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원세호님의 <교회의 사명> 비판에 대한 재반박
반복해서 느끼지만 원세호 님의 (지방) 교회 교회론 비판은 상당부분이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단지 '원세호식 교회관'에 기초한 비판일 뿐이다. 그러므로 객관성이 없다. 또한 비판 상대방의 본문 인용이 정확하지 못하다. 따라서 그 비판 또한 엉뚱한 부분이 많다. 만일 이것이 고의적인 것이었다면 신학자로서의 양심을 더럽힌 것이다. 만일 실수였다면 신학자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할 무책임한 처사이다. 이처럼 원세호 님의 변증책자는 학문적 가치도 없고, 정확성도 떨어지며, 논리전개도 중복되어 어느 모로 보나 신뢰할 수 없다. 다음 글들에서도 위 부정적인 특징들은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무책임한 글들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함부로 정죄 할 수 있는지 그 동기와 의도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1) 원세호님은 비판 상대방의 본문을 왜곡 인용하는 부정직한 행위를 중단하기 바란다.
독자들은 아래 두 사람(원세호, 웟치만 니)의 글을 비교해 보라.
<원세호님 주장: ① "교회의 사명이 이중적으로 마귀의 능력을 제압하고 마귀의 권세를 뒤집어 엎는 것이며 사탄에게 손해를 주는 것이다"라고 웟치만 니는 주장하지만 마귀를 뒤집어 엎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 아니다. ...이것은 성도 개인이 믿음을 통해 대적하면 되는 것이지 교회가 마귀 권세 뒤엎거나 손해 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파가 기독교에 덤비는 것이 기독교를 마귀집단으로 보이므로 뒤엎으려는 행위가 아닌가? 그렇게 사료된다.>
<웟치만 니의 원래 주장: 우리는 모두 마귀의 권세를 뒤집어엎는 데에 있다. 우리는 다같이 사람의 타락과 죄를 보면서 하나님의 권위와 사랑을 선포하자. 그러나 동시에 영적 권위를 구사하여 마귀의 능력을 제압하도록 하자, 교회의 사명은 이중적인데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증거하며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증거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람으로 유익을 얻도록 또 한편으로는 사탄에게 손해를 주어야 한다">(15. p. 28, 12-18줄 웟치만 니 주장)
웟치만니는 교회의 사명에 대해 <교회의 사명은 이중적인데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증거하며 또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증거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음에도 이것을 원세호 님은 <"교회의 사명이 이중적으로 마귀의 능력을 제압하고 마귀의 권세를 뒤집어 엎는 것이며 사탄에게 손해를 주는 것이다"라고 웟치만 니는 주장하지만>이라고 인용 한 후 <마귀를 뒤집어 엎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 아니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원세호 님은 자신의 신학자로서의 양심까지 버리고 이런 교묘한 속임수를 사용하면서까지 웟치만 니와 (지방)교회를 공격할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교회의 사명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복음으로 전하여 죄인을 구원하고 다른 한 편으로 그리스도의 승리를 증거하여 대적을 이기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웟치만 니의 주장이 어디가 잘못이란 말인가? 그리고 왜 이것을 <복음과 구원부분>은 쏙 빼고 <마귀 쪽으로만 왜곡시켜 강조하여> 인용하고 비판했는가? 이것은 (지방)교회가 기독교를 마귀집단으로 보고 덤벼든다는 자신의 억지 주장을 합리화하여 (지방)교회에 대한 기독교계의 분노를 유도하려는 고도의 계산에 따른 것이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원세호님은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실제로 원세호님은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
http://www.biblicaltruth.or.kr)의 '예장 통합측이 윤 모 목사에 대해 결정한 내용에 대해 항의하는 글' 에서 <지방교회에게 망신당하는 통합측 총회장님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 『지방교회의 주장과 성경적 변증서』를 집필하였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런 식으로 특정인을 위해 사전에 기획된 의도대로 억지로 꿰어 맞추는 식의 변증은 객관적인 신뢰성도 학문적인 가치도 없다. 다만 원세호님 본인의 인격과 평판만 더럽힐 뿐이다. 이런 일은 나무와 풀과 짚일 뿐이다(고전3:12).
2) 원세호님은 자신의 잘못된 성경이해를 기준으로 남을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원세호님은 자신만 성경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이 함부로 그리고 너무도 경솔하게 '성경에 근거가 없다'는 말을 남발하고 있다.
