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는 목사를 심판할수 없다.\
성경진리토론방
, 2003-11-19 , 조회수 (370) , 추천 (0) , 스크랩 (0)
이글을 읽고 다시는 주님의 종을 대항하지 마세요.
주님의 종도 사람입니다. 그리고 실수하더라도 절차가 있습니다.

목사는 교인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종이다.
성도에게 목사를 해임하라는 권한을 예수나 사도나 그리고 그 누구도 준 적이 없다.
이러한 발상은 목사를 교인의 종으로 본 잘못된 시각에서 나타난 것이다.

안수한 자를 교인이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도 없었던 기독교의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 단면이다.

교인이 안수해서 세운 것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서 세운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이 사람들로 심판받는 권한이 일찍이 없었다는 것이다.
교회의 세속화는 목사를 세상에서 세상의 신분으로 생각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목사는 목사들에 의해서 평가되고 해임될 수 있어도 교인들에게 되는 것은 성경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이다.

누가 감히 목사를 교인들의 희생양으로 삼을 권한을 주었다고 초대교회와 그 이후 교부 시대에서 찾을 수 있는가?
목사를 심판하는 한국교회는 대단히 세속화 된 교회라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교회에 해당된다는 사고는 교인들의 심각한 착각이다. 목사는 교인이 원하지 않아도 교회에 세워질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가 사람의 세움이 아닌 하나님의 세움이라는 것이다.

요즘 목사에 대한 재신임이라든가 또는 목사에 대한 교인들의 불신임 등을 거론한다. 그들이 교회를 그들의 것으로 착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목사는 교인의 것도 아니며 교인들이 세운 것도 아니며 교인들이 해임하는 것도 아니다.
사도가 교인들에 의해서 세워졌는가? 그들을 교인이 해임하는 것이 성경에 있는가?
얼마나 세속화의 교회로 만들 것 인가?

이재 교회의 권위가 사람에게서가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으로 회복해야 한다.
목사는 성도에 대해서는 감독자이며 하나님에 대해서는 종이라는 것이다.
과거 가톨릭이 중세시대 왕정정치를 따라간 것으로 타락 했듯이 개신교는 민주주의 정치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정치를 따라간 교회는 이재 세상에서 유일한 신본주의 정치를 회복해야 된다.

목사는 성도들의 종이 아니다. 목사는 성도들을 감독하는 자이다. 감독자를 성도들이 해임할 권한이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목사는 세상의 직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직분이다. 그 원리는 아래로부터 세운 것이 아닌 위로부터 세운 자이다. 안수는 이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성도들이 안수해서 세울 수 없는 것이다. 투표의 원리보다 안수의 원리가 최종적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목사를 해임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도전이며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안수한 자들을 재신임할 권한이 성도들에게 없다는 것이다. 안수를 포기하게 할 권한이 성도에게 없다. 목사는 성령으로 안수해서 세운 자들이다. 성령을 대신하려는가?
목사는 목사들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교회의 질서가 세상의 논리에 의해서 심각한 위기에 닥친 것이 틀림없다.

목사를 교인의 종으로 생각하는 착각은 과거에는 일찍이 없었다. 민주주의 시대에 교회도 민주국가와 같이 생각한 나머지 목사를 국회의원같이 생각하게 된 것이며 교인이 주권을 가지고 세울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성경에 사도가 교인의 종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는 교회를 감독하는 사도로써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러한 권한으로 교회를 다스린 것이다.

시대에 의한 세속화는 교회를 이재는 세상의 집단으로 만들려고 한다.
사도를 해임한 일이 있는가? 그리고 그 직분을 교인이 거두어갈 권한이 있는가? 감독을 성도가 심판할 권한이 없다는 것은 성경의 상식적인 논리이다.
오늘의 목사는 교인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이다. 교인의 종이라면 교인이 임으로 선택하고 임으로 해임한다고 할 수 있다. 과연 그런가?

목사는 교인의 종인가? 그렇지 않다. 목사는 교인을 다스리는 감독이다.
그리고 스스로 일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대리적인 권한이며 이는 세상의 국가나 그리고 성도나 어떤 것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만 나온다. 그들은 자신의 일이 아닌 그리스도의 대리적인 사역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권한을 성도들이 투표로 포기하게 할 수 없다.

