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33회 -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에세이
청지기 , 2021-06-04 , 조회수 (431) , 추천 (0) , 스크랩 (0)


제 안에  음악과 관련한 몇 가지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타를 배우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잠시 친구 집에 있는 기타로 C, G7 등 코드 잡는 법과 ‘물망초’ 이런 거 배우다가 손끝이 아파 그만두었습니다. 최근에도 유클랠리라도 좀 배워볼까 하고 유튜브 보고 며칠 따라 하다가, 이 역시 진도가 잘 안 나가 빌려온 유클랠리를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또 하나는 악보 보면 바로 따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건데, 음악 석사까지 하신 한 자매님이 그게 쉬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찬송과 악기 연주를 할 줄 알면 교회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진작부터 알았지만, 이처럼 아직은 미완의 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아래 말씀을 묵상하면서, ‘찬양의 희생 제물을 드림(offer up a sacrifice of Praise)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새삼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계속 하나님께 찬양의 희생 제물,

 그분의 이름을 시인하는 입술의 열매를 드립시다( 13:15).

 

위 본문을 처음 읽었을 때는 별 느낌이 없었고, 앞으로 찬송을 더 많이 불러야 하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또 자료들을 추구하자 아래 몇 단어에서 단물이 조금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대부분의 영어 번역은 헬라어 원문에 따라 예수님을 통하여”(through Him) 문장  앞에 두었습니다. 헨리 알포드는 이에 대해, “유대교식 예법에 따르지 않고”(not by means of the Jewish ritual observances)  “그분을 통하여”를 강조한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말은 찬미도 구약의 방식이 아니라 제물의 실재이신 ‘그분’을 통해 드려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즉 그분을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찬송도 위 본문이 말하는 ‘찬미’가 아닐 수 있습니다. 관련해서 다음 두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첫째, 주 예수님은 죽고 부활하신 후 지금은 생명 주는 영으로서 하늘 보좌와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계십니다. 따라서 찬송을 부르든지 반주하는 악기를 다룰 때 우리는 최대한 거듭난 (연합된 고전 6:17) 사용하고 또한  영을 해방해야 합니다아무리 음정, 박자, 화음이 잘 맞아도 이러한 영의 흘러나옴과 영의 만져짐이 없다면 그것은 좋은 음악회는 될 수 있어도 본문이 말하는 찬미는 아닐 수 있습니다.

 

둘째“내가 주님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맏아들이신 주 예수님이) 교회 가운데서 주님(아버지 하나님) 찬송하는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히 2:12)라는 말씀을 적용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최소한 우리의 영 안에 계시는 생명 주는 영이신 맏아들께서 교회집회(특히 성만찬 집회 후반부)에서, 우리의 찬양 안에서 아버지를 찬양하시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 방면을 익히 알고 또 매주 실행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느새 교리가 되어버리고 실재가 많이 부족했다는 돌이킴이 있습니다. 오 주님, 우리 중에서 맏아들이신 예수님과 하나 된 “그분을 통한” 찬미를 더 많이 얻으소서 라는  기도가 제 안에 있습니다.

 

계속: 알포드는 ‘continually’(계속)에 대해 “레위기의 희생 제사처럼 특정한 날이나 절기 때만이 아니라 우리의 사는 모든 날 동안(but all through our lives)” 이러한 찬미의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합니다.

 

찬양의 희생 제물(제사) :솔직히 ‘찬양’은 뭔가 기쁘고 밝은 느낌을 주는 반면에, ‘희생 제물’(혹은 제사)은 다소 무겁고 어두운 느낌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기자는 이 상반된 듯한 두 단어를 하나로 묶어 놓았습니다. 영적 체험이 없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워치만 니의 아래 설명을 읽고 난 후에 이 말씀이 매우 투명하게 이해되었습니다.

 

찬미의 말은 …징계와 연단을 받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다. 시편에서는 가장 깊이 상처받은 감정을 만질 수 있고 또한 가장 크고도 높은 찬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많은 고난과 어려움과 비방을 받을 그때 그들에게서 찬미를 만들어 내시고그들이 그런 처지에서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게 하신다그러므로 가장 기쁘다고 느끼는 사람의 찬미 소리는 많은 경우에 하나님 앞에서 어려움을 겪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또한 이런 찬미가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높은 산에 서서 얼굴을 가나안으로 향하고 약속의 땅을 바라볼 때만 찬미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죽음의 골짜기 지날 때도 시편을 쓰며 찬미할  있기를 바라신다이것이 참된 찬미이다. …히브리서 13장 15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사란 무엇인가? 곧 희생이다. 제사는 죽음과 손실이 있다는 것이다. … 본래 여러분의 것이었던 소나 양을 가져다가 제사로 드린다면 여러분은 그 소나 양을 잃은 것이다. 제사를 드림은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이다”(워치만 니, 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 제2권, 한국복음서원, 110-111쪽).

 

그는 이어서 “기도할 수 있을 때는 기도하고 기도하지 못할 때는 찬미하라”고 하고, “마음은 상처로 인해 아프지만 영은 여전히 찬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위의 책, 115-116쪽). 최근 한 1년 정도 주권적으로 안배된 어떤 환경을 거쳤습니다. 그때는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무겁고 가라앉은 느낌만 있었고, 위에서 말하는 영으로 주님을 찬미할 기회는 얻지 못했습니다. 위 말씀을 묵상하면서 만일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주님의 긍휼을 입어 저도 ‘찬미의 희생 제물’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구했습니다.

 

우리가 드립시다: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우리가’라는 부분을 살려 번역한 것도 있고 편의상 생략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 성경은 ‘Contemporary English Version’만 의역을 했고 나머지는 모두 ‘let us offer up’ 즉 ‘우리(히브리 기자가 포함한 모든 성도)가 드립시다’라는 부분을 살려 번역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단지 소수의 성가대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의 실재로 소유한 모든 몸 안의 지체들이 찬미의 제물을 드릴 수 있고 또 드려야 합니다. 이 말씀을 누리면서 문득 이런 찬송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부서진 자가 주께 드리는/ 영 안에 타는 거룩한 향기/ 성령에 의해 불붙여져서/ 믿음의 호소로서 전달돼/ 은혜로 나온 향료 속에는/ 믿음과 사랑 고난 섞였네/ 말씀에 가득 감추인 향기/ 하나님 흠향하고 맛보셔 (552).

 

 

오 주 예수님, 우리 모두에게서 히브리서 13장 15절이 말하는
“찬미의 희생 제물”을 받으시옵소서!

이 말씀의 부담과 그 빛 비춤이 우리 모두에게 이해되고, 체험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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