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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6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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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에게
참으로 님의 심성을 만질수 있어 기쁩니다.
사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형제님의 말씀처럼 옳고 그름을 따지
기 위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니 형제님의 고백처럼
"...없이....하게하소서"
위의 그 점(.....) 속에는 우리의 일생이 담겨져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저도 이 찬송을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거든요? 주님의 삶은 없이(nothing) 의 삶이지만...
댓가없이 사랑케하소서
보상없이 섬기게하소서
축복없이 기도케하소서
.....
우리의 인간생활의 모든 것은 바로 모든것(everylthing)을 위하는 삶이죠...즉
.....위해 .......합니다.
댓가위해 사랑하고
보상위해 섬기고
축복위해 기도하고
축복위해 헌금하고
.....
정말로 주님을 닮는 생활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래는 어제 저의 교회 형제님 한분이 적은 글을 올립니다. 저에게 많은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아쉬운것은 형제님의 사랑을 깊이 만질수 없어 약간 가슴이 아픕니다. 정말로 얼굴을 대하고 형제님의 마음의 깊은 부분을 만지고 싶습니다....
: 지금 저는 장래에 대한 문제에 걸림돌이 많기 때문에,
:
: 아직은 그러지 못하지만, 돈도 많이 벌고, 여유가 있을 때에...
:
: 지방 교회에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
: 그 날짜는 10년후가 될지, 20년이 될지, 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
: 그 집회의 달콤함을 누리고 싶습니다.
:
우리는 어디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에 형제님의 말씀처럼 지방교회가 (들어가거나) (나오거나) (돌아가거나) 한다면 그것도 일종의 종파가 아닐까요?
형제님이 계신 그 자리가 바로 (지방)교회가 있는 장소입니다. 형제님이 어디에 계시든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분을 몸삼아 그안에 살아 그리스도롤 표현하면 님이 계신 그곳이 바로 (지방)교회로 표현이 될 것입니다.
저도 그리스도를 그렇게 많이 누리지는 못하지만...그분을 어디에 있든 누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교통이 있기를 원합니다.
두서없는 글 용서를 바라며...메일을 주시면 한번 진솔한 교통을 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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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과 "Everything"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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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아무 것도 없는 것인 'nothing' 과
모든 것인 'everything' 은 반대되는 말입니다.
언뜻 보면 이 둘 사이에는
연결점이 도무지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빌4:6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와 간구'를 그 사이에 끼워 넣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In nothing be anxious, but in everything
by prayer and petition...
let your requests be made known to God).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다음구절과 함께 볼 때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염려에서 해방되고 모든 일에서
평강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기도와 간구의 생활을 갖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해야 한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말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자주 염려에 눌리고
마음의 평강을 잃고 안절부절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기도를 안 하는 것이 문제다.
왜 기도가 안 될까? 안 하니까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해야 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이야기'의 결론을
얻을 수 있나. 주님은 이 땅 사실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푸셨나...
저는 어느 날 이런 것들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대강 두 묶음으로 정리했습니다.
1. 어찌하든 기도를 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학력이라야 소학교가 전부지만 큰 회사를 잘 운영하던 한 분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일류대학 나온 유능한 참모진이...
'회장님. 이만 저만해서 그 프로잭트는 힘들 것 같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라고 하면 그분은 '해 봤어?'라고 반문했답니다.
그리고 도저히 안되 보이던 일을 보기 좋게 해낸 사례가 많다는 것입니다.
앞의 사람은 "안 되는" 논리와 이유제시에 강하지만
뒤의 사람은 "되게 하는" 실행에 강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인생을 살면서 얻은 지혜와 경륜의 차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기도(프로슈케, 4335)는 그 본질상 하나님께 대한
일반적인 경배(가까이 다가가서 입맞춤)나 교제(상호 참여)개념이라면,
간구(데에시스, 1162)는 특별한 필요에 대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용례에 구별이 있음에도 우리 주변에서는 '특별기도제목,
금요철야기도, 새벽기도' 등등에서 보듯이 통상 이 둘을 다 '기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기 서신에서 기도와 간구를 별도로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자신이 감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 성도들이 한 것을
기도가 아닌 '너희간구'(데에시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외에도 "간구"라는 말이 사용된 예는 눅1:13(스가랴), 2:37(안나), 5:33(요한의제자),
행1:14(120문도), 롬10:1 고후1:11(바울), 9:14, 엡6:18, 빌1:4(바울), 딤전2:1, 5:5(참과부),
딤후1:3(바울), 히5:7(예수님), 약5:16(의인), 벧전3:12(의인)가 있습니다.
이런 구절들은 한글번역이 어떻게 되었든지 원문은 동일한 '데에시스'(간구)입니다.
아무튼 염려에서 해방되고 평강가운데 사는 길은 "기도와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많은 때 우리에게 온갖 염려를 가져다주어 안절부절 하게 합니다.
