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25회 - 욥의 질문, 긴 침묵 그리고 답변
에세이
청지기 , 2021-04-10 , 조회수 (567) , 추천 (0) , 스크랩 (0)


제가 욥기를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때입니다. 다니던 감리교회 고등부 교사가 학생들에게 욥기를 한 달간 읽은 후에, 각자 느낀 것을 발표하자고 했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욥기를 읽었지만, 솔직히 중점을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만 사탄도 여호와의 면전에 설 수 있다는 것, 욥이 갑자기 온갖 재앙을 만난 것, 욥과 세 친구들이 나눈 긴 대화들이 조금은 지루했던 것, 욥이 눈으로 주님을 뵌 후에는 그 많던 자기 자랑이 사라지고 오히려 자신을 혐오하게 된 것에 인상적이긴 했습니다. 이번에 교회에서 함께 욥기를 추구하면서 욥기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래 말씀을 묵상하고 추구했습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아뢰겠네.

 저를 악하다 여기지 마시고

어찌하여 저와 겨루시는지를 알려 주십시오”( 10:2하).

 

성경은 욥이 (아라비아 사막 서쪽 에돔의 한 성인) 우스  사람이라고 하고, 여호와께서 노아와 다니엘과 이 세 사람을 함께 언급하신 것을 볼 때 그는 실존 인물이었습니다(욥 1:1, 애 4:21, 겔 14:14). 성경 연구가들은 그가 살던 시기를 아브라함 시대(BC 2000년경) 늦어도 모세의 때(BC 1400년경)를 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오래전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욥처럼 경건한 사람이  고난을 받는가?라는 질문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주제입니다. 분명한 것은, 선한 사람은 복 받고 악인은 벌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틀 안에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됩니다.

 

욥의 질문: 성경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경우 인간적인 관념으로는 복을 받아야 하나, 욥은 오히려 졸지에 그 많던 재산과 자식들을 잃었습니다. 더구나 본인도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지독한 종기가 나서 극심한 가려움증에 시달립니다. 욥의 몰골은 문병 온 세 친구들도 몰라볼 만큼 상해 있어서, 그들이 칠 일 밤낮을 함께 있으면서도 아무도 욥에게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위 본문은 이러한 비참한 상태 중에 욥이 한 말이었습니다.

 

이것은 요즘 말로 ‘주님저에게  이러세요?’ 혹은 ‘why me?’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몇 구절 뒤에서는 “주님은 이러한 일들을 주님 마음속에 감추셨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이 주님께 있는 줄을 압니다”라고 고백합니다(13절). 이것은 욥이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 마음속에 감추인 어떤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욥기 안에서는 어디에서도 그 해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침묵: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방식은 점진적입니다. 따라서 어떤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경 전체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그 예입니다(창 1:26). 욥과 같은 의인이 고난을 받는 이유도 마찬가지인데, 그 해답은 바울 서신에서 완전하게 계시되었습니다. 이번에 추구하면서, 욥이 막연하게 짐작했던 그 비밀은 “영원부터 모든 세대에 걸쳐 감추어져 왔고”(골 1:26), “다른 세대에서는 하나님께서 이 비밀을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려 주지 않으셨다”(엡 3:5)라는 말씀이 제게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그야말로 영원부터 구약을 거쳐 신약 시대까지 이어져 온 그분의 ‘긴 침묵’인 셈입니다.

 

욥의 질문에 대한 해답: 이 주제를 묵상할 때 두 구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겉사람은 썩어 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말씀입니다(고후 4:16).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함으로써 선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롬 8:28). 참고로 여기서 ‘은 바로 다음절의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는 (29절)인데, 이것은 고난을 통과할 때 그리스도를 더 얻어 신진대사적으로 변화됨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욥이 고난 받는 이유는 그의 경건한 옛사람이 벗겨지고, 그리스도의 요소를 가진 새사람으로 조성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영원 전에 예정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생명 주는 영으로 오셔서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의 혼을 변화시키시고, 우리의 몸을 변형시키심으로 성취될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신약의 서신서 이전에는 예표와 그림자로만 암시될 뿐, 분명한 말로 알려주기가 어려우셨던 것입니다(요 16:12-13참조).

 

이번 추구를 통해  제 안에 두 가지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첫째는 선과 악과 지식이 같은 범주(나무)이고, 이들 그 안에는 생명(나무)이 없다는 것, 둘째는 강재구 소령이나 <데미안>, <생의 한가운데>를 번역 소개한 전혜린 씨처럼 굵고 짧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가능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허물고 새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던 비밀의 경륜을 밝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고난의 환경을 통과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대신에 그리스도를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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