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화 - 그리스도인들은 왜 서로 싸우는가?
교회들 칼럼
바울 , 2016-02-24 , 조회수 (2327) , 추천 (0) , 스크랩 (0)

첫 회의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미국의 저명한 이단변증단체인 CRI 측이 6년 간의 심도있는 재조사 끝에 '우리가 틀렸었다'(We Were Wrong)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쌍방은 지난 1970년대 중반부터 오랜기간 대립 관계를 유지해 온 사이 이고, CRI의 그러한 선언은 교계의 전통적인 지지자들 중 일부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CRI 측이 오직 진리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기에 그러한 용기있는 결단이 가능했습니다.

 

 

아 래 글은 CRI 측이 미국 전 지역과 캐나다까지 미치는 라디오 방송 채널을 통해 위트니스 리 본인과 지방교회측을 공격한 것에 대항하여 지방 교회측이 총 22주에 걸쳐 주 1회 일간 신문 지면을 통해 반박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아래 위트니스 리 형제님이 쓴 글은 그러한 일련의 반박문들의 서론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위 트니스 리 형제님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 진리를 놓고 대립하는 원인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 했습니다. 첫째, 성경 진리를 이해하는 깊이의 차이, 둘째, 진리의 양 방면을 모두 아는 것과 어느 한쪽만 아는 것의 대립, 셋째, 교회 역사상 이미 밝혀졌던 진리가 가려졌던 것을 회복한 정도의 차이에 따른 대립이 그것 입니다.

 

 

그 러나 이러한 차이가 항상 어느 한쪽을 정통으로 다른 쪽을 이단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에 거듭난 믿는 이들 사이의 이러한 견해 차이는 한 몸 안의 지체들 끼리 서로 존중하며 겸손하게 서로 배움으로써 “우리 모두가 믿음에서의 하나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온전한 지식에서의 하나에 이르는” (엡4:13) 문제 입니다.

 

 

아 래 글을 읽을 때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에 대해 변론할 때 어떠한 태도와 영을 가질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자신에게 쏟아진 온갖 조롱과 조소와 멸시가 섞인 비판들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반응을 자제하고, 다만 온유한 영 안에서 담담하게 진리와 사실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딤후 2:25). 따라서 아래와 같은 글쓰기는 참으로 대적인 사탄을 부끄럽게 하고 주님의 인격만 나타나게 하는 좋은 토론글의 사례로 기억될 만 합니다.


 


 

위트니스 리의 진술

 

 “수세기에 걸쳐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끊임없이 서로에 대항하여 싸워온 것은 매우 슬프고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주로 성경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서로 다른데 원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음의 세 가지 이유로 인해 관점과 정도에서 서로 의견을 달리합니다.

 

 

1.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매우 심오합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교리이지만 그 깊은 곳 안에는 심오하며 핵심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성경의 교리를 알기는 쉽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대해 성경에 계시된 깊은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더 큰 은혜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장 29절은 주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모든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복음서 12장 24절은 주님이 한 알의 밀로 땅에 떨어져 그의 생명을 해방함으로 많은 밀알을 맺어 그의 몸인 교회를 형성함을 계시합니다. 멜로디랜드에서 열린 집회의 강연자는 이 진리를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문제에 관련하여 우리를 이단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이단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깊은 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고린도후서 2:10)

 

 

또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은 교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구절인 16절은 교회가 신성의 비밀, 즉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되었음을 계시합니다. 교회는 단지 하나님의 집일 뿐 아니라 진리의 기둥과 터이며 육신 안에서의 하나님의 나타나심입니다. 이 구절의 내용이 이것을 확증합니다. 이것 또한 깊은 진리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강연자로부터 정죄를 당했습니다. 역시 이 문제에서도 그의 좁은 이해가 드러납니다.