(1) 아래의 '교회가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도록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이라는 웟치만 니의 말은 성경에 근거한 말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성경 근거로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질그릇에 가졌다는 고후4:7, 우리가 영광 받기로 예비 된 질그릇이라는 롬10:23,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고 만물을 다스리도록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창1:26 등등 여러 군데의 성경을 직 간접적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성경 근거가 없다고 함부로 속단 할 수 있는가? 원세호님은 본인의 좁은 시야에 보인 것만 전부라고 보는 교만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2) 그리고 <교회가 죄와 상관이 없고 죄와 접촉하지도 않는다>는 웟치만 니의 말은 <교회를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오직 그 부분>이라고 정의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말이다. 요일3:9도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고 말함으로 영이신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의 영 부분(고전6:17)은 죄와 상관이 없으며 죄와 접촉하지도 않음을 말해 준다. 만일 원세호님이 고전6:17이 말하는 <주와 합하여 한 영 된 교회의 실제>도 죄를 짓는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주님도 죄를 짓는다는 말이 되어 이단적인 가르침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거듭난 성도들이라고 해도 생각을 육에 두면 영적 사망에 빠지기도 하고(롬8:6), 원세호 님 지적처럼 거듭난 후에도 자백해야 할 복수의 죄들을 범하는 것(마18:15)은 사실이다. 웟치만 니나 (지방)교회도 이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린도 전서 6:17이 말하는 <교회의 본질인 영이신 하나님과 연합된 우리의 영 부분>은 죄와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원세호 님이 오직 에클레시아 식 교회정의에만 몰두하고 이 둘의 차이점을 구별치 못함으로 혼돈이 있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교회는 새 사람이기도 한데, 만일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엡4:24)도 죄를 짓는다고 한다면, 그런 주장이야말로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주장이 될 것이다.
<원세호님 주장: ② 지방파는 교회가 그릇이라고 주장하나 성경 근거 없으며 .... 그리고 요한일서1:9-10절에 의하여 성도였던 사도 요한을 위시하여 복수의 죄들을 자백 용서될 인간들이 모임이 교회이다. 지방파의 교조인 웟치만 니가 교회가 죄와 접촉도 안 한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며 거짓이다.>
<웟치만니 원래 주장: ②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오직 그 부분이다. 우리는 교회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임을 알아야 한다. 교회는 죄와는 상관이 없으며 결코 죄와 접촉하지도 않는다">(15. p. 58, 1-9줄 웟치만 니 주장)
3) 원세호님의 소위 <구약교회> 인정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교회의 기원을 어디로 볼 것인가는 간단한 주제는 아니다. 또한 구약성경의 교회개념과 신약의 교회개념을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것은 언약신학 쪽의 특징일지는 몰라도 세대주의 신학은 이와 다르다. 즉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해 구별된 무리라는 에클레시아식 교회개념으로는 신 구약의 교회를 동일시 할 수 있을 여지가 없지는 않다. 원세호님이 인용한 행7:38의 광야교회는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이 사람 안에 생명으로 들어오심을 내포하는 신약 교회개념의 다양한 모습들인 '그리스도의 몸'(엡1:23), '하나님의 집(성전)'(딤전3:15, 고전3:15), '새 사람'(엡2:15), '그리스도의 신부'(계21: 2, 9-10)는 구약에는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러한 것들의 예표나 상징들이 구약에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실체가 구약에도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성경을 뒤죽 박죽으로 푸는 해석일 뿐이다.
