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 입니다.
성경진리토론방
, 2003-12-27 , 조회수 (231) , 추천 (0) , 스크랩 (0)

[교회개혁은 필수입니다]

교회의 중복 투자는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예배당과 모든 비품과 경비들). 계속 교회는 늘어나고 신학생은 계속 배출되고 교단은 이미 수없이 나누어졌고 구원이 없는 이단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교회의 현 주소이며 개혁의 대상이 된 배경이 된 것이다. 스스로 교단을 운영하자 스스로 교단을 나누었고 스스로 교회를 운영하자 스스로 나누어지는 교회들이 된 것이다. 한 몸이라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멀리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또 모두다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는 극단적인 이단과 같은 자세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개혁에 대한 의식을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이대로 계속 늘어가고 신학생이 계속 배출되는 현실을 극복하고 효율적인 교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것이다.

교회 개척은 이제는 자제해야 한다. 교회가 이제는 포화 상태에 빠져있다는 것이다.(오지의 선교지역 제외) 도심지의 난립한 교회들은 이제 하나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 결단이 요구된다.

개척교회가 오히려 선교에 도움을 과거에는 주었으나 이제는 교회의 선교에 걸림돌이 되고 교인들의 신앙에 악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교인들은 스스로 신앙의 방종으로 달려가고 있다. 목사와 교회가 마음에 안 들면 스스로 얼마든지 옮길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한국교회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교인들이 두려워서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담대히 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특히 개척교회는 더 어려운 실정=교회의 가장 중요한 질서인 이명제도의 상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회를 마음대로 옮겨 버리는 철새교인들이 나타난 원인이 된 것이다.
교회의 질서의 절대상징인 이명제도라는 것이 있다. 스스로 교회를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공동체와 감독자들에 의해서 결정하는 원리가 정상적인 것인데 이러한 것이 산산이 부서진 것이 현실이다. 이런 해악은 교인들의 방종으로 나타난 것이다. 교회의 질서는 교인들의 신앙을 세워가는 기초이다. 성경은 이러한 질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인들의 질서가 무너진 것도 문제이지만 목사들의 질서도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 사실이다. 목사들은 교인들을 두고서 경쟁하는 관계에 들어섰다. 이것은 성경의 모습과는 절대로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서로 세워주는 원리).

사도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려는 곳에 이미 주님의 종과 공동체가 사역을 하는 것을 알고 그 곳을 떠났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목회의 윤리라는 것이다.(초대교회는 이러한 원리가 대부분 지켜짐) 그런데 이러한 질서는 이제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같은 장로교인데도 아래층과 위층에 각각 교회를 세우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작은 지역에서 조차도 서로 달리 공동체가 형성이 된 것이다.(최소한의 목회의 양심질서가 무너짐)
이것은 초대교회의 모습과는 정 반대되는 논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만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시대가 초대교회라는 것이다.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린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닌 사람들이 한 것이 분명하다. 초대교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순종한 교회들은 하나 되는 것이 당연한 원리였다.

성경도 이를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 바울은 주도, 성령도, 하나님도 하나라는 것으로 하나 됨을 힘써 지킬 것을 명령하였다. 이렇게 성경이 명령하고 있는 것을 교회가 스스로 불순종한 것이 오늘날의 교회라는 것이다.

성경이 명령한 이러한 대 원리보다 더 나은 원리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직 이러한 원리보다 더 나은 원리가 이 세상에는 없다는 것이다.

이단이 아닌 이상 모두가 하나 되어서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한 몸의 원리이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원리를 매우 잘 시행한 것이 성경에서 잘 보여준다.(물론 문제가 있었지만 교회분열은 성경에 대한 도전으로 본 것)
오늘의 교회가 나누어진 것은 스스로 나누어진 것이지 하나님이 나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가 하나 되어서 함께 모이고 함께 배우고 함께 먹고 마시는 주님의 공동체라는 것이다.(절대적인 원리=이것을 어기는 것은 반 성경적인 것)

목사들이 만 명이면 만개의 교회가 세워지고 교파가 백 개면 백 개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가 같은 작은 지역에서 조차도 수십 개의 교회로 나누어진 것은 성경적인 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개척교회에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구정조정을 이루라는 것이다. 통합해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효율적인 운영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일은 많은 목사들로 말미암아 교인들은 풍성한 꼴을 먹을 수 있다는 특별한 장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같은 지역에 갈라진 교회가 하나의 교회가 된다면 구역별로 모이는 것도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이다.(상당한 수가 모일 것이다)

