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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01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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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찬 목사님께서 남기신 글입니다.
: 안식일에 대한 글을 올렸다고 안식교로 생각하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 저는 안식교와 구원파와 상관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 저는 서울 개혁신학연구원(이진태 원장) 출신이며 군산 노회에서 안수 받았습니다.(개혁) 그리고 지금은 목사로 활동합니다.
: 앞으로도 많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김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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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요한이 살았을 때 그가 옛 언약에 속한 자인가? 새 언약에 속한 자인가?
: 사실 세례요한만이 아니라 예수 공생애 당시의 모든 사람이 옛 언약에 속하였다는 것이다. 예수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옛 언약에 속한 것은 새 언약이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새 언약은 예수의 죽음으로 되는 것이다.(언약의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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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예수의 죽음으로 새 언약이 새워진 것이 신약의 모든 교회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새 언약에 이제 비로써 들어오게 된 것이다.
: 주기도문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당시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게 성도들로 여김을 받는 것이 시작된 것이다. 누구도 예수의 죽음이전에는 죄가 온전히 사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의 죽음으로 비로써 온전히 죄가 사하여 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사람들이 죄가 사해지지 않았다는 그 증거는 그들이 하나님의 처소인 낙원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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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가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낙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며 예수의 죽음으로 구약의 성도들의 영이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써 하늘에 올라간 것이다.(구약에서 죽은 자들은 영혼이 음부에 있다는 것이 아닌 영이 음부에 있다고 표현하고 신약에서는 영이 낙원에 있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영혼이 낙원에 있다고 표현한다. 그 차이는 혼이 있어야 낙원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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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사실은 예수의 죽음이 오기 전에는 그들의 죄가 온전히 사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례요한보다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들이 더 큰 자라는 것은 예수의 사역 중에는 누구도 세례요한과 같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에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신약의 성도들이 비로써 믿음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며 그 일이 오순절의 성령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들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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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예수 이전에는 죄 사하는 일이 실재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는 이렇게 죄 사하는 일과(십자가) 그들의 영혼이 안식하는 일과(낙원의 준비) 그들을 위해서 부활한 것이다.(재림에 대한 부활의 소망) 신약시대에는 예수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가 실재로 사해지며 그리고 그들이 죽으면 실재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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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예수가 세상에 오셔서 죄에 대해 의를 이루는 그 일이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일을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다. 즉 의를 이루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을 때에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이며 이는 그가 죽음으로 이루는 그 죽음이의를 이루는 것이다.(요나의 표적 밖에는 다른 것을 보여줄 표적이 없다는 것도 예수가 이루려는 십자가의 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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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음이 임박한 상태에서 그는 하늘을 보고 다 이루었다는 큰 소리로 그의 영혼이 떠난 것이다.(요나의 표적) 의를 이루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의 십자가의 죽음이 있기 전에는 누구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온전히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세례요한과 같은 이스라엘의 대 선지자인 그도 신약에 오순절로 오게 된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과 구분된다는 것은 예수의 말씀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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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세례요한과 비교해서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들은 가장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 보다 큰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세례요한이 장차 예수의 죽음으로 오는 신약시대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두고서 이야기 한 것이다.(세례요한이 예수보다 먼저 죽었음) 즉 그 예수의 사역 당시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왔으나 아직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누구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으로 그 나라에 비로써 성도들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의 죽음으로 비로써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아버지의 참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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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죽음은 죄를 사함 받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버지가 되어 그에게 영광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 이전에는 사실 예수께서 말씀한 아버지는 사람들의 참 아버지가 아닌 예수의 아버지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으로 사람들이 예수로 말미암아 비로써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예수의 죽음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신약의 성도들로부터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수의 죽음 이전에는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죄가 있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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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시대에서는 참으로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며 그 일이 예수의 죽음으로 된 것이며 이것은 비로써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예수가 죽기 전에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예수의 죽음으로 예수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예수가 죽어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리고 우리를 비로써 양자 삼게 된 것을 의미한다.