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local Church) 측 토론글-지방교회, 지방교회-이단과 정통(#2)
김홍기목사
DCP , 2016-03-11 , 조회수 (1398) , 추천 (0) , 스크랩 (0)
지방교회, 지방교회-이단과 정통
 

제목에서 ‘지방교회’라는 말이 두번 언급되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앞의 지방교회(Local church)는 외부인들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지칭한 말이라면, 뒤의 지방교회(local church)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1: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행8:1)처럼 ‘어느 한 지역(city) 안에 참되게 거듭난 모든 믿는 이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교회’를 가리킨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자신들의 책에서 ‘지방교회’라고 할 때, 그것은 후자를 의미한다(위트니스 리, 성경에 나타난 교회, 1986, 102-103쪽). 둘은 전혀 다르다. 그런데 이들을 공격하는 쪽(김목사님 포함)은 이 말을 전자로 생각하고 읽는다.

지금까지 쌍방간의 갈등의 반 이상은 이처럼 ‘지방교회 정의’를 글쓴이의 의도와 다르게 이해한데 근거한다. 김목사께서는, “지방교회는, 중생한 개신교인은 ‘그리스도의 신부’요, 각 교파에 속한 개신교인은 ‘음행자’요 ‘바벨론’이요 ‘배교자’요, 따라서 사실상 ‘이단’이다”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구분을 했다거나 개신교를 이단시 했다는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이런 혼란과 갈등은 앞서 지적한 ‘지방교회’의 정의 왜곡, 그리고 “문맥을 무시한 인용문”에 근거한 이단연구가 주된 원인이다. 이 문제는 다시 다루겠다.

김목사께서는 '‘지방 교회측이 (천주교만 아니라) 개신교측도 배교했다'(이단)라고 했다’라는 것을 이번 토론의 핵심 주제로 삼으신 것 같다. 아울러 양태론은 이단이고, 엘리옷 밀러의 ‘전후문맥 읽기 권고’는 불필요하다는 주장도 겸하여 했다. 이런 논점들을 앞으로 하나씩 다룰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론에 앞서, 김목사께서 옹호하시는 ‘교파주의’는 성경에 근거가 없고, 신실한 신학자들도 반대했고, 칼빈 웨슬리 등 교파 창시자들도 원치 않았음을 조금 더 밝히려고 한다.

전 장신대 교수인 이형기 박사는 <교회분열이 아니라 개혁을 의도했던 종교개혁>이라는 소제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교파주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러나 루터와 칼빈 등으로 대표되는 주류 종교 개혁은 그 출발에 있어서, 결코 카톨릭 교회로부터 분리주의를 내세운 것이 아니라 기성 카톨릭 교회의 개혁을 절규하였던 것이다.”(세계교회의 분열과 일치추구의 역사, 장로회산학대학교 출판부, 1994, 117, 118쪽).

이 점은 다음 자료에서도 입증된다. “칼빈은 독립교회(Freikirche)를 형성할 계획은 추호도 없었다.”(오토 베버, 칼빈의 교회관, 풍만출판사,1985, 33쪽). “요한 웨슬레는 한 번도 자기가 영국교회로부터 독립하여 새 교회를 조직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이종성, 교회론,221쪽).

모교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실천신학 교수와 학장을 역임한 에드먼트 클라우니는, “우리는 한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많은 신들-이시스, 아폴로, 디오니소스, 데메테르-을 섬겼다면 서로 다른 종파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분파주의의 시초에 직면했을 때…그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꾸짖었다(고전 1:13).”(교회, IVP, 1999, 90-91쪽)라고 한다.

케빈 길레스는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교파들을 아무런 신학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인간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공회, 장로교, 로마 카톨릭을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인 존 프레임(John Frame)은 성경은 “교파주의의 폐지를 요구한다”고 까지 주장한다”(신약성경의 교회론,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300쪽). “신약성경에 의하면, 성공회나 감리교나 기타 교파들과 같이 동일한 신앙을 가진 교회들이 한 단체를 이루게 하는, 어떤 성경적인 권리도 없다는 것이다”(J.크라이드 터너, 신약 교회 교리, 침례회출판사, 1992, 8쪽).

사정이 이러함에도 김목사께서는 주류 개신 교파들을 정통교회로 간주하고, 이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우리는 물론 개신교 안에 있는 참되게 거듭난 믿는 이들을 귀히 여기지만, 김목사께서 옹호하시는 개신교 단체의 범위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 관련하여 김목사께서는 김효성 박사(미국 Faith 신학교 졸업, 현재 계약신학대학 대학원 교수)의 아래 글을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근본주의 신복음주의’라는 소단락 결론 부분에서) 성경적인 기독교는 마땅히 자유주의 이단을 배격하고 배제하여야 하며, 자유주의 이단을 고의적으로 포용하는 신복음주의 혹은 오늘날의 복음주의는 인간적인 타협이며 주께 대한 배신이다…. 예장 통합측 같은 자유주의적 교단이나 기성과 기침과 같은 포용주의적 교단들…기장이나 기감 같은 자유주의 교단들…”(현대교회문제, 기독교 문서선교회, 1993, 165-166쪽).