당연히 교회개척은 자제해야 된다는 것이다. 목사들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목사가 서로 같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은 교인들도 같은 하나님의 성도들이라는 것이다. 목사들의 결단으로 20명, 10명, 50명 등으로 되어진 교회 공동체를 지역에서 하나로 묶어서 연합을 이루어야 교회는 하나 된 원리로 성찬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교회가 계속 세워지고 문 닫는 교회가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실 지금 신학교들은 목사양성을 속히 중단해야 한다.(이미 적정선의 문제가 아닌 과잉으로 말미암아 폭발직전) 그러므로 지금의 개척교회들 살리는 것도 목사양성을 자재해야 하는 이유이다. 속된 말로 시장은 포화 상태인데 계속 상인들이 늘어나면 모두 약해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교파 통일은 힘들더라고 교단만큼은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장로교는 수백 개).

교단이 많으면 신학교도 우우죽순처럼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는 목사들을 과잉으로 배출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중요한 것은 해외 선교사들이다.
선교사 양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국내 교회가 힘들어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보다는 철저히 선교사들을 양성해야 파송해야 된다는 것이다.(지원도 충분히) 언어에 능숙하고 선교사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어서 파송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정말로 영력 있고 실력 있는 자들이 선교사로 먼저 파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력 있는 자들이 요직에 들어서는 것은 세상에서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정말로 실력 있는 자들이 선교사로 먼저 나서야 된다는 것이다. 현지에 가장 중요한 교회의 틀을 세우는 시기이므로 더더욱 능력 있는 자를 파송해야 된다는 것이다.(선교사로써의 최소한의 능력은 언어나 현지 사정 그리고 인격 등이 갖추어진 자)

현재 개척교회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척교회의 통일을 목사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세상에서 점포가 개인의 것 이듯이 교회의 건물이 개인의 것이 된 것이 가장 큰 통일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개인이 투자해서 준비한 예배당과 교인들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교회의 연합과 통일은 묘연해진다. 교회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성경적 대 원리로 모든 목사들이 먼저 개혁에 나서야 교인들이 따라서 나선다는 것이다. 성경으로 돌아가려는데 굿이 교인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목사들의 결단이 적극적으로 요구된다.

대형교회에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교인들을 과감히 지역이 가까운 교회로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멀리 떨어진(심지어 제주도에서 서울로 오게 한다는 말도 있다) 곳에서 오게 하는 것은 교회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 사실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자주 모일 수 없다는 한계)
가까운 교회로 가는 것은 지극히 성경적인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초대형교회들이 교인들을 과감히 나누어주는 결단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개척교회는 통일의 발판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개척교회들에게 교인을 보내는 것은 함께 모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큰 교회들이 먼저 양보해야 된다. 큰 교회들은 대형 기업이 되어서 작은 교회보다 더 좋은 환경으로 교인들을 가리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은 개척교회들은 열악한 환경으로 교육이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누가 개척교회로 가려고 할 것인가? 실재로 요즘 교인들은 대형교회를 선호한다. 그 이유야 다양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척교회들이 더욱더 힘들어진 원인이 된 것이다.

이렇게 빈부의 격차로 나누어지는 원리는 세상의 자본주의 논리이지 교회의 논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초대형 교인의 수가 만 명, 수만 명, 수십만 명의 교회들은 중대한 결단이 요구된다. 한국교회의 수없는 목사들은 비싼 돈 주고 양성된 자들이다. 그들을 이제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라는 것이다. 대형교회들이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고 해도 더 좋은 환경은 지금 수없이 배출된 목사들을 충분히 활용해서 교인들이 일대일 교육을 그들로 끊임없이 받는다면 이는 대단히 큰 축복이다.

초대형 교회들이 대형버스로 교인들을 운송해서 자신의 교인들을 늘리는 것에 열중하는 것에서 과감히 탈피해 스스로 지역교회에서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타 지역에서 오는 자들을 가까운 교회로 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멀리서 올 수밖에 없다는 핑계를 받아들인다면 모든 교회들이 인간적인 관계로 각각 자신이 원하는 교회로 찾아가면 결코 교회는 하나 될 수 없다.(사람의 집단)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적인 관계가 아닌 그리스도로 모인 공동체 곧 신앙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인 원리로 초대형 교회들이 먼저 결단을 가지고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먼저 나서야 한다.

