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30회 - 굿맨과 갓맨
에세이
청지기 , 2021-05-14 , 조회수 (620) , 추천 (0) , 스크랩 (0)


사람은  사는가?라는 질문은 우리 존재의 근본을 건드립니다.  이에 대해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에서 시인은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명문 대학 출신으로 알려진 모 대중 가수는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고 노래했습니다. 요즘 즉문즉답으로 꽤 유명한 한 종교인은 “왜 살아야 하느냐”라는 한 청년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람이 하루하루 사는 데에는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사는 거예요. 풀이 자라는데 이유가 있나요? 토끼가 자라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처럼 사람이 사는 것도 다 그냥 사는 거예요.”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갖게’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창 1:26, 롬 8:29). 이 두 구절에 대해 추가 설명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아무튼 이것이 하나님의 인간 창조 목적 혹은 사람이 존재하고 사는 이유입니다.

 

나의  욥에 대하여  살펴보았느냐? … 그는 여전히 순전함 굳게 지키고 있다”( 2:3).

사랑하는 여러분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우리가 장차 어떻게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분과 같아지리라 것을 압니다(요일 3:2).

 

아침에 위 두 구절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욥처럼 선한 사람과 주님과 거듭난 사람들 같은 하나님-사람()은  언뜻 보면 비슷해 보여도 사실은 큰 차이가 있음을 다시 한번 보게 되었습니다.

 

선한 사람(욥): 욥기 1장 1절은 욥을 “온전하고(perfect) 올곧았으며(upright)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런데 위 본문은 여기에다 자신의  “순전함(integrity)을 굳게 지킨”  욥의 장점 하나를 더 추가했습니다. 이 정도면 욥은 각종 선한 사람들(good men), 예를 들면 위인전기집에 수록된 위인들, 공자와 맹자와 같은 윤리 도덕 방면의 현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 했던 바리새인들, 오늘날의 내로라하는 종교인들 못지않은 인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욥도 한순간에 전재산이 날아가고, 바람에 집이 무너져 자식들 전부가 한꺼번에 죽고, 자신도 온몸에 지독한 종기가 나게 되자, 1) 불평을 늘어놓고, 2) 하나님께 의문을 제기하며, 3) 친구들을 비난하고, 4) 자신을 정당화하며, 5) 사는 것이 진저리 나며 죽기를 원한다고 말함으로써 천연적으로 선한 사람의 한계를 드러내었습니다(욥 6:1-30, 7:11-21). 이런 모습은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이해되는 반응입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과 사도 바울 같은 하나님 사람()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보였던 반응과는 크게 대조됩니다(마 26:39, 고후 1:8-9). 이 두 유형의 사람들의 차이가 눈에 보이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 사람(예수님):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체가 되셨을 때, 이 땅에 최초로  하나님 사람, 즉 갓맨(God-Man)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이 땅에서의 33년 반의 삶은 하나님 사람의 삶, 즉 자신 안의 아버지의

인격을 사람의 아들(인자)의 위치에서 살아 표현하신 것이었습니다(요 6:57 상). 그분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항상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들만을 행하셨습니다(요 5:30,  8:28). 이것을 위해서 그분은 죄 없는 인성을 가지셨음에도  끊임없는 자기 부인이 요구되었습니다.

 

하나님 사람들(우리들): 최초의 하나님 사람이셨던 주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알로 죽고 부활하심으로 이 땅에 많은 밀알들인 하나님 사람들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요 12:24).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인데, 그도 회심 후에는 더 이상 자신을 살지 않고 자기 안에 또 다른 인격이신 그리스도를 살아 표현했습니다(갈 2:20).

 

위 본문은 참되게 거듭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 즉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내주하시는 하나님 사람들임을 말씀합니다. 아울러 이들 모두가 현재는 주 예수님이나 바울처럼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표현하지는 못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지금은 ‘미운 오리 새끼’의 모습일지라도 생명이 자라게 될 때 어느 날 그들이 ‘오리’가 아니라 사실은 ‘백조’였음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비록 ‘칠면조’처럼 보여도 사실은 ‘백조임을 알고 그 백조의 생명과 인격을 산다면, 그 인생은 복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아멘.

 

 

 

 

 주님우리의 신분이 하나님 사람들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인격을 살아 표현하도록 매 순간 당신과 연결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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