 

 

2. 성경에서의 진리는 종종 두 방면, 즉 객관적인 방면과 주관적인 방면이 있습니다. 주관적인 방면은 주로 우리의 체험을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그리스도는 한 면으로는 하늘 위에 계시나 다른 면으로는 우리 안에 계시며, 그가 우리 안에 계심은 우리가 그분을 생명으로 또 생명공급으로 체험하기 위함입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체현이시며 우리 안에 우리의 생명으로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에 참예하는 자들입니다. 그 강연자는 이러한 주관적인 진리에 대해 반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그것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신성한 삼일성은 세 분의 방면이 있을 뿐 아니라 한 분의 방면도 있습니다. 한 면으로 삼일 하나님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의 세 분이십니다. 다른 면으로 그는 한 분, 유일한 하나님 이십니다. 이것은 성경에 분명하고도 온전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강연자는 세 분의 방면에 치중한 나머지, 한 분의 방면에 반대하여 대항해 싸웠습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의 관념 속에서의 하나는 유일한 하나님의 개별적 하나(individual oneness)가 아니라 단체적 하나(corporate oneness)입니다. 이것은 그가 이사야 9:6과 고린도전서 15:45의 순수한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신성한 계시는 교회들에게 계시록이 씌어졌을 때 온전히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오래지 않아 교회는 열려있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시각을 상실하고 그분의 완벽한 말씀의 중심노선을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에 의해 마르틴 루터가 세워지고 그가 잃어버린 진리들을 회복하기 시작한 종교개혁 이전까지 성경은 베일에 가려진 책이었습니다. 루터는 진리에서 벗어난 역사적 교회로부터 성경으로 돌아와 잃어버렸던 진리 가운데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의 진리를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의 회복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 후 지난 5세기에 걸쳐 주님은 계속하여 많은 다른 경로들을 통해 그의 회복을 수행해 오셨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우리가 주님께 얼마나 감사하는지요! 그러나 주의 회복의 매 단계마다 항상 슬픈 이야기가 함께 했습니다. 잃어버렸던 진리가 새 경로를 통하여 회복될 때마다 거의 매번 옛 경로들은 새롭게 발견된 진리에 대항해 싸웠고 심지어는 주님에 의해 그 진리를 회복하도록 경로로 쓰임 받은 사람들에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원칙 면에서는 오늘도 동일합니다.

 

 

나는 기독교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받았습니다. 유년시절부터 나는 성경 이야기와 많은 성경의 가르침들을 배웠습니다. 구원받은 후에는 훌륭한 형제회 교사들 발 아래 앉아 성경에 관한 그들의 수많은 메시지들을 들었습니다. 후에 나는 마담 귀용, 앤드류 머레이, 제시 펜 루이스 같은 속생명파의 책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후 나는 오순절 운동에도 참여했었습니다. 그 후 주님은 우리에게 그의 말씀으로 부터 많은 잃어버린 진리들을 보여주셨는데 그것들은 무한하신 그리스도의 증가와 확대, 단체적인 그리스도, 교회는 육신 안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임, 그리스도의 몸의 합당한 조화, 교회의 실질적인 표현 등이 그것들입니다.

 

 

이 진리들이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형제들 일부에게 생소한 까닭에 그들은 이것을 이단이라 여기고 성경에 따른 가르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성도들이 알고 있는 기존의 믿음을 위하여 싸운다는 구실로 새롭게 회복된 진리들에 대항하여 싸웁니다. 가끔 이들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성경에 대한 그들의 틀리고 부적당한 이해에 따라 그릇된 비방을 내세우며 싸우는 정도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새롭게 회복된 진리들은 절대적으로 성경적입니다. 이 진리들을 보기 위해서는 소위 역사적 교회들이 견지하는 전통적인 관념의 수건이 벗겨져야 하며, 주의 백성들은 그 분의 거룩한 책에 적혀 있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주의 회복 안에 있는 우리는 마르틴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 역사적 교회의 전통적인 관념이 아니라 오직 순수한 말씀에만 관심을 둡니다. 지금까지 말한 세 가지 이유는 단지 간단한 원칙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한 마디 덧붙이기를 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특정 진리들에 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고 그것들에 대해 서로 논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 안에서 하고 그리스도 안의 성도로서 합당한 수준에서 해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는 거룩합니다. 우리는 조롱, 조소, 멸시가 우리의 거룩한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위하여 싸우는 성도들의 길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은 신성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이들을 세울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말하고 행한 모든 것이 그분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지방교회,CRI,재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