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42회 - 예수님은 두 번 태어나셨다
에세이
청지기 , 2021-08-06 , 조회수 (397) , 추천 (0) , 스크랩 (0)


아주 오래전에 구정 연휴를 이용해서 성도님들과 대만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떠날 때는 추워서 손이 시려울 정도였는데, 타이베이 공항에 내렸을 때는 습기를 머금은 뜨거운 공기가 얼굴에 훅 느껴졌습니다. 비행기로 고작 3시간 날아왔을 뿐인데, 이렇게 기온 차이가 나나 싶었습니다. 겨울에도 무더울 수 있다는 사실은 난생처음 경험해 본 것이었고, 그 일을 계기로 저의 세상 보는 눈이 조금은 넓어졌습니다. 그 후 주님의 안배로 미국으로 와서 산 지가 어느덧 27년째입니다. 같은 미국이지만 제가 사는 이곳 서부와 동부는 세 시간의 시차가 있을 만큼 광활합니다. 그런데 주로 남가주에서만 살다 보니, 아직도 가본 곳보다는 안 가본 곳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 가서 미국을 안다고 자신 있게 말 못 합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아는 것만 알 뿐이고, 그분에 대한 미지의 영역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그 사랑 하나만 붙들고 살아도 천국 가는 데 아무 지장 없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다루려는 내용은 머리만 아프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속만 아는 것으로는 균형 잡힌 신앙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기초로 주님을 아는 지식을 점차 넓혀간다면, 그 신앙은 더 견고하고 풍성해질 것입니다(벧후 3:18).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심으로 … 이 약속을 온전히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제이 편에 기록된 것과도 같습니다.

‘너는  아들이다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행 13:33).

 

솔직히 회복역 성경 각주를 읽기 전에는 위 말씀이 그렇게 깊이 있는 본문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생각 없이 읽으면,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 정도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편이 원출처인 이 본문은 두 곳에서 더 인용되었고(히 1:5, 5:5),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맏아들로 태어나신 사건을  말하는 그야말로 신약의 핵심 진리들 중 하나를 담고 있음을 저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위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는 부분이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로 시작하는 유명한 복음 성가의 후렴구로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시편과 위 본문 그리고 히브리서 해당 본문은 각각 부활하신 메시아, 맏아들, 재림주, 대제사장이신 주님 자신을 가리키므로, 위 가사에서처럼 우리에게 직접 적용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제가 이 구절을 아침에 묵상하고 추구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여기서 말하는 ‘오늘’은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신 날이 아닙니다. 전후 문맥은 그분이 부활하신 를 가리킵니다. 바로 앞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심으로’가 그 근거입니다. 참고로 유명한 신약학자인 조지

레드도 자신이 쓴 <부활론>(기독교문서선교회)에서 같은 관점을 밝히고 있습니다(50쪽). Bible Hub이라는 앱에 있는 이름 있는 주석가들(엘리코트, 풀핏, 칼빈, 다비, 알포드) 역시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낳았다: 그렇다면 독생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처녀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심으로 하나님-사람이 되신, 우리가 잘 아는 그 출생(마 1:16)과 여기서의 출생은 뭐가 다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주석가들이 이 구절을 설명하면서 함께 언급한 로마서 1장 4절(부활하여 …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혹은 이 본문을 맏아들과 연관 지어 말씀하신 구절들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히 1:5-6).

 

위와 같은 추구와 묵상을 통해 제 나름대로 이 본문을 소화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주님은 부활하실 때 맏아들로 다시 태어나셨다. 2) 그것은 하나님-사람이 되실 때 가지셨던 그분의 인성이 부활  후에 다시는 죽지 않는 사람(인성)이 되신 것을 의미한다(계 1:18). 3) 이 맏아들은 우리가 형상을 본받도록 창세 전부터 예정된 바로 그분이시다(롬 8:29).

 

조금 어렵긴 하지만 사실 저도 여기까지 이해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저도 처음에는 뭐가 그렇게 복잡한가? 하는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었고, 주일학교  때부터 들어오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생소한 정보들에 대해 경계심도  발동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문득 내가 예전에 알았던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차피 성경 본문에 있는 내용이니 알려면 제대로 알아보자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특히 이 주제를 이해하는데 아래 말씀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한 분에게서 났으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을 형제들이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히 2:11). “ 알의 이 땅에 떨어져 …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 12:24). “미리 아신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게 하시려고 …그분의 아들을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롬 8:29).

 

 

 

 주님자신을 끊임없이 비워드림으로

주님을 알아가는 지식에서  자라가게 하옵소서아멘.

에세이,예수님,맏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