해결하려고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게 합니다.
때로는 자기 생각 속에서 골똘히 궁리하게 합니다.
아니면 실의에 빠져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히게 합니다.
이런 것들의 공통된 특징은 기도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안에 머물고 "주님"을 접촉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간구는 마치 묵직한 몸을 힘을 다하여 돌아눕듯이 이런 자기속에서의 분투로부터
주님께 마음을 돌리고 그분을 접촉하는 과정입니다. 영적인 일입니다.
여기에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힘듭니다.
기도하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나 기도없는 믿음생활은 능력이 없습니다.
실 생활에서의 말씀의 성취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해야 합니다.
기도 중 딴 생각에 빠졌던 분. 기도하다가 졸려서 자러 가셨던 분.
기도하다가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나 중단했던 분.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 실망하고 그쳤던 분.
기도하다가 그만두기를 여러 번 해서 이젠 새롭게 기도하겠다고 다짐하기도 미안하신 분.
기도보다는 성경읽기와 메시지 보는데 치중하셨던 분.
아침에 기도하고 싶지만 출근시간이 일러 시간이 없다는 분.
기도하고 싶지만 밤늦게 퇴근하여 피곤해서 못하겠다는 분
성경읽기와 집회참석은 했지만 기도실행은 부족했다고 새삼 느껴지시는 분들...은
이참에 다시 기도를 시작하시면 어떨까요.
베드로(행10:9)나 바울처럼(행16:13)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하든지 적당한 기도처도 물색해 보면 어떨까요
아래 말씀을 받아들여 다시 새로운 출발을 가지면 어떨까요...?
롬12:12 '기도에 항상 힘쓰며'
엡6:18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고'
성경은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힘쓰냐구요? 우선은 '주여 나로 기도하게 하소서!' 라고
"기도생활이 될 때까지" 부르짖는데 힘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한 걸음을 그런 식으로 더 내딛는 것입니다.
때로는 온 힘을 다해 외친 외마디 비명이 죽을 사람을 살릴 때가 있습니다.
우선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루 단 5분씩이라도....
2. 기도의 내용에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기도를 "열심히" 그리고 "많이" 하십니다.
새벽기도, 금요 철야기도, 산 기도, 일주일 금식, 사십일 금식....
그런데 그 기도 내용을 들어보면 'I, My, Me, Mine...'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누가 그러는데 월드컵 기간동안에는
'호나우드가 당황하게(헛발질하게?) 해 달라'는 기도도 있었답니다.
물론 이런 기도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사실 어떤 기도이든 안 하는 것보다는 백번 천번 낫습니다.
처음엔 기도내용 가지고 왈가왈부하면 더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여기서 더 전진해야 합니다.
기도생활에 진보가 있는 어떤 분은 자신을 위한 기도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최고의 기도는 아닙니다.
참된 기도는 하나님 사람이신 주님자신이 하셨던 기도처럼 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기도는 부담이 하게 합니다.
어떤 것을 관심하는지가 기도내용을 좌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다른 사람, 하나님자신으로 점점 전진해야 합니다.
저는 주님과 바울의 기도 내용을 보고 어쩌면 그렇게 우리가 했거나
주변에서 듣는 기도내용과 다른가하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주님이 기도하신 흔적은
마14:23, 막1:35, 막14:36, 눅5:16, 6:12, 9:28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하신 기도내용의 비밀이 충분히 계시된 것은 요17 장입니다.
요17장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에 하신 것으로
마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 긴 기도안에 여러 요점들이 있지만
'아버지여...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11, 21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17절)가 인상적입니다.
삼위일체의 세 인격들 사이처럼 우리가 하나됨,그리고 거룩케 됨...
이런 것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엡1:16-19, 3:14-19에서 볼 수 있는 바울의 기도내용도 매우 깊습니다.
하나님 알게 해달라. 부르심의 소망 알게 해달라.
우리가 얻은 기업의 풍성을 알게 해달라....과연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도 이런 기도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한 때는 아침에 6시쯤 일어나도 졸음이 눈꺼풀에 붙어 무거웠습니다.
그 때는 더 일찍 일어났다가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4 시 반쯤 눈이 떠지는 날들이 벌써 여러 달째입니다.
어느 날 주님 앞에서 기도하는 일들을 위해
내 목숨을 내놓겠다고 선포한 이후...
제게 생긴 약간의 생활패턴의 변화입니다.
솔직히 때로는 피곤한 날도 있고 어떤 때는 잠이 쏟아 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너무 개운하고 상쾌합니다.
그날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려고 해 봤어?' 라고 물으시면
저도 할말이 있어야 하겠기에....
주여 우리로 이 마지막 때에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에 더욱 "힘쓰게" 하소서!
더 이상 미루지 않게 하소서!
더 이상 핑계대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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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이기는 자들 * 갓맨 형제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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