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50회 - 거룩한 밤, 거룩한 사람
에세이
청지기 , 2021-10-01 , 조회수 (696) , 추천 (0) , 스크랩 (0)


거룩이라는 단어가 이번 주 내내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아마도 이번에 교회에서 다루는 주제가 진리와 거룩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돌아보면 제가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유년 시절에 들었던 캐럴송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통해서입니다. 그때는 정말 어린 제게도 크리스마스이브 날 밤은 뭔가 특별하고 경건하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러다가 거룩은 하나님의 속성임을 안 후에는, 한동안 거룩을 아무 데나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성경에는 하나님이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창 2:3)는 말씀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소 혼란스러웠던 거룩의 개념이 나름 정리가 된 것은 성경에는 두 방면의 거룩, 즉 위치적인 분별과 성분적인 분별이 있음을 안 이후부터입니다. 즉 고린도 교회 구성원들은 아담으로부터 그리스도 안으로 위치적으로 옮겨졌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거룩하여진 … 성도들”이라고 불렸습니다(고전 1:2).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성분상으로는 ‘육체에 속한 사람들’(fleshy)이었습니다(3:1). 따라서 “이제는 여러분의 지체를 의에게 노예로 드려 거룩하게 됨에 이르십시오”(롬 6:19)라는 추가적인 거룩에 대한 권면이 이들에게도 필요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오늘날의 믿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거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침에 아래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그 의미가 더 깊이 다가왔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요 17:17).

 

위 말씀은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유언처럼 길게(14-17장) 말씀하신 내용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이번 묵상 중에, 위 본문이 예수님이 하신 기도였음이 새삼스럽게 제게 다가왔습니다. 성경은 의인의 간구는 효력이 있고, 그분의 뜻에 따라 구하면 들으신다고 말씀합니다(약 5:16, 요일 5:14). 그렇다면 약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드렸던 이 기도의 결과는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가? 아래 내용은 이것을 놓고 주님 앞에 한동안 머물며 묵상한 결과입니다.

 

먼저 위 기도가 창세 전에 아버지께서 선택하신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엡 1:4)는 말씀과 연결된 것이 밝아졌습니다. 또한 이 기도는 계시록에 있는 어린양의 신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최종 응답된다는 것도 분명해졌습니다(계 21:2). 문제는 이 둘 사이에서 오늘날의 교회는 과연 어떻게 거룩해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대목을 주님 앞에서 고려할 때 전에 알고 있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례들이 생각났습니다.

 

1941년에 상해에 있는 교회 기도 집회에서 한 인도하는 자매가 탄식하며 “오, 주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여기에 있는 교회는 너무 약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 집회에 있던 워치만 니가 바로 이어서 “교회가 약하지 않음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합니다. 교회는 영광스럽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두 사람이 마치 기도로 싸우는 듯한 인상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는 육신의 눈에 비친 교회 모습을 본 것이고, 후자는 영의 눈으로 본 교회의 존재를 선포한 것, 즉 야곱의 죄악을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같은 관점으로 기도한 것입니다(민 23:21). 위 본문에서의 주님의 기도도 같은 맥락의 기도였습니다.

 

또 하나는 진흙 인형을 물로 씻는 이야기입니다. 타락한 우리의 본성은 마치 진흙과 같아서 아무리 물로 씻어도 진흙이라는 본성 자체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세상 교육이나 인간이 만든 윤리 도덕, 심지어 종교적인 수련이 이와 같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 혹은 사회의 상류층이라도 그것만으로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는 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단지 성경 지식을 가진 것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이 점은 주 예수님께서,머리 좋은 유대인들이 성경 지식과 교리는 가졌으되 성경의 주인공이자 실재이신 자신에게는 나아오지 않음을 책망하신 말씀으로 알 수 있습니다(요 5:39-40).

 

위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진리’는 바울의 표현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깨끗이 하여 거룩하게 하시는” 수단인 “말씀 안에 있는 씻는 ”입니다(엡 5:26).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단지 밖의 글자만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영과 생명을 만지는 방식으로 읽을 을 요구합니다. 이때 이 씻는 물인 영과 생명이 우리 존재 안으로 흘러들어와 한 면으로는 우리 옛사람의 타고난 생명의 흠들을 씻어 내고, 또 다른 면으로는 주님의 거룩한 요소로 교회를 적시십니다. 이처럼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과정의 최종 모습이 바로 어린양의 신부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 새 예루살렘이 바로  단체적인 거룩한 사람입니다.

 

이번 본문 묵상을 통해, 단지 거룩한 본성만이 아니라 거룩하신  인격 자체가 제 안에 충만되시기를 원하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교회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이기 때문입니다(엡 1:23).

 

 

 주님우리를 말씀 안에 있는 씻는 물로 날마다 거룩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요한복음에서의 당신의 기도를 
교회 안에서 속히 성취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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