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교회부터 종말론은 늘 성도들의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그런데 신학자마다 그 관점과 해석이 달라서 일반 성도들은 중심을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 또한 666이나 대환란이나 휴거 같은 주제에 비하면, 믿는 이들에 대한 심판 등 주님의 재림 때 우리에게 닥칠 엄중한 일들은 관심이 없거나 잘못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성경 이곳저곳에 기록된 종말론은 전체 그림(숲)을 본 후에 특정 주제(나무)를 다뤄야, 경중을 구분할 수 있고 미로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한 예로, 예수님 믿고 죽거나 휴거된 후에 저 하늘 어디(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게 하는 가르침은, 주님이 현재 삼층천에 계시고 장차 이 땅으로 재림하실 것을 기록한 성경 말씀들과 충돌합니다(행 1:11, 슥 14:4). 만일 주님과 영원히 살려고 저 하늘로 갔는데, 정작 주님은 이 땅으로 오신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이러한 심각한 불일치는 주님의 지상 재림에 대한 진리 인식이 부족한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다른 진리들과 서로 맞물려 있어서 조금 복잡합니다. 그중에서 다음 두 가지는 반드시 기억해 둘 만합니다. 먼저, 공중으로 휴거된 성도들에 대한 심판입니다(고후 5:10). 이 심판의 결과, 일부는 어린양의 결혼식에 신부로 참여하는 보상을 받을 것이고, 그 외는 경륜적인 징계 아래 잠시 놓이게 될 것입니다(마 25:10, 30). 둘째, 주님께서 이기는 성도들과 함께 지상으로 재림하실 때, 이 땅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어 그분께서 직접 통치하실 것입니다(계 11:15). 이때 각종 악의 배후였던 사탄도 천 년 동안 무저갱에 갇히게 됩니다(계 20:1-3). 그 결과 이 땅은 타락 전의 에덴동산처럼 회복되어, 오랜 골칫거리였던 환경오염, 기후 변화 등의 생태계 파괴가 치유되고, 각종 범죄와 질병과 빈부격차 등의 사회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사 11:6-9, 65:18-25). 천 년 후에 새 하늘과 새 땅, 완성된 어린양의 아내인 새 예루살렘이 등장합니다(계 21:1-2).
아침에 누린 아래 말씀은 위 큰 그림 중 ‘경륜적인 징계’에 해당하며, 믿는 우리에게 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그러나 그 악한 노예가 마음속으로 ‘나의 주인이 더디 오실 것이다.’라고 하며,
동료 노예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신다면,
예기치 않은 날, … 그 노예의 주인이 와서, 그를 엄하게 처벌하고 … 벌을 내릴 것이니(마 24:48-51).
마태복음 24-25장은 주님의 재림 때의 징조와 이 시대 끝에 믿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합니다. 참고로 여기서 믿는 이들은 처녀와 노예라는 두 신분으로 다뤄지는데, 처녀는 생명 방면을, 노예는 주님께서 값을 치르시고 사신 노예로서 봉사(일)하는 방면을 가리킵니다. 위 본문은 주님이 더디 오실 것으로 믿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주인의 위임을 실행하는데 불성실했던 노예에 대한 주님의 징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예전에 ‘동료 노예를 때린다’는 이 말씀을 읽었을 때는 진짜 때리지는 않더라도 말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경우를 포함할 것 같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추구하면서, “우리가 동료 믿는 이를 비판하거나 반대하거나 멸시함으로써 그를 학대할 때, 그것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그를 때리는 것이다. 우리는 쉽사리 어떤 인식도 없이 이러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CWWL, 1979, 2권, 151쪽)라는 설명을 대할 때, 제 안에 새로운 느낌이 생겼습니다. 즉 비록 건설적인 의도였더라도, 함께 교회 생활하는 지체들의 단점이나 허물을 입으로 말하거나 속으로 판단하는 것조차도 앞으로는 그쳐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2)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신다’는 것은 진짜 알코올에 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적인 것들로 취해 있는 세상 사람들과 사귀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료 노예를 때리는 상태에서 더 악화된 모습입니다. 그리고 꼭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예를 들어 인터넷 등에서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 또한 그들이 보는 것을 양심에 거리낌 없이 따라 하는 것도 술꾼들과 어울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주님이 오실 때 위 두 부류에 속한 믿는 이들은 “위선자들이 받을 벌”을 받을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것은 매우 후회스럽고 자책할 일이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두 경우를 불신자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결코 주님을 자기 주인으로 생각하거나 그분의 재림을 의식하고 살지 않습니다.
3) 주님의 재림을 맞는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마태복음 24장 45절에서 언급한 “신실하고 현명한 노예”로서 주인이 맡긴 집안 식구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나눠주는 일”을 신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위 본문을 묵상하면서 제 안에 깊이 만져진 것은, 주님은 교회를 매우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교회는 특정 교단이 아니라 그분의 몸이요 신부요 새사람인 교회를 말합니다. 이 교회는 그분의 각종 지혜를 전람하실 수단이자, 하나님을 표현하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려는 그분의 인간 창조 목적을 이루는 주인공입니다(엡 3:10, 창 1:26). 그렇기에 주님은 이 교회를 돌보고 양육하는 사람은 귀히 여겨 보상하시지만, 교회를 괴롭히고, 세상과 하나 되어 교회 간증을 흐린 사람은 반드시 그 책임을 물으실 수밖에 없으십니다.
오 주님, 당신이 다시 오실 때 신실하고 현명한 노예로 발견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