자들’은 신약 용어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속 부분’(빌 1:8) 혹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엡 3:8)이고, 헌신은 우리 내적 존재가 이것들로 충만히 채워지도록 예비되고 열려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헌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예전의 저처럼 신학교 가거나 우리가 가진 어떤 것(예를 들어 재물)을 주님께 갖다 바치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헌신은 우리가 무엇을 드린다는 관념보다는 반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고 그것으로 가득 채워지도록 예비되는 것이라는 점이 매우 밝아졌습니다. 이것은 다음에서 보듯이 헌신의 결과는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사실과 연관 지어 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헌신의 목적: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묵상하는 중에, 코스코 부설 주유소에 가서 차에 개스를 넣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기름을 넣으러 코스코에 가면 간혹 기름 탱크가 달린 주유 차가 주유소 지하 기름 저장고에 기름을 넣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 기름 저장고의 기름은 각 주유 호스를 통해 고객들의 차에 기름을 공급합니다. 이 그림을 빌려 말하자면, 헌신은 더 큰 근원으로부터 기름을 공급받는 것이고, 헌신의 목적은 그 받은 것을 기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입니다.
현재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일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심으로 그분의 충만인 주님의 몸, 즉 교회를 건축하시는 것입니다(요 10:10 하, 마 16:18, 엡 1:23). 그런데 이 몸 안의 생명은 시편 133편의 내용처럼 ‘아론의 수염으로부터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흘러내리는 향유(기름)’로 표현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한편 신약의 원칙은 어느 특정 계급만 제사장이 아니라 거듭난 모든 이들이 제사장들입니다(벧전 2:5, 9). 이들이 하는 일은 기름 부음 받은 자이신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기름을 받아(헌신), 다른 지체들에게 기름을 공급하는 것입니다(헌신의 목적). 또한 이러한 일은 주유 차나 주유 호스처럼 지속해서 기름의 근원과 연결되어 공급받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묵상을 마무리하면서 두 구절의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요 6:57 하).
주인이 맡긴 집안 식구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나눠 줄 사람이 누구입니까
(마 24:45)?
오 주 예수님, 헌신의 참된 의미를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 순간 우리의 빈손을 채워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