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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02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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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들은 제가 읽은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내용의 분량이 많지만...아주 일부분만을 발췌하여 적어드립니다. 잘 읽어보시고 한번 서로 고민하는 지체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책 제목이 필요하시면 연락을 주시면 나중에 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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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어떻게 몸의 생명을 빼앗는가?
“필자가 이 단원에서 현대 ”목사“의 직책과 역할을 묘사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필자는 이 역할을 감당하는 특정한 개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목사의 직책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종종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섬기는 열정이 있는, 유능하고 존경할 만하고 꽤 괜찮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단원에서 앞으로 보여 주겠지만, 그들이 성경과 교회 역사에 어긋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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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성경적인 성직자-평신도 구분은 그리스도의 몸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해를 끼쳤다. 그것은 성도의 공동체를 1급과 2급 크리스쳔들로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성직자-평신도의 이분법은 무시무시한 거짓을 영구화시켰다. 말하자면 주님을 섬기는데 있어 다른 크리스쳔들보다 더 특권을 누리는 누군가를 만들어 내었다.
교회 역사에 대한 우리의 무지가 우리로 하여금 강도당한 것도 모르도록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한 사람 중심의 사역은 신약성경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우리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우리는 산 돌이지 죽은 돌이 아니다. 그렇지만 목사의 직책은 우리를 숨쉬지 못하는 돌로 바꿔 버렸다.
필자가 흥분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목사의 직책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 당신의 권리를 도적질해 갔다. 그것은 당신의 입을 막고 당신을 회중석에 꽁꽁 묶어 놓았다. 그것은 목사를 거대한 입으로 만들고 조그만 귀로 둔갑시킴으로써 몸의 진실을 왜곡시켜 버렸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능숙하게 설교를 받아 적고 헌금접시를 돌리는 벙어리 구경꾼이 되게 했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현대 목사의 직책은 히브리서 주제인 “옛 제사제도의 철폐”를 전복시켰다. 그것은 교회의 모임에서 사역할 권리와 특권이 각 지체에게 있음을 알려주는 고린도전서 12-14장의 가르침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형제와 자매가 실질적인 제사장이라는 베드로전서 2장의 메시지를 무효화시켰다.
실질적인 제사장의 역할이 고작 회중석에서 찬송을 부르거나, 예배 때 손을 들어올리거나, 오버헤드 프로젝트 위에 찬송 가사를 바꿔 놓거나, 아니면 주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같은 옹색한 활동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사역의 신약성경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들은 목사의 사역에 단순히 보조원 노릇을 하는 것뿐이다.
어떤 학자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까지 대부분의 개신교 예배는, 평신도 절대 다수가 찬송 몇 개 부르고 기도하는 자세로 주의 깊게 듣는 가운데, 목사가 사역활동(그리고 성가대의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압도적으로 받아들이는 풍조에 의해 감염되었다.”(J.G Davis The New Westminster Dictionary of Liturgy and Worship, 1st American Edition(Philadelphia : Westminster Press, p. 292 )
우리는 마치 목사를 무슨 숙련된 전문가로 취급한다. 의사나 변호사는 우리를 섬기기를 기대하지, 우리를 훈련시켜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들이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목사를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뿐 아니라 상호간에 제사장이라는 진리를 왜곡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현대 목회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가 머리로 활동하심에 반대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서 우두머리와 중심의 독특한 자리를 불법적으로 차지하고 있다. 오직 한분이신 주 예수님을 위해 비어 두어야 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목사는 자신을 교회의 인간 우두머리로 높여서 그의 직책으로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대 목사의 역할만큼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성취를 방해하는 존재는 없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자유롭고, 열려있고, 몸 안에서 모든 지체가 기능을 발휘하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데에 그 목적의 중심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목사의 직책이 존재하는 한 , 당신은 그런 것을 결코 목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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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목사는 현대 기독교에서 가장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존재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목사의 존재를 인정하는 단 한 가닥의 증거도 없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듯 감추어진 증거도 없다.
오히려 현대 목사는 이그나시우스(Ignasius) 와 키프리안에 의해 널리 퍼진 단일감독체제에서 유래했다. 감독은 지역 장로로 서서히 탈바꿈해 갔다. 중세 시대 때의 장로는 카톨릭의 사제가 되었다. 종교개혁 때는 “설교자” 또는 “사역자” 로 바뀌었고, 결국 개신교 전체가 목을 매고 있는 “목사” 가 탄생했다. 이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개신교 목사는 약간만 개혁한 카톨릭의 사제일 뿐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무렵, 카톨릭 사제들에게는 7가지의 임무가 있었다. 설교, 성사, 양떼를 위한 기도, 경건한 삶, 연단, 교회의식, 가난한 자의 구제, 그리고 병자 방문이 그것이다. 개신교 목사는 위의 모든 임무들을 자신에게 지우고, 거기에 가끔 사회의 행사들에 가서 축복해 주는 것을 첨가했다.
유명한 시인 존 밀튼(John Milton) 은 다음과 같이 멋지게 표현했다.
“ 새 장로는 옛 사제를 크게 썼을 뿐이다! ”
이것을 해석하면 현대목사는 옛 사제를 큰 글자로 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