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56회 -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들
에세이
청지기 , 2021-11-12 , 조회수 (702) , 추천 (0) , 스크랩 (0)


요즘 소위 <구원  이후>의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몇 주 째 <한 새사람>(one new man)(엡 2:15) 방면의 교회를 생각하던 중에, 아침에 아래 말씀을 읽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바울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여러 번 읽고 또 영어 성경도 찾아본 후에 비로소 이 부분의 문장 구조와 내용이 조금 더 이해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고 또 먹은 후에 제일 먼저 제 마음에 새겨진 단어는 ‘그러나’라는 말입니다(개역 성경과 흠정역은 이 ‘but’(, 1161)을 ‘오직’으로, 한글 킹제임스역과 회복역은 ‘그러나’로 바로 번역함). 사도 바울은 지금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은 이러 저러하게 생활하지만, 그리스도를 배운 여러분은 다른 정체성과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대비되어 만져졌습니다. 즉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구원 그 이후’의 삶은 ‘그리스도를 배운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에게서 들었고

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면(엡 4:20-21).

 

 

이방인들: 위 말씀으로 기도하고 묵상하는 과정에서 ‘그러나’가 쓰인 배경을 알기 위해 앞부분을 추가로 읽어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17절에서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인들이 헛된 생각을 따라 행하는 것처럼 행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후에, “이방인들”(the Gentiles)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열거합니다. 즉 1) 그들은 이해력이 어두워져 있고, 2) 속에 무지가 있고, 3) 마음이 굳어져 있고, 4)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고, 5) 감각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자신을 방탕에 내맡겼고, 6) 온갖 더러운 것을 탐욕스럽게 행합니다(엡 4:18-19).

 

처음에는 여기서의 ‘이방인’은 비 유대계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묵상해 볼 때 사실은 유대인들 자신도 위 이방인의 특징들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앞뒤 말씀을 다시 읽어 볼 때,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은 22절의 “지난날의 생활 방식을 따르는 옛사람” 혹은 “속이는 것의 욕정에 따라 썩어져 가는 옛사람”과 동의어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즉 아래 각주 내용처럼 (유대인을 포함해서) ‘타락한 모든 사람’ 즉 ‘옛사람’이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타락한 사람들이며, 그 생각하는 것들이 다 허망하다(롬 1:21). 그들은 헛된 생각을 따라 하나님 없이 행동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허망한 생각을 따라 통제받고 지시받기 때문이다. 그들이 타락한 생각을 따라 무엇을 행하든지 그것은 실재가 없는 헛된 것이다(관련 각주2).

 

 

주 예수님은 지상 사역 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여러분을 회당에서 쫓아낼 것”이고 “여러분을 죽이는 사람마다 자기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요 16:2). 이러한 말씀은 그 당시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신 말씀이지만, 오늘날에도 빛 가운데 사는 생활은 없이 자신들이 가진 교리를 절대시하다 보면 얼마든지 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봅니다. 주님은 이런 일들에 대해 “그들이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일을 한다”고 말씀합니다(3절).

 

그리스도를 배움“… 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you did not so learn Christ)라는 말씀도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여러 번 묵상한 후에 이 말씀과 바로 뒤의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침을 받음”이 결국 같은 내용을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단락의 핵심은 과연 ‘예수님 안의 실재’라는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실제의 생활에서 체험하는 일임을 보았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그렇다면 오 주님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가르침 받는 것은 무엇인지요? 라는 기도가 깊은 속에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한 신실한 성경 교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일생의 실지 상태를 가리킨다”고 정의했고, “이방인들, 곧 타락한 사람들의 경건하지 않은 생활에는 공허함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건한 생활에는 진리, 곧 실재가 있다”라고 이방인과 예수님의 생활을 대비한 후에, “예수님의 생활은 하나님 안에서하나님과 함께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는 삶이었다하나님은 예수님의 생활 안에 계셨고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셨다이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 의미이다.”라고 추가하여 설명했습니다(관련 각주1).

 

이러한 회복역 성경 각주 내용을 참고한 후에, 문득 주님의 일생의 각 과정(성육신, 인생, 죽음, 부활, 승천)을 짧은 말로 정의한 글을 예전에 읽은 것이 떠올랐습니다.

 

즉 1) 그분의 ‘성육신’은 ‘무한한 하나님을 유한한 사람 안에 이끄심’이고, 2) 그분의 죽음은 ‘끝냄’(termination-죽음을 통과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끝냄)이며, 3) 그분의 인간 생활은 ‘(pattern)을 세우신 시간(훗날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살아 내고 표현할지를 미리 보여 주심), 4) 그분의 부활은 ‘발아’(germination-사람 안에 신성한 생명을 넣어준 사건, 요 12:24 참조)이고, 5) 그분의 승천은 ‘취임식’(Inauguration-그분은 늘 주와 그리스도이시지만, 승천 시 공식적으로 주와 그리스도로 취임하심, 행 2:36 참조)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지금 관심하는 그분의 <인간 생활>(human living)에 대해 베드로 사도도 그의 서신에서 “그리스도 또한 … 여러분이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여러분에게 본(휘포그람모스, 5261)을 남겨 주셨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벧전 2:21) 위 견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위 본문 문맥은 ‘이방인들은 헛된 생각을 따라 마음대로 살지만예수님께서  땅에 사시면서 세우신 본을 보고 배운 여러분들은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를 어떻게 저의 삶 속에서 적용하고 실재화 할 것인지를 묵상하면서 다음 두 가지가 마음에 정리가 되었습니다.

 

첫째, 사복음서에 기록된 그분의 행적을 우리가 따라 살아야 할 본의 관점으로 다시 읽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철저하게 아버지가 하신 그대로 하고 행동하셨습니다(요 14:10, 5:19).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도 마땅히 그러해야 합니다.

 

둘째,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입니다”(요 6:57 하)라는 말씀이 성경 기록으로만이 아니라 저의 삶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그리스도 당신께 배운 사람들을  많이 얻으시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땅에서 다시 사시옵소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바울의 고백이

모든 믿는 이들의 고백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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