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8회 -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다
에세이
청지기 , 2020-12-13 , 조회수 (1675) , 추천 (0) , 스크랩 (0)


중국 본토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한 믿는 자매가 아침에 일어나면 벽에 걸린 예수님 초상화를 쳐다보며 기도를 해 오다가 어느 날 영적으로 혼미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해당 모임의 인도자가 그 집을 방문하여 전후 사정을 들은 후에, 초상화를 떼어내어 그 자매가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는 즉시 귀신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온전한 정신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위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을 때는 사탄은 미처 생각 못한 것으로도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빗나가게 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아래 말씀을 묵상할 때는 역사적인 인물인 예수님도 바로 아는 것이 쉽지 않은데,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사람이 아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듭시다”(창 1:26 상).

 

창세기에는 각종 피조물들이 제 종류대로 만들어졌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사람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원형에 해당하는 삼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무엇이고, 또 왜 하필 그렇게 만드셨는지를 아래와 같이 묵상하고 추구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 솔직히 창세기의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사람은 하나님과 비슷하게 창조되었다는 말이겠지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위 본문을 묵상할 때는 제대로 알고자 했지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둘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가 확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형상과 모양을 각기 다른 둘로 보았고, 또 다른 이들을 둘이 동의어라고 하면서도, ‘형상’(첼램)은 ‘자르다’ 혹은 ‘베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되어 (원형대로) ‘조각되고 있는 광경’을 가리키고, ‘모양’(데무쓰)은 ‘(그 원형과 조각된 것)그 둘은 비슷하다’라는 뜻이라며 역시 둘을 구분합니다. 이어서 이 두 단어 안에 담긴 사상은 “사람은 어떤 점에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라고 설명합니다(안토니 A. 후크마, 개혁주의 인간론, 28쪽). 또한 “수천 년 동안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이 용어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토론해 왔고”(위키백과),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대해서는 각 교파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만 이 단어들이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되니,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단어들에 대한 신약성경 회복역 해당 각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내적 존재를 가리키며, 하나님의 속성의 내적 본질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서 가장 두드러진 속성은 사랑(요일 4:8), 빛(요일 1:5), 거룩함(계 4:8), 의(렘 23:6)이다. 하나님의 모양은 하나님의 모습(빌 2:6)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위격의 본질과 본성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서로 분리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람의 내적인 미덕은 사람의 영 안에 창조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의 복사판이며 … 사람의 외적인 모습은 사람의 몸으로 창조되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모습의 복사판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복사판으로 창조하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담고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갖게 하시기 위해서였다(창 1:26, 각주 2).”

 

참고로 사람의 신체가 하나님의 형상에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뉩니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인 개혁신학자 중 한 분은 “성경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언급할 때 사람 전체를 말하고그의 영적인 국면에 제한하여 말하지 않기 때문에 그 형상에 신체도 포함된 것으로 보게 된다”라고 말합니다(박형룡, 인죄론, 98-99쪽). 관련하여 이미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례가 있는 점도 비밀스럽습니다(창 18:2, 13).

 

사람을 창조하신 후 생명나무 앞에 두심: 사실 이번 묵상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의 의미를 선명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분처럼 만드신 의도는 분명해졌습니다. 특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에덴동산 생명나무 앞에 두신 것과 그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진 우리가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들”이라는 말씀이 도움이 되었습니다(창 2:8-9, 롬 9:23). 비유의 한계를 감수하고 제가 이해하고 누린 것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은 마치 ‘손’과 ‘손처럼 생긴 장갑’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별개인 일반 사람과 달리, 하나님 사람이신 주 예수님은 ‘손이 끼워진 장갑’과 같으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그분처럼 ‘손이 끼워진 장갑들’이 되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예정하시고, 창조하신 것입니다(롬 8:29). 주님은 이러한 계획을 이루시려고 인생과 죽음과 부활을 거쳐 생명 주는 영으로 우리의 영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 후 지금은 우리의 마음에까지 거처를 확대하시는 방식으로 우리의 속 존재를 변화시키시고 계십니다. 또한 장차 우리의 몸까지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형될 때 우리는 그분과 같게 될 것입니다(고후 3:18, 빌 3:21, 요일 3:2).

 

이 주제를 묵상하면서, 위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인 온유 겸허를 표현하셨던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삶을  다시 감상하게 되었습니다(마 11:29). 누구든지 주님을 제대로 믿는다면, 그의 말이나 삶의 표현 역시 온유하고 겸손하게 나타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또한 “계모를 데리고 사는” 한 형제를 다루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형상인 공의와 사랑을 균형 있게 표현한 대목도 떠올랐습니다(고전 5:1-5, 고후 2:5-11, 7:11-12). 이처럼 사랑과 공의 그리고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안에서 서로를 짊어짐”으로 그 영의 하나를 힘써 지키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천국일 것입니다(엡 4:1-3). 하나님은 이런 광경 보기를 갈망하시면서 그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믿습니다.

 

 

 

오 주 예수님, 우리 안에서 당신의 형상을 속히 이루사,

우리로 당신의 복사판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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