(신약의 중생은 예수의 죽음으로 모든 성도가 믿음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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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가 죽음으로 이룬 신약의 백성들은 심지어 예수가 죽기 전 예수와 함께한 대 선지자인 세례요한보다 신약시대의 하나님 나라에 있는 교회 중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구약 시대 가장 큰 선지자인 세례요한 보다 큰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세례요한이 예수의 부활로 오는 신약시대에 살지 못한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서 말한 예언적인 성격이다. 이와 같이 세례요한이 예수이전에 죽을 것을 예수는 알고 있었고 그가 신약의 교회시대에 포함되지 않고 죽을 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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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로 오는 육체의 부활로 육체가 있는 우리처럼 실재로 죄가 예수로 사해지는 삶을 세례요한이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으로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의 모든 사람들의 육체적인 삶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며 이는 성령이 그들 안에 내주하여서 실재적인 구원의 죄 사함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세례요한의 삶이 예비자의 삶이다. 사실 이스라엘의 모든 과정은 예수로 이루는 것을 두고서 그 나라가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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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계획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구원이 아닌 이방인의 구원이었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때가 차매 그가 이러한 일을 이루기 위해서 사역을 감당한 것이다. 세례요한의 생이 예수를 위한 철저한 희생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예수가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일하였다면 당시의 상황이 헤롯의 정치아래서 정치적인 것으로 일찍 죽는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약 삼년의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세례요한의 예비 된 길과 그의 죽음이 예수의 사역에 도움을 준 삶이라는 것이다.
: 처음부터 두 사람의 길은 색깔이 다르게 나타난다. 요한은 정치적으로 대항했고 예수는 종교적으로 일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헤롯이 단순한 종교적인 예수의 활동으로 바라보게 한 것이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무모하게 헤롯에 대해서 공격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세례요한이 예수를 위해서 미리 죽기로 이미 정한 예비자의 삶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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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헤롯에 대해서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굳히지 않고 비판하면서 일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종교적인 예수의 활동은 유대교가 있는 헤롯이 볼 때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 이렇게 예수는 세례요한의 삶과 다른 삶이 나타난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군중들에게 인정받는 헤롯이 예수를 두려워했던 이유가 된 것이다. 백성들에게 조금이라도 인정받으려는 헤롯은 예수의 군중들의 인기를 무시하고 그를 가둘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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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의 정치적인 운동인 독립운동이 있었고 헤롯은 군중에게까지 인심을 잃어서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이유이다. 그러한 이유로 정치적인 대항을 한 세례요한을 쉽게 죽일 수 없었던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은 세례요한을 죽인 것도 헤롯이 원해서 죽인 것이 아닌 헤로디아가 세례요한의 목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 고민한 가운데 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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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정치적인 희생은 먼저 세례요한이 된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 의해서 예수는 어느 정도는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수는 먼저 군중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비판의 칼을 들었던 것이며 종교지도자들도 예수가 군중들의 인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그를 쉽게 해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구약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 준비된 길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종말에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가기위해서 군중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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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결국 군중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준비 된 것이다. 그 예수가 유대의 왕이 될 것에 대한 군중들의 요구와 그 요구에 대한 그의 거절은 그가 유대인들로부터 빌라도에게 넘겨지는 원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최후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세례요한과 같이 헤롯에 대한 저항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그가 왕이라는 말에서 들어난 것이다. 그가 단순한 종교적인 활동으로 백성들에게 계속 인기를 얻고 헤롯을 자극하는 왕이라는 표현을 삼가고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온순한 태도를 보였다면 그는 희생하는 것을 어느 정도 피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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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는 이러한 자신의 안위보다는 자신을 희생하는 정 반대의 길로 걸어간다. 군중들에게 인정되는 것을 포기하였고 이미 종교 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고 그를 종교지도자들은 언제든지 기회만 있으면 잡아서 죽이려는 것이 그들의 자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유대의 왕인 헤롯에게까지 대항하는 유대의 왕이라는 심각한 정치적인 발언이 문제가 되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가 군중들에게 이미 인심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던 헤롯은 그를 죽이는 일에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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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중들의 실망에 대한 헤롯의 결정은 군중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만약에 아직도 그가 군중에게 인정되는 선지자의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유대의 왕인 헤롯은 예수를 쉽게 죽음으로 넘기 우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의 군중지지도가 떨어지고 그가 헤롯에 대한 반항적인 말인 하나님의 아들과 유대의 왕과 과거 헤롯이 지은 성전을 헐어야 된다는 것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예수를 헤롯은 더 이상 살려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에 대해서 실망한 군중들에게 인정되려고 헤롯은 예수를 쉽게 빌라도에게 넘긴 것이다. 빌라도도 군중들이 예수를 죽이라는 목소리를 듣고서 그가 군중들로 인정되는 것을 이 한사람 예수를 살려 둠으로써 잃어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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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예수는 자신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스스로 죽음으로 걸어간 것이다.
