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원세호님의 (지방)교회 <교회관> 비판에 대한 재 반박(1)
교회론 비판에 대한 이의제기를 시작으로 원세호님과 그 문하생들이 펴낸 '지방교회 주장과 성경적 변증서' 책자(총 3권)의 교리부분에 대한 반박글들을 차례로 써 나가고자 합니다.
원세호 님은 (지방)교회측 교회론에 대해 1. 현대 교회관, 2. 교회의 정의, 3. 교회의 사명, 4. 교회의 창조 목적, 5. 교회 직제, 6. 교회 위치와 단위, 7. 교회 이름 제정, 8. 교회의 하나와 합일, 9. 교회와 예배, 10. 죄와 교회와의 관계, 11. 교회의 영광스런 상태 등으로 세분하여 비판하였음으로,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같은 제목으로 원세호 님의 핵심적인 오류와 왜곡들을 지적하고 반박해 나갈 것입니다.
1. 원세호님의 소위 <현대 교회관> 비판에 대한 반박
원세호 님은 웟치만 니가 그의 저술 '사역의 재고'(한국복음서원, 1988)에서 성경상의 집회(예배)를 교회 집회와 사역집회로 나누고, 사도행전 20:7-11 에서처럼 혼자 말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듣는 형식의 집회는 예외적으로 외부에서 사역자(예를 들어, 사도 바울)가 방문하여 말씀을 공급할 때뿐이고, 고전 14장에서 보듯이 성경 안의 모든 교회집회는 피차 상호적인 성격의 집회의 성질을 포함한다고 하며, <원탁형의 집회>를 교회의 성격을 띤 집회로, <강단이 있는 집회>는 다 사역의 성격을 띤 집회라고 설명한 것이... 비 성경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그의 비판은 마땅히 교회의 성격을 띤 예배가 한 사람이 말하고 다른 사람은 듣는 소위 강단이 있는 집회 형식을 띠고 있었다는 성경근거들을 나열함으로 웟치만 니의 주장을 반박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는 이 점에 실패했다. 대신에 자신의 책자의 많은 지면을 이러한 핵심요점과 무관한 말들로 채웠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이단적인 교회관을 보여 주기까지 했다.
1) 원세호님은 '강대 예배는 생활화되어 있었음을 보게 된다'는 자신의 주장근거로 히브리서 10:25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본문이 원세호 님의 주장처럼 <성경적인 교회 예배는 곧 소위 강대(상) 예배> 였음을 증명하는 본문인가? 그렇지 않다. 이제 히브리서 10:25 본문을 직접 인용한 후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점검해 보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더 그리하자'(히10:25).
보다시피 이 본문에는 <강대상 예배>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믿는 이들이 모이기를 힘쓰라는 권면이 있을 뿐이다. 원세호님은 늘 성경적 변증을 주장하나 정작 자신은 이처럼 엉뚱한 내용으로 독자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전혀 관련도 없는 내용이라도 성경에서 인용했으면 그것이 곧 성경적 변증은 아니다.
2) 원세호 님은 예배당 건물도 교회라는 비성경적인 교회관으로 웟치만 니 교회관을 비판했다. 그의 교회의 정의에 따르더라도 교회는 '부르심 받아 세상에서 나온 성도들'일뿐 그들이 모이는 모임장소까지 교회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래에서 보듯이 그의 변증서 책자에서 '건물교회'라는 비 성경적이고 심지어 이단적인 말을 사용하고 있다.
<원세호님 주장: ② 신약 시대에는 고린도 교회와 같이 교회에 모였었다 (고전11:18). 그리고 분쟁이 있었다. 이 모임 장소는 건물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1:18의 영어 원문에서 '교회'는 'in the church'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가 어떤 모임장소 즉 건물이란 말이 아니다. 위 말씀은 교회인 성도들 안의 모임을 말하는 것이며 원세호 님의 이단적인 주장처럼 '건물교회에 모인 것'을 뜻한 것이 아니다. 교회는 믿는 사람이며 주님의 몸이다. 어떤 예배당 건물이 교회가 될 수 없다. 이 점은 위 18절에 이어지는 22절에서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라고 함으로 교회가 업신여김을 당하는 인격체로 묘사됨으로 더욱 분명해진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엡1:23). 따라서 이런 성경적인 교회관과 달리, 건물교회를 주장하는 원세호님의 교회관은 매우 잘못된 교회관이다.
