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손재주가 없습니다. 무슨 도구를 제가 쓰면 곧잘 부러뜨리거나 고장을 냅니다. 집에서 벽에 못을 박다가도 망치로 손을 찧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 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어릴 때 냇가의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자르고, 껍질을 살짝 비틀어 빼내어 버들피리 만든 것, 중학교 때 기술 과목 숙제로 패널을 제작한 것 등입니다. 톱으로 각목과 베니아 판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표면과 모서리를 사포로 문질러 다듬은 후에, 그 위에 니스 칠을 해서 숙제를 완성했을 때 느꼈던 성취감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무슨 제품을 샀을 때, 도면을 보고 조립하는 일은 제 아내의 몫입니다. 아마도 이 분야는 주님 오실 때까지도 저의 약함으로 남을 듯싶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일은 어느 정도 감각이 있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곧게 잘라내는 일꾼이 되고 싶어서 나름 훈련한 결과입니다(딤후 2:15). 즉 유명한 성경 교사들의 말일지라도 성경 본문을 직접 확인하고, 전후 문맥이 과연 그런 의미인지를 늘 살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결론을 잠시 미뤄두고, 주님이 보여 주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지나치게 체계화하려고 다른 방면의 말씀을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침에 누린 아래 말씀, 그리고 관련된 아래 내용들은 이런 과정의 산물입니다.
또 내가 보니, 어린양께서 시온산에 서 계시고 그분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
그들은 … 첫 열매로 드려지도록 사람들 가운데서 사 온 이들입니다(계 14:1, 4).
위 본문이 말하는 십사만 사천 명이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계시록 14장과 7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은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7장의 셀 수 없을 정도로 큰 무리 역시 또 다른 부류입니다. 따라서 이 셋은 문맥에 맞게 바르게 해석될 필요가 있습니다.
십사만 사천과 첫 열매: 사실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 명이 누구인지는 성경 본문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이들은 ‘어린양의 이름과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이마에 기록’되어 있고, ‘어린양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는 사람들’이며, 하나님과 어린양께 ‘첫 열매로 드려진 사람들’입니다(1-5절). 이들은 (영적 생명이) 먼저 익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죽음을 맛보지 않고 대환란 전에 휴거 된 신약 성도들입니다. 한 침대에 누워 있던 두 사람, 맷돌질하는 두 여자, 밭에 있는 두 남자 중에서 “데려가진” 각각의 한 사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눅 17:34-36, 21:36).
이 ‘첫 열매’는 하나님의 이름과 어린양의 이름이 그 이마에 기록된 점에서 ‘이기는 이’의 특징을 가졌지만(계 3:12), 살아생전에 휴거 된다는 점에서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처럼 생명이 성숙했지만 죽었다가 부활한 이기는 이들인 ‘사내아이’(a man-child, 730)와는 구별됩니다(계 12:5). 또한 이 첫 열매는 대다수 믿는 이들을 가리키는 나중에 수확되는 ‘땅의 곡식’과도 다릅니다(계 14:15-16).
하나님의 신약 경륜 안에서 한번 생명의 씨가 떨어진 사람은 결코 멸망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이 생명이 자라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게 되지만, 결국에는 모두 익어서 다 함께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십사만 사천은 ‘가장 충만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궁극적인 완성’을 가리키는데, 바로 새 예루살렘이 이와 같습니다(계 21:16-17).
십사만 사천과 이스라엘 지파: 계시록 7장 역시 (보호를 받도록) 도장이 찍힌 사람들의 수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말씀합니다(계 7:4). 그러나 이들이 위에서 말한 십사만 사천과 다른 이들이라는 점은 본문이 유다 지파,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등 그들의 지파 명을 일일이 기록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5-8절). 그런데 위 첫 열매는 한 새사람을 구성하는 이들이고, 이 한 새사람 안에는 이스라엘 12지파는커녕 헬라인과 유대인의 구별 자체가 없는 영역입니다(골 3:11).
또한 큰 무리는 “각 민족”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위 십사만 사천과는 다른 이들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들은 모든 세대에 걸쳐 각 민족에서 구속받은 사람들이고, 해당 본문은 이들이 휴거부터 영원 안에서 누림을 갖기까지의 광경을 일반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7-19절).
조금 복잡한 이 주제를 묵상하고 추구하면서, 제 마음 안에 다음 두 가지가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비록 메시아를 거절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푸사 마지막 날에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롬 11:2, 26, 31, 슥 12:10).
둘째, 성경을 정확히 아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첫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적인 생명이 성숙하여 첫 열매로 들림 받기를 더욱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아멘.
오 주님, 우리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속히 익게 하시고,
장차 첫 열매로 시온산에 당신과 함께 서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