그리고 부목사 제도는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고 이미 주장되고 있다. 부목사가 인정된다면 성경적인 정치대신 계급적인 제도를 수용하는 것이다.(성경적 근거가 아님 오히려 가톨릭의 정치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성경적인 원리는 목사, 부목사가 아닌 공동목회가 되어야 한다. 각각 파트를 정해서 맡은 자리에서 일하는 분업화 되는 것이 더욱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목사 자신들이 소신 있게 목회를 못하는 것은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가 있기 때문에다. 담임 목사는 공식적인 교회의 총 책임자이기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보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실재 교황과 같은 위치) 어떻게 이러한 것이 성경적인 원리인가? 이러한 근거는 결코 성경적인 운영이 아니라는 것이다. 목사의 사례통일은 같은 목사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당연히 목사들은 같은 목사로써 각각 자신이 맡은 곳에서 일하는 분업화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권력집단이 아니다. 목사는 교회의 다 같은 일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대표는 직분이 아닌 연장자에게 자연스럽게 역할이 주어질 것이다. 이 대표가 직분이 되면(담임목사) 그 때부터는 권력이 되어서 목사들 안에서 심각한 균열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의 연합은 목사들이 같은 종이라는 것과 그리고 사례의 통일 그리고 교인들이 함께 모여야 한다는 것이 지극히 성경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장되어야한다.

교회의 개혁은 목사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목사들이 정말로 같은 목사 같은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이루고자 한다면 형식적인 연합이 아닌 실제로 나서서 연합에 나서야 한다. 개척교회가 나서든 대형교회가 나서든 개혁은 모든 목사들의 시대적인 책임이다.
한국교회는 교단이 나누어질 때 함께 줄을 섰던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이제는 교회가 분열이 아닌 주님의 교회라는 성경적인 원리로 돌아서야한다.

교회의 분열은 교파로 나타났고 교파의 분열은 수 없는 교단으로 나타났고 교단의 분열은 지교회를 세포 분열되게 한 중대한 원인을 재공 한 것이다. 이러한 일을 목사들이 나서서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들이 다시 나서서 봉합하는 개혁의 수술을 스스로 나서서 해야만 가능하다. 평신도들은 결코 할 수 없다. 목사들에게 칼자루가 쥐어진 것은 개혁의 주체가 목사들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사들이 칼자루를 쥐고 교회를 나누었듯이 이재는 거꾸로 교회를 회복시키는 책임도 그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모든 교회들이 많은 부분 분열로 이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닌 사람들로 나누어지면서 된 우리의 열매이다. 교인들의 수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교회와 교인들을 세우는 것이 지금은 중대한 개혁의 과제라는 것이다.(달리는 말에 채찍질 한다는 말과 같이 한국교회의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 뒤를 돌아보지 말고 현재의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

실제로 과거 본인이 있는 지역의 대형교회들이 거의 모두 싸우면서 나누어졌다는 것은 이를 명백히 증거 한다. 지금도 교회들은 계속 싸우면서 나누어지고 있다는 것은 교회의 개혁이 얼마나 중대한 과제가 되었는가? 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인들의 싸움으로 나누어진 최전선에 목사들과 장로들이 있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 싸움 속에서 교인들은 나누어져서 각각 예배를 드리고 각각 원수와 같이 여기게 된 것은 주님의 교회의 모습을 철저히 무시하고 망각한 행동이다.

이러한 교인들의 상처는 한국교인이라면 거의 겪을 정도라는 것은 거의 많은 교회가 내분이라는 시험을 겪었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교인들은 심각한 영적인 상처와 혼란을 겪었다는 것이다.(하나의 교회가 나누어지는 것도 중대한 문제인데 한국교회의 많은 교회가 겪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얼마나 총회나 교단이나 목사들이 고민하고 개혁을 외쳤는가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심판 될 때에 드러날 것이다. 사실 나누는 자들이 문제를 인식 할리가 없지만)

이러한 모든 출발은 사실 위에서 먼저 출발한 것이다. 교회의 권력층과 목사로 교파와 교단이 나누어졌다면 지 교회의 분열은 우연이 아닌 지교회의 권력자들인 목사와 장로들로 나누어진 것을 보아서 그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먼저 교회의 개혁인 실제적 연합에 나서야 된다는 또 한번의 책임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