3) 원세호님은 강단 예배는 성경에 있으나 사역집회 성격이지 교회 집회 성격이 아니라는 웟치만 니 주장을 웟치만 니는 강단 예배가 성경에 없다고 주장한다고 말을 바꾸어 놓고 이를 근거로 남을 이단시하고 있다. 부정확하고 정직하지 않은 일이다. <웟치만 니는 강단 예배는 성경에 있지만, 사역적인 예배시만 행해졌다>고 말함에도 아래와 같이 말을 바꾸어도 양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지 묻고 싶다.
<원세호님 주장 : ...그런데 도가 넘어 (웟치만 니는) 기독교 강단 예배를 성경에 없다고...성경을 부인하니 문제가 되고 이단 시비가 일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4) 원세호 님은 예배당 안에 앉아서 한 사람의 설교를 듣고 있는 시간만을 그리스도인의 예배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배당 안에서는 경건하고 거룩한 척 앉아 있다가 예배당 문을 나오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소위 이중적인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원세호 님도 성도들을 잘못 가르친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계 내에서 행해지는 예배모습이 성경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신학자들의 진단(
http://www.rpress.or.kr/topnews/xinu_view.php3?CP=2&SN=120) 도 있음으로, 현행 한국교계 예배실행을 기준으로 성경적인 예배모습을 규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아래에서 소개하는 장신대학에서 예배학을 가르치는 정장복 교수의 재세례파 예배 모습이나 영국에서 목회하는 신대현 목사가 제시한 소위 '강대 예배가 의미하는 예배시간만 예배가 아니라, 이에 이어지는 모든 경건의 삶을 예배에 포함시키는 예배 개념'이 성경적인 예배에 근접한 것은 아닌가? 원세호님의 소위 <강대상 예배 개념>은 이러한 관점에서 비교해 볼 때 성경적인 예배와 크게 다르다.
자료1) 정장복 교수의 재세례파 예배 소개
http://wpa.or.kr/pass/worship/worship-07.htm<...그런데 이러한 성경적 예배는 단순히 집회소에서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다. 예배자인 회중은 학교 교실이나 가정집의 거실에서도 주일이면 어느 곳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이다.> ....예전(Liturgy)이란 말은 본래 신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드리는 특수한 행위가 아니라 성도의 일상적인 행위를 뜻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전적 예배는 복음의 증인과 일군으로서 사는 것이었다. 후에 그는 우리가 주를 위해 행하는 모든 것이 바로 '예배'라고 부르고 있음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된다.(고전10:31)>.
자료2) 신대현 목사
http://www.otnt.net/otntnote/Supplement/Jesus/Jn040326-2000.htm<하나님은 성령으로 모든 성도들 가운데 거하셔서 그들의 모든 생활에서 예배 받으시길 원하시는 것이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in spirit)...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예배할지니라". 교회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 몸으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히 10:24, 25). 그러나 이것은 예배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예배 안에 있다가 예배 밖으로 나가는 삶을 사는 자들이 아니다. 성령 안에 있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다. 이것이 '신령으로 예배하는 모습'이다. 모든 생활이 예배인 것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다: 롬 12:1 산 제사; 롬 14:18 사람에게도 칭찬 받는 삶; 신 6:4-5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한 여호와께 대한 사랑; 미 6:6-8 공의를 행하고 인자(仁慈)를 사랑함,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
위에서 보듯이 원세호님은 자신의 교회관, 예배관도 성경적인 것이 아니고, 웟치만니 주장도 잘못 이해했음이 입증되었다. 이런 비 성경적이고 불성실한 자료가 어떻게 건전 기독교의 공익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원세호님은 남을 비판하기 이전에 '건물교회'등을 주장하는 자신의 비 성경적인 교회관부터 성경적인 교회관으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2. 원세호님의 <교회의 정의> 비판에 대한 재 반박
원세호님은 소위 (지방)교회가 '교회를 재료이신 그리스도라고 정의하며 교회가 성도들의 모임인 것을 부인하고', '성경 상의 교회는 개 교회일 뿐 지방교회가 아닌데 지방교회라고 하며', '잘못된 교회정의를 통해 기존 검증된 기성 건전 교단 교회만 무너뜨리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세 가지를 차례로 반박해 보겠다.
