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43회 - 건강한 가르침, 건강한 먹거리
에세이
청지기 , 2021-08-13 , 조회수 (371) , 추천 (0) , 스크랩 (0)


저 자랄 때만 해도 다들 배고픈 시절이라 뭐든 그저 먹을 것이 있으면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보다 전반적으로 소득이 늘어난 지금은 밥걱정은 옛말이고, 능력만 되면 비싸도 유기농 제품을 찾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만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처음에 이 나라에 왔을 때 ‘인구의 약 70%는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 돈을 쓸 용의가 있다’고 한다는 통계를 보고 놀랐었습니다. 역시 선진국답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몸에서 정신까지 확대되었구나 싶었습니다. 제 기억에, 그 당시의 한국은 ‘심리 상담’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할 때였습니다. 지금은 한국 역시 이 분야에 대한 인식과 인프라가 많이 좋아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이든 미국이든 평소에 자신의 영적인 건강을 위해 영적인 먹거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영의 건강에 별로 안 좋은 먹거리인데도 감각 없이 계속 자기 안에 받아들입니다. 저의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이 방면에 예민한 감각이 생기려면, 믿는 우리가 유기체인 주님의 한 몸의 지체들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고전 12:27). 그런 맥락에서 아침에 아래 말씀을 묵상하면서 ‘건강한 가르침’이라는 말이 제게 많은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른 신실한 말씀을 붙잡아, 

건강한 가르침으로 권유할 수 있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책받게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딛 1:9).

 

위 말씀은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장로들의 자격을 열거하는 문맥의 연장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대하면서 먼저 든 생각은, 개정 개역과 달리 회복역이 ‘건강한’ 가르침이라고 번역한 근거가 무엇일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문득 원문이 궁금해서 <헬, 한, 영 대조 신약성경> 등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해당 헬라어 원문은 ‘건강한’이란 뜻의 기본어에서 나온 ’휘기아이노’(5198)이고, 영어 번역본들 중에 , , 이 이것을 회복역처럼 ‘healthy’(teaching)로 번역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개정 개역도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눅 5:31 상)에서는 이 단어의 원뜻인 ‘건강한’을 제대로 살려 번역했습니다.

 

또한 원문은 그냥 ‘가르침’인데 왜 회복역이 그 앞에 ‘사도들의’를 추가했는지에 대해서는, 이 단어에 대한 엘리코트(“taught by St. Paul and his brother Apostles”)나 풀핏(“the Christian truth as taught by the apostles”) 같은 권위 있는 주석가들의 해석을 반영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문맥상 ‘건강한 가르침’은 곧 신실한 말씀이고, ‘신실한 말씀’은 곧 ‘사도들의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사도들의 가르침(행 2:42)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밝히는 가르침’인데, 쉽게 말해 신약성경 전체를 말합니다(마 28:20).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건강한 가르침, 즉 건강한 먹거리는 신약성경 전체의 중점들을 성도들에게 그대로 먹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요 21:15).

 

여기까지는 본문에 대한 이해 과정이었다면, 이제 어떻게 이것을 현재 상황에 적용할 것인지가 남았는데, 이 점에 대해 주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빛 비춰 주시기를 앙망했습니다. 아래는 그 결과입니다.

1)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영적으로도 가려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먹는다’는 말은 꼭 음식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7)에서 ‘먹는 것’은 ‘그분을 (생명의 방식으로)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터넷상의 잡다한 정보들, 건강하지 않은 설교자의 설교에 눈과 귀를 빌려주는 것은 마치 불량 식품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 우리 안에 들어온 것은 계속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가려 먹어야 합니다.

 

2) 사도들의 가르침, 그중에서도 중점 진리들을 지속적으로 읽고, 추구하고, 소화시켜 영적인 건강 체질을 가져야 하겠다는 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복음서에서는 주 예수님(요 15:5), 서신서에서는 그분의 몸(엡 1:23), 계시록에서는 새 예루살렘(계 21:2)입니다. 주 예수님은 그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새 예루살렘은 이 교회가 최종 완성된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는 우리의 영적인 건강에는 (굳이 표현하자면) 무공해 고단백인 최고의 먹거리인 셈입니다.

 

3) 또 하나 제 안에 깊은 느낌이 있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와 거룩이심으로, 그가 아무리 유명해도 이러한 신성한 속성들이 삶에서 나타나지 않는 설교자나 은사자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 교회의 하락이 심해지면 사람들은 “건강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경고합니다(딤후 4:3). 또한 그는 그들이 자신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 주는 선생들을 많이 둘 것”을 겸하여 말했습니다(4절). 지금이 바로 이런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도 자기 건강은 자기가 챙겨야 할 때입니다. 사랑스럽고 고귀한 주님의 몸을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주님, 때가 악합니다. 우리로 건강한 말씀,
건강한 가르침만을 먹게 하시고,

속히 새 예루살렘으로 지어져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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