세상의 집단이 아닌 하나님의 교회이며 하나님의 교회의 목사이다. 하나님의 성도가 하나님의 목사를 해임할 권한이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도가 주를 대신하려는 것인가? 성도가 교회를 개혁하면 민주주의 교회를 만들고 말 것이다. 실재로 요즘 교인들이 목소리는 대모로 나타나고 민주적인 교회를 요구한다.
교회는 성도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성직도 그렇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닌 신본주의의 유일한 원리만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는 이재 교회를 교인의 교회로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개혁은 교회의 목사들에게 자신들의 요구대로 민주주의 교회를 요구한다. 그러나 결코 될 수 없는 것은 성령이 교회에 있고 성령이 세운 감독이 있다는 것이며 성령에 의해서 부름 받은 성도가 있다는 것이다.

목사는 성도들에(교회) 대해서는 갑독자이며 하나님에 대해서는 종이다.
과거 가톨릭이 왕정정치에서 교황정치로 달려가 오늘에까지 이른 타락이라면 개신교는 민주주의 정치에 의해서 민주주의 교회 정치로 달려가려고 한다.
그 결과는 심각한 교회의 질서 훼손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인제사장으로 평등을 주장한다. 그러나 만인 제사장이 구원론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교회론은 평등보다는 교회의 질서이다. 질서를 위해서 사도가 있었고 감독이 있었다. 이러한 것이 만인제사장으로 평등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성경을 잘못 본 것이다. 이러한 만인 제사장은 위에서 볼 때에 그런 것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동일하게 본다. 우리의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나이와 직업과 신분을 보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구원도 그와 같이 적용된다. 구원론에 의해서 이러한 영적인 신분이라는 것이다. 감독과 교회의 성직은 영적인 신분으로 우리가 되는 동시에 육적인 자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것으로 주어진 것이다. 사람의 것이 아니기에 신분을 세상의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육적인 자들을 하나님이 세운 육적인자들로 다스리게 된 다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만인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주신 것으로 하나님이 보실 때에 만인제사장이지 우리가 우리들을 만인제사장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의인으로 여긴다면 그들이 같은 의인이기에 서로 평등하다는 주장과 같다. 성도도 그렇다. 이러한 성도의 신분이 하나님이 주신 만인 성도의 칭호이다. 만인 제사장과 만인 성도가 같고 만인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도나 감독과 집사의 위치가 평등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직은 그러한 성도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다스리는 신적인 위치라는 사실이다.
신분이 사람에게서 온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서 성도도 왔으며 그 성도의 다스리는 직분도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보편적인 신분과 그들을 다스리기 위한 신분을 주신 것이다. 전자는 구원으로 모든 자가 얻는 것이며 후자는 하나님이 성도들(교회)을 다스리기 위해서 세운 것이다. 성도들의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성도들은 이러한 성경적인 것에 대해서 논박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교회의 개혁은 민주주의가 아닌 신본주의이며 이는 세속화된 세상에서 이루어야 되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개혁자들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교회의 목사에게 순종해야 되는 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진리이다. 

그리고 오늘의 목사(감독)들도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세워진 성직이다.
목사도 만인제사장이나 그 안에서 성직이 있다는 것이다.
성도라는 칭호에 목사도 포함된다. 그러나 목사 성도가 있는가 하면 일반성도가 있는 것이다. 같은 성도이다. 목사의 성직이 하나님의 것이며 그 권위로 일반 성도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성도라고 목사를 해임하거나 재신임하는 것은 목사의 성직이 성도 안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직은 직분은 하나님의 것이다. 결코 성도 안에 귀속이 될 수 없다.

