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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25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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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천국에 들어 갈수 없다는 내용의 진정한 의미]
(마태복음19장16절-26절)
예수는 자신에게 나아오는 부자 청년에게 모든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자 부자 청년은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지키었다고 말하였다. 예수는 부자에게 다시 명령한다.
그 내용은 네가 가진 모든 재산을 가난한자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자 이 부자는 근심하고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는 비유로 낙타와 바늘귀를 들어서 설명한다. 그러자 누가 그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제자들 질문에 예수의 대답은 간략하게 사람으로써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써는 다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이 구절을 오해하고 있기에 기복신앙을 정당화 시키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본인은 이 구절이 부자를 정당화 시키는 것이 아님을 논하고자 한다.
부자는 재산을 나누어주라는 예수의 말씀에 근심하고 돌아가 버렸다. 그가 만약에 자신의 것을 가난한자에게 주었다면 그는 구원을 얻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 후에 예수는 사람으로써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오늘날 믿음 없는 부자들이 이 구절로 자신들의 구원을 정당화 하려고 흔히 사용하는 구절이다. 사람으로써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사용해서 부자도 하나님으로 구원이 얼마든지 된다고 스스로 정당화 한다.
과연 하나님으로써는 다 할 수 있다는 이 구절이 부자들을 옹호하는 구절인가?
이 구절에 대한 오해는 부자들이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본래 세상의 부자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그 부자가 하나님으로 천국에 갈수 있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부자들을 옹호하는 내용의 구절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구절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자가 구원을 얻으려면 자신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을 때에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처음 부자 청년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난한자들에게 나누어주는 부자가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부자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으면 그는 자신의 것을 주를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믿음으로 부자가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믿음으로 부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부자들을 얼마든지 구원을 하실 수 있다. 그 조건은 세상의 부자들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으면 하나님은 그 부자들이라도 모두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은 다 할 수 있느니라! 는 진정한 의미이다. 하나님은 구원을 부자나 가난한자 모두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부자들은 하나님으로 자신의 것을 포기하는 믿음이 있어야 구원이 가능하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으면 자신의 것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이러한 부자들도 하나님은 다 구원하실 수 있는데 그 방법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것을 발견한 세상의 부자가 자신의 제산을 하나님과 비교해서 중요한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크게 깨닫고 믿음을 통해서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선택하여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부자들이 믿음으로 나아오면 그들을 얼마든지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것이 예수가 말씀하신 사람으로써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써는 다 하실 수 있다는 본 의도라는 것이다.
복에 대한 기준이 물질이 아닌 믿음이라는 것이다. 믿음은 물질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 복 받은 자가 된다는 것이다. 믿음이 있으면 세상의 복을 하나님을 위해서 포기하고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복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예수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누구든지 주님으로 구원이 가능하지만 구원을 얻으려는 자는 주님을 따라가야 된다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닌 주님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다.
주님도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주었다. 우리가 주님의 생명을 얻으려면 주님께 우리를 드려야 되지 않겠는가? 이러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사실 복 있는 자이다.
세상의 물질을 얻으려는 목적은 사실 기복신앙의 기초이다. 참 믿음은 물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주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자이다. 세상의 물질과 믿음을 비교하는 것이 사실 어리석은 자이다. 우리가 물질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 믿음이 있는 자들은 물질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이 아닌 그 물질을 능가하는 믿음이다. 그 믿음으로 부자도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된다. 그 증거는 자신의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부자는 율법을 매우 잘 지키었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부자에게 율법의 행함보다 살아있는 믿음을 요구한 것이었다. 사실 그 부자에게는 율법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필요한 자였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라](계22장13-2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