1) 원세호님은 자신의 <피상적인 교회관으로 웟치만니의 본질적인 교회관을 비판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둘은 그 깊이에 있어서 다르므로 하나로 다른 하나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교회라는 단어의 헬라어가 에클레시아이고 그 문자적 의미가 공적 임무를 위해 부름받아 나온 무리임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웟치만니도 교회가 에클레시아임을 부인치 않는다. 그러나 원세호님이 비판한 웟치만 니의 글은 이러한 에클레시아 교회관보다 더 깊이 교회의 본질을 들여다 본 것이다.
과연 그런지 원세호님이 비판한 웟치만 니의 본문을 다시 보자.
"이제 교회는 바로 곧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런데 교회란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 자체가 함께 모여서 생겨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교회란 그리스도께서 취해온 바로 그 부분이다. 즉 다시 말하면 교회란 그리스도를 재료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바로 그 사람이다. 교회란 흙에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다. 교회의 재료는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없는 교회는 가지도 없고 생명도 없으며 생존하지도 않는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15. p. 38, 16-25줄 웟치만 니 주장).
(1) 참고로 윗 글은 창2장의 아담과 하와의 예표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설명에서 나온 것이다(영광스러운 교회(웟치만 니) 참조). 위 글을 주의해서 읽지 않으면 원세호님 처럼 마치 웟치만 니가 에클레시아 교회관을 부인하는 것처럼 오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그리스도 없는 교회는...생명도 없으며 생존하지도 않는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라는 글 마지막 부분에서도 보듯이 위 글에서 웟치만 니의 강조점은 교회의 내적인 본질이 그리스도임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에클레시아'만 성경적인 교회 정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교회는 곧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의 정의도 있다(엡1:23).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교회가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다(고전12:12).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성도들을 핍박했지만, 정작 주 예수님은 나의 성도들 또는 나의 제자들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바울에게 '네가 왜 나(ME)를 핍박하느냐'고 하셨다(행9:4). 어떤 생명체이든 그것의 몸은 그의 일부인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다(골1:18, 엡1:23). 교회는 다만 '어떤 무리' 그 이상의 영적 깊이가 있는 신비한 개념인 것이다(엡5:32).
엄밀히 말하면, 거듭난 사람 안에 생명으로 들어와 우리와 연합되신 그리스도 그분 자신(고전6:17)이 곧 교회요, 신부요, 새 사람이요, 교회의 영적 실체이다. 에베소서 4:22-24에 의하면 부름 받아 나온 사람(에클레시아)도 여전히 그 존재 안에 새 사람과 옛 사람이 공존한다. 여기서의 웟치만 니의 주장 요지는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 사람'만이 교회이며, 옛 사람은 교회의 실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를 더 깊이 보고 말한 것이다.
(2) 남의 말을 인용 비판하려면 말을 정확히 인용해야 거짓말이 되지 않는다. 웟치만 니는 원세호님의 주장처럼 <교회를 재료이신 그리스도>라고 말하지 않았다. 웟치만 니는 <...교회란 그리스도를 재료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교회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그 안에 연합된 사람이 교회라는 말이다. 즉 교회의 구성요소는 '그리스도와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좀 더 심도 있는 설명은 <건물교회>를 주장하는 원세호님 식 교회관이 비성경적 교회관임을 즉시 분별시켜 준다. 즉 (예배당) 건물은 성경상의 교회재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세호님이 영적 눈이 열려, 창세기 2:20-23, 에베소서 5:26-27, 30, 32에서 묘사된 것처럼 아담에게서 나온 것이 이브를 이뤘듯이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생명만이 곧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이룸을 볼 수 있기를 주님께 기도할 뿐이다.
(3) 원세호님은 <주의 이름을 한 번(단수) 불러서(롬10:13) 구원된 자들의 모임이 교회인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날마다 불러야...라는 지방파의 주장은 거짓이다>라고 했다. 물론 우리는 주의 이름 날마다 불러야 참된 교회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의 이름 부름이 죄인이 구원받을 때 단 한번 부르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여러 번 부르는 것은 거짓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롬10:12는 주의 이름부름이 주님의 부요함을 체험하는 길 중 하나로, 행9:14, 21은 주의 이름 부름이 예수 믿는 사람의 표식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원세호님은 무조건 부인만 하지 말고, 롬10;12, 사도행전 9장 내용을 차분히 읽어보기 바란다.
2) 원세호님은 <성경에는 교회라고 하는 용어가 114회나 사용되었는데 대부분 94여 회는 개 교회이며 지방교회가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런가?