그러므로 '신약교회'(편의상 이런 용어를 사용한다면) 개념을 설명하는 윗트니스 리의 교회 잉태 내지는 출생에 대한 설명을, 구약적인 교회개념을 기준으로 평가하여 교회 기원에 관한 (지방)교회의 주장이 비 성경적이고 심지어 거짓되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비 신사적이고 신학자답지 못한 처신이다. 사려 깊은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치우치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의 연구 결과를 그리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만일 원세호님이 이처럼 엉터리 연구를 토대로 함부로 남을 이단 삼단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의 머리이시고 살아 계신 주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원세호 님 주장: ④ 지방파는 교회가 예수님의 부활로 잉태되고 출생되지 않았으나 그리스도가 제자들 안으로 들어왔을 때 교회의 잉태일 뿐인데 오순절 날에 출산했다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며 거짓 주장이다. 그 이유는 이미 구약시대에도 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 위와 같이 지방파의 교회 기원에 대한 주장이나 사명의 주장은 비 성경적이며 성경근거도 없는 것이다.>
<윗트니스 리 원래 주장: ④ "부활의 날에 교회가 잉태되었지만 그러나 아직 태어나지 않았었다. 주님이 그분 자신을 제자들 안으로 불어 넣으셨을 때 그들은 교회를 잉태하였으나 아직 교회가 출생되지는 않았었다. 그것은 그들 안에 잉태되었을 뿐이었다. 부활한 그리스도가 제자들 안으로 들어오셨을 때 그것은 교회의 잉태였다. 오순절 날에 승천한 그리스도는 보좌 위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들 위에 그 분 자신을 옮겨 부으셨다...">(3. p.177, 11-20 ; 윗트니스 리 주장)
4. 원세호님의 <교회 창조 목적> 비판에 대한 재반박
원세호 님은 (지방)교회의 가르침을 인용한 후, 그 말끝에 무조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자신의 변증 글의 대부분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나 왜 아닌지에 대한 이유 제시가 없다. 그리고 일부 제시된 이유들도 말이 안 되는 것이 많다. 또 어떤 때는 간혹 성경근거를 인용하지만 엉뚱한 내용이 많다. 이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경솔한 변증비판은 설득력이 없다. 진지하게 추구하는 성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원세호님은 남의 글 일부를 여기 저기서 가져다가 자신의 주관적인 기준으로 함부로 단정하는 자신의 현재와 같은 변증방식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지금 같은 입체적인 접근과 체계적인 분석, 성경에 근거한 대안제시가 없는 비평은 결코 성경적인 변증이 아니다.
1) 원세호님은 경솔히 행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
<원세호 님 주장: ① "지방교회는 그의 본성을 가진 참된 합일의 입장"이란 주장은 성경 근거 없는 소리이며 주의 회복이 교회 생활 안에서 예수의 간증으로 성취되는 것이란 주장도 성경 근거 없는 소리이다.>
위 인용문에서도 보듯이 비판자는 '근거 없는 소리'라는 말만 되풀이했지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 근거제시의 말이 없다. 이것이 성경적 변증은 아닐 것이다.
원세호 님은 위 본문을 윗트니스 리의 '주의 회복'(한국복음서원, 1990) 66쪽에서 발췌했노라고 인용문에서 밝혔으니, 그 앞 뒤 문맥을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은 윗트니스 리가 '계시록에 있는 등대에 대한 두 세 가지의 중요한 방면들이 있다'(65쪽)라고 전제한 뒤 에 계1:12, 20에 나오는 일곱 금 등대 곧 일곱 교회들에 대해 해설한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성경 근거가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는 것은 거짓되다. 또한 위 인용 책자 원문에는 '지방교회는 금의 본성을 가진...'으로 되어 있음에도, <금의 본성>을 <그의 본성>이라고 변조하여 인용 소개함으로 독자들을 속이고 있다. 이것을 우연한 실수라고 변명할 것인가? 어찌하든 이런 실수들은 님의 변증책자가 헛점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할 뿐이다. 독자들을 위해 원세호님이 비판한 윗트니스 니 글 원문을 조금 더 소개하겠다.
<윗트니스 리의 원문 글: ...(계1:12의) 등대에 대한 또 다른 방면은 그것이 예수의 간증이라는 것이다(계1:9). 우리가 금으로 만들어지고 참된 하나의 위치에 서서 빛을 비출 때 그것이 간증이 된다. ... "지방 교회는 금의 본성을 가진 참된 합일의 입장 위에 서서 이 세상의 어두움에 빛을 비추고, 예수의 간증을 지녀야 한다". 이것은 종교적인 활동이나 또 다른 종류의 운동이 아니다. 이것은...예수의 간증을 지니기 위해 빛 비추는 등이신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는 새 사람인 교회이다. 이것이 교회생활 안에서의 주의 회복이다.>(윗트니스 리, 주의 회복, 한국복음서원, 66쪽).
교회가 이 어둠의 세상에 빛을 비추고 예수의 간증을 지녀야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마5:14 -16, 계1:20)을 원세호 님은 왜 비 성경적이라고 함으로 애써 부인하려고 하는가?
