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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13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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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우리는 성경이 완간 된지 이 천년이 지난 후에 와 있다.
성도가 져야할 자기 십자가의 바른 이해 자는
지나온 이 천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앞으로 뛰어 넘어
초대교회 당시의 성경이해로 바싹 다가간 것이다.
다시 말해 현대의 자기 십자가에 대한 이해를 인위적인 논리로 희석 다 못해
이제는 자기 십자가에 대한 참 의미를 말살하고도 부족한 나머지
도리어 이를 감지도 못하고 있는 이 어두운 현실 발견인 것이다.
이는 초대교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천년이란 세월을 두고 인간이 만들어 낸
마귀의 최대 걸작품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처한 지금의 우리는 이렇게 두터운 벽을 한순간에 허물고
기록된 성경의 액면 그대로를 받는 것이 그리 손쉬운 일이 이미 아니게 된 것은,
지난 오랜 세월에 걸쳐 말씀에 인간의 이성적 논리가 점진적으로 가미되어지면서
이제는 그것이 화석과 같이 굳어 버린 현대신학과 교리 등이
도무지 이를 허락지 않는 철옹성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철옹성에 대한 도전적인 약간의 기미만 엿보여도 기성교단과 현대교리와 신학으로부터
여지없는 이단 낙인에 있게 된다.
따라서 이 철옹성의 건재함에 대한 과시적 목적 가운데 하나인
구원론에 있어서 구원은 전적 은혜로 받는
믿음에 따른 선물에 의한 것이다 라는 원칙의 절대적인 것에 있다.
그래서 믿음을 받은 자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인
자기 십자가를 짊에 대하여 까지 행위 구원이라고 치부하는 졸속하고
편벽적인 구원론에 있는 것인데 도리어 이러한 구원론이야말로
진작 참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데에 크게 일조 하는
마귀의 계략적인 구원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