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형제님처럼...
나눔방
크리스틴 , 2020-12-07 , 조회수 (693) , 추천 (1) , 스크랩 (1)

매번 내 준 숙제를 깔끔하게 하지 않는 여자애가 있다.

초롱초롱한 눈빛이 공부보다는 게임 쪽으로 쏠리고

말끝마다 십대의 반항기가 다분히 묻어난다.

달래보고 동기부여가 될 만한 이야기를 건네 보며

아무리 애를 써도 나아짐이 없어 하루는 쓴 소리를 했다.

“이런 식으로 하려면 너 나한테 공부하려 오지마라!

서로 시간낭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다.“

여자애의 대꾸는 간단했다.

“제가 제일로 하기 싫고 못하는 게 외우기예요.”

“너 화장실 가는 거 좋아하니?”

“아니요. 싫어요.”

“그래, 그렇다고 화장실 안 가고 살 수 있니?

간이 굳어져 대소변을 배출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지 아니?

살면서 하기 싫은 것은 다 안하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노!

다른 언어를 배우는데 반복하고 외우지 않고 어떻게 할 수 있는데?

앞으로 진짜 자유롭고 재미있게 제대로 놀아보고 싶다면 영어는 필수다....“



아이에겐 이런 훈수를 일사천리로 늘어놓으며 나무랐지만,

교회생활에서 내 자신을 들여다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특히 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 아래 처리를 받아야 한다는 대목에 가면 그러하다.



옳고 그름에 대하여 유독 시력이 좋은 내 자신.

그리하여 내 판단 하에 틀렸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하여

절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이 기질.

그리고 내 기호 따라 사람과 상황을 판단하고 처신하는 것들.

이런 것들은 내가 소지한 굵은 가시들이다.


‘옳고 그름의 지식나무를 취하지 말고 생명나무를 붙잡아라.‘

‘주님이 보시는 눈으로 교회를 보아라.’

너무나 분명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대하면서도

오랜 세월 나의 어떠함을 붙들고 있었던 것은

마음 한 구석에서 그리 딱히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것들이 타인을 찌르는 것은 물론이고

내 자신까지 아프게 쑤시는 가시임을 본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그 가시들을 처리 받지 못하고 있어 괴롭다.

내 자아를 부인하는 것, 십자가 아래 머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빌립보서 3장에서 바울 형제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고 싶지만,

바울 형제님처럼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러면서 속으로 하는 말은 ‘성경에 나오는 바울 형제님이니까 그렇게 말씀하고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지. 나는 평범한 한 인간인데 우찌 그리 사노?....’



그런데 같이 교회생활 했던 어느 형제님이 생각난다.

봉사를 하는 데 뜻이 맞지 않은 일이 있었다.

상대방 형제님은 약간은 억지스럽고

개인적인 모멸감마저 섞인 말들로 그 형제님을 심하게 몰아붙였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그러나 매번 듣고 있는 형제님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이 없었다.

겨우 나오는 반응은 “형제님, 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여겨졌다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상대방 말이 다 끝났을 때 공손히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어제 남편과 함께 산길을 걸으며 그 형제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형제님은 참으로 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 아래에 머물 줄 아는 형제님이었음에 의견을 같이 했다.

교회생활 가운데 이러한 본을 볼 수 있음은 축복이다.


그리고 낙엽이 떨어진 앙상한 겨울나무들과 돌담을 감상하며

생각했다.

‘저 돌들이 깎이지 아니하고 우예 돌담으로 쌓여질 수 있겠노.

모든 낙엽을 다 날려 보내고 긴 겨울을 견디지 아니하고 우예

봄날 연두 빛 푸름을 품어 낼 수 있겠노.

나에게 사도 바울은 어림도 없지만 그래도

그 형제님처럼 따라 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그리고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며 기도한다.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오직 주님 당신의 아름다움을 구하는 자 되게 하시고,

당신의 죽음을 본 받아 부활 능력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맛보게 하소서. 아멘“


청지기
2020-12-12 21:48:14   추천
아멘~ 부활 능력으로 사는 것!! 맛보게 하십시오~
스마일은혜
2020-12-18 11:11:36   추천
아멘
교회 안의 본들로 인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