2) 원세호 님은 자신의 단편적인 성경지식에 따른 경솔한 단정을 삼가 하기 바란다.
<원세호님 주장: ② 지방교회가 창조의 목적을 교회를 낳는 것이라는 주장은 성경을 잘못 적용한 것이다. 창조 목적은 예수님 자신을 위함이며(골1:16), ...창조 목적이 교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창조목적을 실천하는 거듭난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이며 지방파 주장과 같이 창조 목적이 교회를 낳는 것이라는 주장은 비성경적이며 성경 근거도 없는 것이다.>
(1) 하나님은 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여러 각도의 답변이 가능하다. 우리는 창1:26, 엡 3:9-10, 1:4-5을 근거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교회를 얻기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 사람도 창조하셨다>는 관점을 갖는다. 즉 하나님은 창세 전에 사람을 창조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장성한 아들들로 만들므로, 그들로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고,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며, 만물을 다스리도록 계획하셨다. 그리고 이 계획을 따라 하나님은 시간가운데 먼저 인간이 생존할 환경을 창조하시고 끝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다(창1:26).
관련 성경본문을 직접 인용해 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1:26).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엡3:9-10).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에베소서2:15는 '십자가에서 계명의 율법을 폐하시고...이 둘(유대인, 이방인)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위 본문에서 사용된 동사 '크티조'(2936)는 막13:19, 엡3:9, 골3:10, 계10:6에서 '창조'로 번역되었다. 이처럼 새 창조까지도 교회가 초점이다. 새 사람은 곧 교회를 의미한다.
(2) 어떤 이들은 주님이 오신 목적을 주로 죄의 용서에만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죄의 용서는 중요한 항목이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주님은 다만 죄사함 만 아니라, 이에 더하여 구속받은 선민 안에 자신을 생명으로 주시고 더 풍성히 주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마16:18, 요10:10, 엡1:23 본문이 이것을 증명한다. 심지어 엡5:26은 주님이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래의 웟치만 니의 말은 전적으로 성경에 기초한 것이다. 원세호 님의 경솔한 말처럼 성경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웟치만 니 글 인용: ② "그의 창조의 목적은 교회를 낳는 것이었다. 구속에 있어서도 그의 목적은 교회에 있었다. 사실상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은 교회를 위한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 성도들을 양육하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 등의 모든 사역이 교회를 위한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복음전파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도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이다. 성도들을 양육시키는 것도 양육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서 보면 모든 역사와 사역이 교회를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구속을 위하여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교회 건축을 위하여 구원받은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갈망이다">(22. p. 69, 10-21줄, 웟치만 니).
같은 성경을 보면서도 왜 이런 불일치가 생기는가? 그것은 원세호 님이 성경을 단편적이고 피상적으로만 이해할 뿐 성경 안에 내재된 하나님의 근본적인 갈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세호 님은 에베소서3:2-11을 여러 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묵상해 보기 바란다.
3) 원세호님은 예수님이 마귀의 일을 멸하셨지만 그러나 마귀가 교회의 발등상 될 때까지 교회는 마귀를 대적하여 영적 전쟁을 해야함을 부인하려는가?
<원세호님 주장: ③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해서 인간이 사탄의 모든 일을 파괴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이 교회' 라고 지방파가 주장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며 이미 사탄의 모든 일은 예수님이 파괴했으며...>
예수님이 마귀를 멸하신 것이 이미 성취된 한 방면이라면(히2:14), 사도 바울의 간구처럼 사단이 교회의 발아래 상케 되는 것(God shall bruise Satan under your feet shortly)은 또 다른 방면이다(롬16:20). 하나는 예수님에 의해 과거에 성취된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교회를 통해 현재와 장래에 걸쳐 이뤄질 일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와 부활로 마귀를 멸하시고,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신다>(히10:12-13).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이 땅 위에서도 이뤄지고 이 땅에 왕국이 임하도록 교회인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로 마귀를 대적하는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한다(마6:10, 엡6:11-17). 그렇지 않은가? 이런 현재적인 교회의 영적 싸움(엡5:8-9)을 보지 못하고 심지어 부인하는 사람이 어떻게 한국 교회를 위해 진리를 수호한다고 말하는가? 한국교회를 위하기는커녕 섣부른 이단 정죄와 자기주장으로 한국 교회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지는 않은지 빛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