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인 입사 초기에, 직원들 사이에 저의 부서 과장님이 알부자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그분에게서 부자 티가 전혀 안 났습니다. 그분은 늘 빛이 바랜 회사 잠바 차림으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하루는 직원들과 그 댁의 이사를 돕는데, 아직도 흑백 TV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웬만한 집에 다 컬러 TV가 보급되었던 때였습니다. 이처럼 검소하게 사셨지만, 여기저기 조금씩 사놓은 땅값이 엄청 오른 것이 소문의 내막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지도를 펴 놓고 보면, 앞으로 어느 쪽이 개발될지에 대한 감이 온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중에 맥이 짚어지는 경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성경도 일종의 (개발) 계획서입니다. 그리고 그 계획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이 내용은 수 천 년이 지나도록 꽁꽁 감추어져 있다가 신약 성도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골 1:26). 또한 그 계획 입안자는 이 내용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알려주고자 하십니다(엡 1:9).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 비밀의 경륜을 보고, 그에 맞게 믿음 생활의 목표와 방향을 조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열려 있는 셈입니다. 한 나라의 국토 개발 정보와 식견도 유익을 주지만, 그분의 영원한 경륜을 아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여정에 엄청난 유익이 있습니다.
그대가 어떤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다른 것들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 그런 것들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딤전 1:3-4).
제가 ‘하나님의 경륜’(오이코노미아, 3622)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은 1980년대 초반입니다. 그 후 지금까지 약 40년 동안 이 개념은 제 존재 안에 점점 더 깊이 녹아들고 각인되어 왔습니다. 이것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지만, 그 핵심은 <하나님 자신, 분배, 표현> 세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분배받아 그분을 표현하는 한 단체적인 사람을 얻고자 하십니다. 아침에도 이러한 개념으로 위 본문을 읽고 묵상할 때, 제 안에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제가 이 주제로 묵상하고 체험한 것의 간략한 요약입니다.
하나님 자신: 무신론자가 아닌 한, 이 우주 안에 하나님 혹은 절대자의 존재를 다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너무 비밀스럽고 또 막연하여, 사람 밖의 초월적인 존재로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엔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계속 읽고 그리스도에 대해 점점 알게 되면서, 여기서의 하나님 자신은 곧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킴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저의 이해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것은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을 지니신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말씀입니다(골 2:9). 이것은 쉽게 말해서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전체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 한 구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라는 말씀입니다(고전 15:45 하). 이 두 구절을 토대로 좀 더 풀어 말하자면, 그리스도 자신 혹은 생명 주시는 영께서 질그릇인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그들의 영에서 혼으로,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죽을 몸까지 그 영(생명)으로 충만한 한 새사람을 얻으시는 것이 인간 창조 목적이자 그분의 경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후 4:7, 롬 8:10, 6, 11, 골 3:11).
그런데 이 개념을 삶 속에서 적용하다 보면, 죄와 같은 인간의 타락한 요소들 뿐 아니라, 사람의 눈에 괜찮아 보이는 것들조차도 주님 자신이 아닌 것은 그분의 경륜 성취에 심각한 방해 요소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철학을, 갈라디아서에서는 도덕과 율법 준수를, 히브리서에서는 종교를, 고린도전서는 영적 은사를 그리스도를 대치하는 소극적인 개념으로 다뤘습니다(WL, MD, 2권 2호, 211쪽). 위 본문에 나오는 다른 가르침도 바로 이런 것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분배: 태평양 물 전체를 작은 양동이 하나에 다 담을 수 있는가? 만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사람 안에 직접 들어오실 수 있다고 하는가?라는 질문은 매우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그리스도의 육체 되심(성육신)으로 사실이 되었습니다(요 1:14). 이외에도 하나님 사람으로서의 그분의 삶,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생명 주는 영으로 사람 안에 들어오심(분배되심)도 이성으로는 설명이 어려우나 이미 발생한 사실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경륜은 “믿음 안에”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요 10:10하).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골 1:27).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게”(엡 3:17 상). “나를 먹는 그 사람”(요 6:57) 등의 말씀은 우리 안에 분배되시는 그리스도를 전제로 한 표현들입니다.
표현: 위와 같이 그리스도 자신이 사람 안에 분배되신 결과는, 1) 개인적으로는 생명이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고(엡 4:13), 2) 단체적으로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인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엡 1:23), 3) 이 몸인 교회가 온전히 건축된 결과인 새 예루살렘이 됩니다(계 21:9-10). 이것이 성경의 중심이며,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는 것들입니다.
솔직히 이러한 놀라운 경륜의 이상을 본 후에도 여전히 약함과 실패가 있지만, 이 이상이 저의 남은 믿음 생활을 이끌어 목표에 이르게 할 생명선임을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멘.
오 주 예수님, 당신의 놀라운 경륜을 깨닫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님 자신을 더욱 분배하사 당신의 온전한 표현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