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론, 삼신론 논쟁(1)
성경진리토론방
, 2002-12-20 , 조회수 (433) , 추천 (0) , 스크랩 (0)

아래 내용들은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뤄졌던 삼위일체 관련 토론입니다.
이 주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명쾌한 이해를 돕고자 그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등록일: 2001.07.28 이름: 성도  조회: 37

오광만님이 번역한 스미디즈 교수의 글은 최0경 목사주장과 크게 다릅니다



한가지님은 아래 스미디즈 교수의 주장이 이단사상 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동의하십니까. 만일 이단이라고 하신다면 사도 바울이 이단이 될 것이고, 이단이 아니라면 (지방)교회측을 양태론이라고 한 최목사의 거짓정죄는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최0경 목사같이 삼위를 구별에서 지나쳐 분리시키는 삼신론 이단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지방)뿐아니라  성경기자인 사도 바울이나 예수님 자신이 나타나도 그들의 눈엔 양태론 이단자가 될 것입니다. 이제 아래 세 하나님들을 믿는 삼신론자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비교적 성경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두 가지 경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풀러신학교 교수인 루이스스미디즈가 쓰고 월간 교회와 신앙에 글을 쓰고 있는 오광만 님이 번역한 '바울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사상'(여수룬, 1991년)의 내용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1) 스미디즈(오광만) 교수는 위 책의 제 2장 '그리스도와 성령'이라는 제목 아래에서 성령에 대한 두 가지 신학(증발된(?)그리스도로서의 성령 신학과 그리스도의 창조적 대리인으로서의 성령)을 소개한 후,  사도 바울의 성령에 대한 관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마지막의 바울의 관점은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어떤 학설들보다 성경본문을 우위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저자는 바울서신 중 하나인 고후 3:17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는 영이시니'라는 말씀에 대해

'그(바울)의 말은 극적이긴 하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고린도후서3:17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는 예수그리스도이시며, 성령은 삼위일체의 삼위이시다. 바울이 주라고 부르고 있는 예수님은 이제 성령이라고 표현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64-65쪽).



계속 보다보면 '성령은 역사하고 계시는 주이시다.
성령은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대목도 나옵니다(70쪽).


그러면서 81쪽에서 바울의 글을 분석한 자신의 결론부분에서 스미디즈는 '성령은 우리 역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님이나 삼신론자인 최0경 목사가 이 말을 들었다가는 즉시로 사도 바울은 양태론을 믿는 무서운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나설 것입니다. 최목사에게는 성경말씀의 가르침보다도 자신의 '00 하면 양태론'이라는 비 성경적이고 이단적인 공식이 더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같은 장로교 계열 학자로서 '인격'이라는 용어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삼위를 세 사람들과 같은 세 분 하나님들처럼 착각하고 있는 최목사식의 교리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아는 저자는 님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려운 문제는 인격체(person)라는 단어이다.... 만일 우리가 성령을 독자적인 고유권한을 지닌 인격체라고 칭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개인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의 사고 방식(성경의 가르침-필자주)이 아니다. ... 성령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인격적인 존재이시다. 그러나 그것은 그분의 독자적인 권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한 인격체이시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 그분은 오직 그리스도로 알려지고 체험된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을,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인격체와 분리된 인격체로 주장하는 것이 성경적인 목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저자(스미디즈)의 글은 다음과 같이 계속됩니다.



'그리스도와 성령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다섯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1. 성령은 지상에서 그의 구속 계획을 성취하고 실현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이시다.

2. 성령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에 의해서 체험되는 그리스도이시다.

3. 성령은 지금 여기 존재하시는, 그러나 장차 완전히 실현될 새로운 창조를 통치하시는  주로서, 그의 세상적인 기능들을 수행하시는 그리스도이시다.

4. 성령은 새로운 창조 안에 있는 자유의 삶을 위한 객관적인, 그러나 역동적인 규범이시다.

5. 따라서, 새  언약 안에서의 삶에 관한 한, 성령은 현재의 그리스도이시다(위 책87-88쪽)'.



저자는 계속해서

'십자가와 부활은 성령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을 지배하는 내용들이다. 바울의 성령에 관한 가르침은 삼위일체위 위격에 대한 교리적인 강설의 배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성령에 관해서 말하는 바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움직임'-이것이 바로 윗트니스 리가 말하는 경륜적인 방면의 삼위일체라는 것임-필자 주-배경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하고 있습니다.


삼신론자인 최0경 목사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식적인 삼위일체관을 버리지 못하고  지극히 성경적인 바울과 위트니스 리와 스미디즈의 위와같은 성경적인 관점을 반대하고 정죄하려면 그런 내용을 번역하여 한국교계에 배포하는데 기여한 오광만 교수에게도 마찬가지로 정죄의 화살을 돌려야 공정할 것입니다.




2) 저자인 스미디즈는 계속해서 제 5장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울의 글을 해석하면서 거듭 '성령은 주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될 수가 없다. 이 시대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는 역사하시는 성령이시다'(201쪽).  '나는 그리스도께서 "문자적으로 우리 안에" 계신다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202쪽)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님들의 세 위격을 분리시키는 이단적인 기준에 의하면 성령과 주 예수님은 분리된 두 사람 같은 존재이며 그리스도라는 실체는 저 멀리 하늘 보좌에 만 계신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늘에도 계시지만 거듭난 사람 안에도 계신다(롬8:10, 34)고 성경적으로 말하면 '도깨비 손오공 같은 이야기'라고 반문함으로 이를 거부합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교리가 성경본문보다 더 비중있다고 믿는 사람다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비록 자신의 제한 된 이해력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해도 성경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믿고 아멘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제한된 머리속의 이해력으로 성경과 하나님을 함부로 거부하는 이러한 이단적인 사상은 결국 아들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으로 사람 안에 들어 온 것인 믿는이의 거듭남(요일5:11-12, 3;6)의 실체를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다음 단락에서 소개할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이야기는 님들에겐 다 비유요 상징일 뿐이라고 말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려는 하나님의 뜻의 핵심대상의 실체를 무시해 버리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3) 저자는 제 7장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서 말하면서 '바울이 사용한 어휘로서의 그리스도의 몸(공동체)은 '하나의 몸과 같으며 실제로 그것은 몸이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233쪽). 저자는 계속해서 바울의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27)는 말씀에 대해 '이 말에서 보자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라는 몸을 갖고 계신다. 그것은 실로 이상한 몸이지만 몸은 몸이다. 그리고 이 몸은 우리가 인간의 몸이라고 부를 수 있는 평범한 육체적인 기관과 흡사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34쪽).


이러한 바울 사상에 기초한 스미디즈의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을 어떤 신학교리보다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다 아멘이 되는 말들입니다. 그러나 '양태론 이단'이라는 괴상한 굴레에 묶여 있는 최삼경 목사와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스미디즈의 말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바울의 가르침(성경) 조차도 딱 맞아떨어지는 양태론 사상이라며 정죄할 것입니다. 이러한 삼신론 사상은 거듭난 이후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살라'는 신약성경의 최대의 요구를 이행하는 것을 좌절시키는 최대의 암초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