: 먼저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대항하고 그 다음에 군중들에게 인심을 잃어버리고 그 다음에 헤롯에게 저항한 것은 그가 충분히 죽음으로 걸어가는 길을 스스로 열어놓은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있기 전에는 세례요한의 역할이 방패막이가 된 것이다. 그의 희생이 예수 사역의 길을 순탄하게 한 것이 된 것이다. 예수는 이러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 철저히 준비 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가 정치적으로 희생한 것도 결국은 그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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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가 유대인의 구원을 위해서 왔다면 그는 비유로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숨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유대인에게 숨긴 것은 자신의 온전한 신분이 유대인에게 알려지면 그가 이루고자 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비유나 비사로 가르친 것이 신약시대의 교회에서는 마치 밝히 드러나 세상에 선포되게 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온 세상에 선포하게 된 것이다.
: 그가 이렇게 신약시대의 구원을 위해서 철저히 자신을 유대인에게 숨기고 제자들에게는 은밀하게 알려 준 것이다. 제자들에게 유대인들과 같이 비사로 하지 않고 풀어서 알려준 것은 그들을 자기의 제자 된 증인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실재로 제자들은 예수의 증인이 되어서 예수처럼 희생하는 삶을 살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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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예수의 사역에서 이적들은 사실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그 의를 이루고자 했던 것을 이루기 위해서 행한 것이다. 그의 기적으로 군중들에게 인정된 사실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가 죽음에 앞서서 기적으로 군중에게 다시 인정될 수 있었으나 그의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공생애는 세상에 분명히 그가 걸어간 발자취를 남기고 간 것이다. 이러한 일을 위해서 그의 기적이 사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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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십자가로 자기백성들에게 죽는 것을 위해서 걸어간 공생애의 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와서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들의 삶을 살았고 사람들과 같이 죽음을 고통으로 맛본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그를 영접할만한 하나님 아들의 구원의 길이었다.
: 추가: 예수의 만찬은 제자들에게 새 언약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 만찬 자체가 새 언약이 된 것이 아닌 새 언약에 대한 예언적인 성격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죽음에 앞서서 유언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그 유언한 자가 죽어야 새 언약이 성취되는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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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글들은 기독교 신문들의 자유계시판에 계제되어 있습니다. 참고 하세요)
: <반론 글>
: 구약의 성도들도 물론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장차오는 예수로 말미암아 미래를 바라보고 하나님께 용서된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과 달리 기다린 구원의 백성이라면 신약의 백성은 현재 실제적인 구원의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요 라는 말씀과 같이 성경이 이를 증거 한다) 그들은 용서를 미래 예수로 받았지만 죄 사함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짐승의 피가 사람의 죄를 씻어주었다면 이는 예수가 오실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의 죽음으로 그들도 낙원에 이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오기 전에 그들이 낙원에 이르렀다고 가르친다면 예수가 요한복음에서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는 것과 불일치합니다. 이미 신학적으로 그 처소는(요한복음14장) 재림의 것이 아닌 예수 자신이 죽음으로 이루는 처소라는 것이 분명하게 이해된다는 것입니다. 혹시 글에 대해서 의문이 있으시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그럼 주안에서 평안하세요................김인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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