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찌되겠습니까?
성경진리토론방
, 2003-09-15 , 조회수 (373) , 추천 (0) , 스크랩 (0)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답변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좋은 교제의 시간되기를 바랍니다.
한때는 저도 앤드류머리의 사상을 가장 좋아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물론 워치만 니의 글도 좋아했고요. 지금은 썬다싱에 이어 스베덴보리의 사상에 머물러 있지만..

아래는 한나님의 글에 대한 제 답신입니다.

한나님께서는 구원의 두 방면에 대한 조화를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는 객관적이고 율법적인 면이고, 또 하나는 주관적이며 유기적인 면이라 하셨더군요. 한쪽으로 치우침을 피하기 위하여 그 반대편으로 가보지만 그것마저 또 하나의 극단적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양자간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부분을 읽고 서로간 대화의 주제를 좀더 확실히 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은 질문을 드려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찌 되겠습니까?

즉 피의 속죄로 구원을 이미 얻었다는 사람이 계명을 잘 지키지 않는 상태에서 아래의 성경 말씀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면 과연 그 영혼은 어찌 되겠는지요? 이 문제가 우리 논의의 제일 중요한 관건이며 동시에 현재 많은 기독인들의 의구사항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분들이 지금 이와 같은 상태에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해봅니다.

주님 피의 대속과 계명의 준수는 두 가지 모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구원의 필수 조건입니까? 아니면 어느 하나만? 물론 누구나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전제 하에 드리는 질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피' 아니면 '계명 준수' 이 두 가지 중 궁극에 어느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유일한 조건에 있어서 피는 계명 준수를 그리고 계명 준수는 피를 부정하는 것이 논리에 맞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이들은 결코 조화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럼에도 만일 어느 누가 이 논리를 깨고 그 두 가지를 모두 구원의 조건에 넣으신다면 그것들을 논리에 맞게 조화시켜 놓아야 할 것입니다.

혹 오직 피에 의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아래 성경 말씀은 어찌 적용해야 할까요? 이 말씀들로 심판을 받는다면 피로 구원받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나중에 어찌되겠습니까?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마 3:10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 7:24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 7:19-21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7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신 6:5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눅 6:46-47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눅 8:21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9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저에게 와서 거처를 함께 하리라 요 14:15-23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4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13:8-10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17-26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요일 3:24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묵 2:7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리라 묵 20:12"

한나님께서 남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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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기욱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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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경우 믿는이의 실패는 성경을 한면으로 치우치게 읽는 것입니다. 스웨덴 보리의 신비적 사상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구원에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치다보니 또 한면의 주님의 구속의 놀라운 가치를 잃어버리셨습니다. 죄사함을 내적인 죄의 성분에 대한 변화를 강조하다보니, 주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이기는 죄들의 사함을 크게 폄하 하셨더군요. 심지어 "마음에 악이 이전처럼 가득 차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고 좋아하는 것은 오히려 저주에 속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언듯보면 옳은 것 같지만 사탄은 뒤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무효화시키는 또다른 종파의 탄생을 즐거워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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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구원파라 하는 곳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주홍빛 같은 내 죄가 사함 받은 것을 깨달은 후 무겁고 얽매인 죄책감의 과거를 떠나 속죄의 기쁨을 누리지만, 그의 죄의 성분적인 변화를 소홀히 하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에서 빗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비적 사상을 가진 스웨덴 보리의 가르침은 또 한면을 잃어버리므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의 사실적 역사"의 감상과 누림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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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구원안에서 성경안에 균형잡힌 가르침은 두방면이 있음을 보아야하며 어느것을 우위에 두는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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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방면은 객관적이고 율법적인 면이고, 다른 방면은 주관적이며 유기적인 면(생명안에서와 생명에 의해서)이지요. 율법적인 면이라 함은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며, 성경은 하나님의 공의의 율법을 범죄한 모든자는 하나님의 심판아래 죽을 것을 말합니다(롬3;23, 19, 히9:27, 겔18:20). 십자가에서의 주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율법적인 면은 완성되었고 율법의 공의의 요구를 이루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사망의 심판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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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또 한방면은 죄인이 구속을 받았을지라도 여전히 내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감추인 죄, 악한 마음과 정욕이 있는 육체 그리고 수많은 옛사람의 성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롬7:18절에서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라고 말하며 이후 로마서 7장 마지막까지 그의 탄식은 우리안에 내주하는 죄(롬7;17)에 대하여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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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구원은 외적인 심판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길 수 없는 내적인 타락한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우리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생명주는 영으로(고전15:45하) 들어오셔 우리의 생명이 되신 것을 말합니다(골3:4, 빌1:21, 갈2:20, 요일5:11-12).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써 변화되고 성장하게 하며 성숙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은 많은 아들들을 얻기 위함이지요(갈4:19, 히2:10). 이를 인하여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지금도 우리안에서 말씀의 물로, 성령의 역사로, 또는 성령의 징계로 우리안에 옛창조를 씻어내고 새창조인 그리스도를 공급하고 분배하여 재조성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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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하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균형잡힘은 '율법적인 면과 유기적인 면' 둘 다를 체험적으로 알고 가르치고 누려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주예수님을 영접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는 것과,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가진 그분의 자녀가 되어 우리의 지체 가운데 내주하는 죄를 벗을 수 있음 둘 다를 강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하나님의 구원의 참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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