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18회 - 두 종류의 십사만 사천
에세이
청지기 , 2021-02-20 , 조회수 (708) , 추천 (0) , 스크랩 (0)


저는 손재주가 없습니다. 무슨 도구를 제가 쓰면 곧잘 부러뜨리거나 고장을 냅니다. 집에서 벽에 못을 박다가도 망치로 손을 찧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 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어릴 때 냇가의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를 자르고, 껍질을 살짝 비틀어 빼내어 버들피리 만든 것, 중학교 때 기술 과목 숙제로 패널을 제작한 것 등입니다. 톱으로 각목과 베니아 판을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표면과 모서리를 사포로 문질러 다듬은 후에, 그 위에 니스 칠을 해서 숙제를 완성했을 때 느꼈던 성취감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무슨 제품을 샀을 때, 도면을 보고 조립하는 일은 제 아내의 몫입니다. 아마도 이 분야는 주님 오실 때까지도 저의 약함으로 남을 듯싶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은 어느 정도 감각이 있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곧게 잘라내는 일꾼이 되고 싶어서 나름 훈련한 결과입니다(딤후 2:15). 즉 유명한 성경 교사들의 말일지라도 성경 본문을 직접 확인하고, 전후 문맥이 과연 그런 의미인지를 늘 살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결론을 잠시 미뤄두고, 주님이 보여 주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지나치게 체계화하려고 다른 방면의 말씀을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침에 누린 아래 말씀, 그리고 관련된 아래 내용들은 이런 과정의 산물입니다.

 

 내가 보니어린양께서 시온산에  계시고 그분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

그들은 …  열매 드려지도록 사람들 가운데서   이들입니다( 14:1, 4).

 

위 본문이 말하는 십사만 사천 이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계시록 14장과 7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은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7장의  셀 수 없을 정도로 큰 무리 역시 또 다른 부류입니다. 따라서 이 셋은 문맥에 맞게 바르게 해석될 필요가 있습니다.

 

십사만 사천과  열매: 사실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 명이 누구인지는 성경 본문이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이들은 ‘어린양의 이름과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이마에 기록’되어 있고, ‘어린양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가는 사람들’이며, 하나님과 어린양께 ‘첫 열매로 드려진 사람들’입니다(1-5절). 이들은 (영적 생명이) 먼저 익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죽음을 맛보지 않고 대환란 전에 휴거  신약 성도들입니다. 한 침대에 누워 있던 두 사람, 맷돌질하는 두 여자, 밭에 있는 두 남자 중에서 “데려가진” 각각의 한 사람이 여기에 해당합니다(눅 17:34-36, 21:36).

 

이 ‘ 열매는 하나님의 이름과 어린양의 이름이 그 이마에 기록된 점에서 ‘이기는 의 특징을 가졌지만(계 3:12), 살아생전에 휴거 된다는 점에서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처럼 생명이 성숙했지만 죽었다가 부활한 이기는 이들인 ‘사내아이(a man-child, 730)와는 구별됩니다(계 12:5). 또한 이 첫 열매는 대다수 믿는 이들을 가리키는 나중에 수확되는 ‘땅의 곡식과도 다릅니다(계 14:15-16).

 

하나님의 신약 경륜 안에서 한번 생명의 씨가 떨어진 사람은 결코 멸망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이 생명이 자라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게 되지만, 결국에는 모두 익어서 다 함께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십사만 사천은 ‘가장 충만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궁극적인 완성’을 가리키는데, 바로 새 예루살렘이 이와 같습니다(계 21:16-17).

 

십사만 사천과 이스라엘 지파: 계시록 7장 역시 (보호를 받도록) 도장이 찍힌 사람들의 수가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십사만 사천 이라고 말씀합니다(계 7:4). 그러나 이들이 위에서 말한 십사만 사천과 다른 이들이라는 점은 본문이 유다 지파,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등 그들의 지파 명을 일일이 기록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5-8절). 그런데 위 첫 열매는 한 새사람을 구성하는 이들이고, 이 한 새사람 안에는 이스라엘 12지파는커녕 헬라인과 유대인의 구별 자체가 없는 영역입니다(골 3:11). 

 

또한  무리는 “ 민족”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위 십사만 사천과는  다른 이들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들은 모든 세대에 걸쳐 각 민족에서 구속받은 사람들이고, 해당 본문은 이들이 휴거부터 영원 안에서 누림을 갖기까지의 광경을 일반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7-19절).

 

조금 복잡한 이 주제를 묵상하고 추구하면서, 제 마음 안에 다음 두 가지가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비록 메시아를 거절할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긍휼을 베푸사 마지막 날에 은혜와 간구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롬 11:2, 26, 31, 슥 12:10).

 

둘째, 성경을 정확히 아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첫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적인 생명이 성숙하여 첫 열매로 들림 받기를 더욱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아멘.

 

 

 

 

 주님,  우리로  땅에 사는 동안 속히 익게 하시고,

장차  열매로 시온산에 당신과 함께 서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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