또 다른 견해(
http://magazine.wheel.or.kr/book/2001-11/26.html)에 의하면 신약 성경에서 교회는 115회 사용되었는데, 23회는 우주교회의 의미로 92회는 지역교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구 말이 맞는가? 원세호님이 말하는 <개교회>의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그것이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00 침례교회> <00 장로교회> 등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이처럼 장로교 침례교라는 개 교회가 성경에 94회나 쓰였다는 말이 되는데 그 구체적인 성경 근거를 제시해 보기 바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장로교회 혹은 침례교회라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 에베소 교회 등등 성도들이 사는 지역을 경계로 둔 지방(city)적인 교회 간증 즉 '지역교회' (local church)가 있었을 뿐이다(행8:1, 13:1, 계1:11). 그러나 이것은 서울에 있으면서 간판만 안디옥 교회라고 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 교회는 <그 지방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이뤄진 하나님의 간증 곧 금등대들인 것이다(계1:11-12).
만일 교회가 원세호님 말대로 다만 성도들의 모임이라면 그 범위를 무엇으로 정하여 하나는 'A 교회'가 되고 나머지는 'B 교회'가 되는가? 즉 단수의 교회를 복수의 교회들로 나누는 성경 기준이 무엇인가? 원세호님은 이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을 할 수 있는가? 성도들이 사는 지역 또는 지방을 따라 교회와 또 다른 교회를 구분하는 것 말고 성경에 다른 기준이 또 있는가? 이 기준이 모호할 때 하나님의 교회 안에 분열과 혼란이 가중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원세호님의 성경에 없는 교회의 실행과 기준으로 웟치만 니의 성경적인 교회 실행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3) 원세호님은 '(지방교회가) 잘못된 교회정의를 통해 기존 검증된 기성 건전 교단 교회만 무너뜨리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엔 많은 의문과 비판이 가해 질 수 있다.
(1) <교단교회>라는 말이 성경에 있는가? 없다. 성경엔 <교단>이란 말이 없다. 그러므로 교단 교회도 성경 개념이 아니다. 원세호 님은 성경적인 변증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실만을 고려한 비 성경적인 주장을 일삼고 있다.
아래 내용은 손봉호 교수님이 이사장, 총신대 이재서 교수님이 회장으로 있는 장애인 선교단체 홈(
http://www.milal.org/2000/0003/page7/page7.html)에 소개된 교회의 정의이다. 이 홈은 <교단>이 교회의 속성과 전혀 무관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둘 중 누구 말이 맞는가? 만일 원세호 님이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려면 교단의 출처가 되는 성경근거와 교단교회의 성경 출처를 제시하기 바란다).
"교회의 정의 : 교회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집합체를 의미한다(고전 1:2; 엡1:1; 골1:2; 살전1:1). 이것은 근본적으로 교회란 단지 어떤 조직체도 아니요, 건물도 아니요, 교단도 아님을 의미한다... 비록 밀알선교단이 조직적 의미로서 다른 교회 조직과 구분이 된다 할지라도 모두가 하나님백성이라는 영적집합체에 속한다."
(2) <기존 검증된 기성 건전 교단>이란 주장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며 누가 어떻게 검증했다는 말인가?
오늘날과 같이 개신교인들이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성공회 등등으로 나뉘어져 교단을 형성하게 된 것은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의 현상이다. 초대교회 때는 교단이 없었다. 물론 개신교 이전에도 동 서 로마 천주교의 분열로 교단을 형성했으나 이것은 개신 교단의 그것과 함께 슬픈 교회분열의 역사이지 하나님이 건전한 것으로 검증해 준 역사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각 개의 교단으로 나뉘어지기를 원치 않으신다. 오히려 삼위가 하나인 것처럼 저희도 다 하나되기를 원하신다(요17:21-22).
이제 원세호님은 본인의 신앙양심에 근거하여 아래 질문에 답변하기 바란다. 하나님은 원세호 님 주장처럼 이미 검증을 거쳐 인정하신 교단들을 계속 고수하기를 기뻐하시는가? 아니면 궁극적으로 성경에 없는 교단들을 말끔히 청산하고, 믿는 이들이 한 몸(엡4:4), 한 새사람(엡2:15), 한 그리스도의 신부(계19:7, 21:9-10, 22:17)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이런 쌍방의 변증을 통해 과연 누가 성경적인 교회관을 말하고 있는지 독자들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