 
이제부터는 이 글의 핵심 쟁점인 과연 지방교회측이 개신교단을 ‘배교’ 내지는 ‘이단’이라고 했는지를 살펴 보겠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이것 역시 노먼 가이슬러 등이 ‘문맥을 무시한 채’ ‘떼어낸 인용문’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 일 뿐 사실이 아니다.

위트니스 리는 요한계시록 3장 8절 각주(3)를 쓰면서, “변절한 교회(The apostate church)는 주님의 말씀에서 빗나가 이단이 되었다.”라고 했다. 이것은 로마 천주교를 가리킨다. 그 증거는 그가 회복역 성경 계시록 2장18-29 절 단락의 소제목을, “D. 두아디라에 있는 교회-변절한(배도한) 교회)”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문제는 과연 ‘배교(변절)한 교회’라는 표현이 천주교뿐 아니라 개신교까지 포함하는가 하는 것이다.

가이슬러가 제시한 인용문은 마치 개신교를 포함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각주 원문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렇게 둘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오픈레터’ 입안자들이 중간에 있는 원문 상의 의미있는 설명을 말 줄임표로 생략한 후, 마치 ‘배교’라는 말이 개신교에도 미치는 것처럼 교묘하게 인용문을 만들어 제시했기 때문이다. 독자분들은 해당 원문(http://rv.or.kr/include/flex2/viewer2/recovery_low.php)(계3:8, 각주 3)을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위트니스 리는 해당 각주에서, ‘변절’(천주교), ‘주님의 이름부인’(교파), ‘회복된 교회’, ‘변절’(천주교), ‘교파’...이런 순서로 기술하고 있는데, 가이슬러는 이중에서 ‘회복된 교회’ 부분 설명을 빼어버림으로써 마치 변절 혹은 배교가 개신교까지를 포함하는 것처럼 읽혀지게 ‘사실’을 왜곡시켰다.

“(김홍기목사) WL은 “배교한 교회는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일탈했고 이단적이 되었다”고 말하며 카톨릭을 이단으로 정죄한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에 동일한 표현인 “배교”라는 말로 개신교를 비난한다. 즉 개신교는 ‘배교한 교회’인 것이다. WL에 의하면 ‘배교한 교회’는 ‘이단’이다. 따라서 WL은 개신교를 ‘사실상’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김목사님의 반응은 가이슬러의 글에 기초하고, 가이슬러는 ‘오픈 레터’ 초안을 만든 사람들이 ‘문맥을 무시하고 뽑아낸’ 인용문에 기초해서 변증했다. 그런데 그 처음 인용문 자체에 이처럼 심각한 하자가 있었던 것이다. 어찌보면 김목사님은 물론 노먼 가이슬러를 포함한 적지않은 ‘오픈 레터’ 서명자들도 이런 ‘나쁜 이단 사냥’의 피해자인 셈이다. 서명자들 대부분은 위트니스 리의 1차 자료를 직접 살펴 보지는 않았다.

위 사례는 왜 이단 문제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뽑아낸 특정 인용문만이 아니라, 엘리옷 밀러의 충고처럼 전후 문맥을 고려하고 더 많은 자료들을 읽어야 하는지를 오히려 역설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김목사께서 인용문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있으니 문맥을 고려할 필요도 없다는 예로, 위트니스 리의 자료 중 “아들은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성령이시기도 하다. 아들이신 주 예수님은 영원한 아버지이시다”라고 말한 부분을 제시했다. 물론 엘리옷 밀러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해명했다. 간단히 요약하면, 위트니스 리는 본체론적 삼위일체 방면에서는 삼 위격의 구별을 말하고 있고, 위 언급은 경륜적인 삼위일체 방면에서의 ‘기능적인 동일시’의 경우에 해당됨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고 양태론도 아니다는 것이다. 엘리옷 밀러 의 추가적인 해명은 http://www.equip.org/PDF/KoreanOpt.pdf 를 참고하기 바란다(특히 제2부 (양태론), 제 4부(교파)).

참고로 전 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총장인 박형용 박사는 신학지남 1978년 봄호 28-39 쪽에서, 고후3:17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고 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일시하고 있다(34쪽). 이것은 그분의 스승인 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개핀(Richard B. Gaffin, Jr) 교수의 입장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성경 본문들 자체가 외견상 위격 간의 동일시를 말하기도 한다. “한 아들을 …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사9:6) “주는 영이시니(Now the Lord is the Spirit)”(고후 3:17).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같더라 일곱뿔과 일곱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영이더라”(계5:6).
 

우리는 사실이 왜곡되거나 학문적인 배경을 과시하며 정작 비진리를 말할 때 그것은 바로 잡을지라도, 노먼 가이슬러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미워하지는 않는다. 아래 인용문 내용이 우리의 일관된 태도이다.

“우리 형제들이 많은 교파로 흩어져 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한다. 우리는 싸우거나 반대하거나 따지는 태도나 그러한 영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틀린 것이다.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는 영과 자세를 항상 지녀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고 주 예수님을 믿는 한, 그들은 우리의 형제요 자매이다. 지방 교회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어떤 벽도 없다. 우리에게는 울타리가 없다. 우리는 모든 사랑스런 그리스도인들을 우리의 형제로 생각한다”(위트니스 리, 성경의 기본 계시, 80-81쪽).
 

필자 / 김바울 형제
지방교회 측 진리 변증 위원회 한국어권 담당
Defense & Confirmation Project 
 

출처 : 크리스찬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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