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54회 - 바울이 전한 복음은 뭐가 다를까?
에세이
청지기 , 2021-10-29 , 조회수 (377) , 추천 (0) , 스크랩 (0)


제가 코끼리를 처음 본 것은 어릴 때 서울 창경원(동물원)에 갔을 때입니다. 그 후 30대 중반 무렵 다니던 회사가 보내 준 해외여행 중 태국에 갔을 때, 저를 포함한 몇 명의 자원자들이 누워 있는 사이로 거대한 코끼리가 지나가는 아슬아슬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코끼리를 실제로 접촉해 본 것은 몇 년 전에 인도에 갔을 때 일행과 함께 코끼리를 직접 타보는 일정에 참여했을 때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간의 간격을 둔 몇 번의 체험만으로 제가 코끼리를 다 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비슷한 예로 ‘눈먼 이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본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를 빗대는 말입니다. 복음을 아는 것도 이와 유사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복음은 불신자에게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로마서를 읽다가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 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1:15). 그때 저의 첫 반응은, ‘어 이거 뭐지?’였습니다. 이미 믿은 사람도 복음이 필요하다는 말로 읽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위 구절의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알려고 거꾸로 읽어 올라갔습니다. 그 결과, 여러분은 이미 ‘부름받은 성도들이 된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7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제게도 바울처럼 거듭난 사람도 여전히 복음이 필요하다는 관점이 생겼습니다. 그런 연장에서 아침에 아래 말씀을 읽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복음의 핵심임이 더 깊게 다가왔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노예요 부름받은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분별되었습니다.

이 복음은 …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롬 1:1-3).

 

 제 기억이 맞다면, 자기가 전한 복음을 ‘나의 복음’이라고 말한 사람은 바울이 유일합니다(롬 16:25). 위 본문에 의하면 바울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복음’입니다. 그런데 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전한 사람은 바울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복음에서만 나타난 특징들은 과연 무엇일까? 이것을 알고자 주님을 앙망하며, 바울이 쓴 다른 서신들에 있는 복음 관련 구절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생명)을 강조했고, 더 나아가 그 부활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자신의 복음의 내용에 포함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이러한 추구 내용의 일부입니다.

 

1) 사도 바울은 위 본문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자신의 복음을 설명하면서 “(아들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심을 말합니다(4절). 우리 주님은 신성에서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더 인정되고 말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인정되셨다’는 말은 목수의 아들로만 보이던 그분의 인성이 부활로 다시는 죽지 않는 인성이 되신 것을 함축합니다(계 1:18). 이런 분이 우리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셨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바울의 복음 이해에 중요한 토대가 됨을 보았습니다(골 3:4).

 

2) 바울은 또한 골로새서에서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데,… 우리가 그분을 전파하여 …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드리려고” 힘써 수고한다고 말합니다(1:27-29).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 되심은 물론 그 생명이 자라서 우리가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는 것까지를 자신의 복음에 포함시켜 전파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미 거듭난 이들도 바울의 복음이 필요했고, 또한 그의 복음으로 ‘성도들이 견고하게 된다’고 했구나 싶었습니다(롬 16:25).

 

3) 그는 또한 주 예수님께서 ‘죽음을 없애 버리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밝히셨다’고 말한 후에, 바로 이 복음을 위해 자신이 전파자로 세워졌다고 고백합니다(딤후 1:10-11). 위 구절에 소개된 바울의 복음은 (1) 죽음을 없애버린 부활, (2) 그 부활하신 분이 우리  생명이심, (3) 썩지 않음을 포함합니다.

 

 위 구절에서 제가 새삼 주목했던 부분은 ‘썩지 않을 것’(incorruption, 861)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고 결국에는 썩어집니다. 심지어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나사로도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위 말씀은 부활이신 주님이 생명으로 우리의 존재 안에 점차적으로 확대되실 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영과 혼과 몸 안의 죽음(썩음)이 점차적으로 삼켜져서(롬 8:10, 6, 11), 우리의 인성도 주님의 부활하신 인성처럼  썩지 않는 존재가 됨을 함축합니다(살전 5:23). 오, 이 어떠한 영광의 소망인지요! 

 

 사실 이런 약간의 추구로 제가 바울의 복음을 다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서두의 글처럼 그저 코끼리의 어떤 부분을 조금 더 만져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 추구를 통해서 최소한  다음과 같은 바울 복음의 특징 몇 가지는 제 안에 확실히 새겨졌습니다. 1) 일반적인 복음이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강조했다면, 바울은 그것과 함께 주님의 부활을 강조했고, 2) 전자가  문제에 주목했다면, 바울은 그와 함께 죽음의 문제를 포함했고, 3) 또한 전자가 각 개인의 구원을 다뤘다면, 바울은 하나님의 맏아들과 그분의 많은 아들들이 한 몸을 이루는 구원의 단체적인 방면을 자신의 복음에 포함시켰습니다(롬 8:28-29). 한 마디로, 바울의 복음은 ‘개인적인 하나님의 아들’이 ‘단체적인 하나님의 아들들’을 얻는 복음입니다(롬 8:29).

 

 

오 주님, 바울의 복음을 온전히 알고, 체험하여 누리고, 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큰 긍휼을 베풀어주옵소서!

에세이,바울의 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