초대교회는 사실상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정치가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정치이다. 그리고 그들은 홀로 정치한 것이 아니고 후에는 감독(장로들)으로 교회를 다스렸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 틀은 교부시대에서도 계속 이어져 가게 된 것이다. 사실 성직자 중심인 것이 성경의 교회정치라는 것이다. 성경 어느 한 부분이 아닌 교회의 발전을 통해서 볼 때에 더욱더 그렇다. 회중 정치는 교부가 없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교부들인 감독들로 다스려졌다. 초대교회의 정치에 대해서 더욱더 함께 연구하면서 교회의 정치를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스승도 마찬가지 이다. 자신을 가르치는 자에게 말을 실수 했다고 공개 비난하는 것은 위와 아래의 질서가 있으면 불가능하다. 오늘날 교회의 질서가 민주주의 질서라고 착각하고 있는 자들이 문제이다. 그들은 평등을 주장하나 그렇다면 질문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의 아버지에게 평등을 주장할 수 있을까? 만인 제사장이라고 주장하면서 성경에 대한 무지로 민주주의 평등을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성도로 모두 불렀지만 그 다스리는 것은 교사로 목사를 세운 것이다. 세상의 질서를 완전히 무시한 교회가 아닌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교회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남여 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가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착각하지 말라 교회는 세상에 있는 교회이지 세상 밖에 있는 교회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로부터 다스리는 것이다. 가정에 아버지가 있듯이 그리고 그 가정이 하나님의 작은 교회이다. 그렇다고 만인제사장으로 가족의 질서가 사라진다고 보는가? 성도들은 잠잠해야 한다. 성경적인 논리로 말하는 것이다. 교회가 대 가족이라는 사실이며 영적인 가족이라 해도 그 가족을 직접 다스리는 자는 하나님도 성령도 그리스도도 아닌 그 하나님이 세우도록 허락하시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종이 되고 성령으로 안수되어 세운자이다. 그가 그러한 권위로 다스리며 이는 교회가 영적인 대 가족임을 명심해야 한다. 교회가 영혼의 집단이라면 몰라도 육체로 있다는 사실이다. 육체로 있는 교회에 육체적인 위와 아래의 질서가 세상의 질서이며 이는 교회도 이러한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당신의 감독이 아닌 하나님의 감독이다.

교회는 영적인 대가족이다. 그리고 목사는 성도의 교사이며 성도의 감독이다. 성도들이 집단으로 그리고 한국의 모든 교인이 다 힘을 합해도 목사를 사임시키거나 제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의 직분이 교인들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족이 잘못했다고 공개적으로 세상에 선포하는 교인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아버지가 잘못한다고 세상에 공개하고 소문내는 것과 같다. 죄는 물론 처벌이 돼야 한다.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아버지의 죄에 대한 것보다는 아버지를 온 세상에 죄인으로 공개하려는 것이다.
가족은 그럴 수 없다. 가슴이 아프지만.........사랑으로 해결....
당신의 아버지가 목사라면 그렇게 하겠는가? 하물며 영적인 가족인 그리스도의 공동체에서 사랑이 없고 비난만 있다는 것은 잘못이다.
내 형님이 죄인이라고 세상에 공개하고 다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당신이 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죄 없는 당신이 먼저 그에게 돌을 던져라!
그는 당신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임을 기억하고 자신 있게 돌을 던지는 어리석은 성도가 되지 말라

<성도의 반론에 대한 답변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종으로써 교인을 다스리는 감독자로써 교인을 다스리는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목사의 위치입니다.
목사가 교인을 섬겨야 된다는 말씀은 감독으로써 감독을 잘하여서 교인을 잘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며 교인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발을 씻기신 것은 제자들이 서로 높아지려고 하는 것에 대한 모범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본래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을 수 없는 이스라엘의 선생보다 더 큰 분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모범을 보이신 것은 제자들이 서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같은 제자들에게 일차적으로 해당 됩니다. 당시 제자들은 서로 예수의 높은 위치를 얻으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같은 제자이며 장차 같은 사도가 되어서 서로 섬기는 것으로 주신 것입니다. 일차적으로 목사들에게 먼저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목사는 하나님 앞에서 높고 낮음이 없고 서로 섬겨야 되는 위치입니다.
사도는 감독(목사)을 세우고 그들은 서로 같은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도들에게 또는 자신들을 다스리는 사도들에 파송된 속 사도들에게 절대 순복하였던 것이 초대교회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예수의 교훈은 일차적으로 같은 위치에서의 섬김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는 온 교회에 모범을 보인 것이 아닌 역사적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하신 것을 사도와 교인의 관계에서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만약 어떤 목사나 교회의 교사가 가르치는 학생이나 교인들에게 발을 씻어 준다면 이는 그 목사나 교사가 그들을 가르치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모범을 보인 것이 됩니다.
그렇다고 목사나 교사가 학생이나 교인들과 같은 것이 되거나 또는 그렇게 발을 씻어주는 섬기는 것이 본래의 의도가 아닙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만 이런 교훈을 주신 것이며 이는 그들이 서로 같은 사도와 제자의 위치에서 함께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학교의 교사가 학생들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스리는 자이며 그가 학생이나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발을 씻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는 제자나 학생의 입장에서는 볼 때에 자기 위에서 가르치는 자가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오해해서 학생이나 그 선생님의 제자 된 자들이 자신을 섬겨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서도 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는 교인을 섬기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며 그 하나님께 섬기는 방법이 제자들을 삼고 그들의 하나님의 감독이 되어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양육하는 것입니다.
사실 굿이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종으로써 교인을 섬기는 것이지 교인의 종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