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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6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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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로부터 에스더까지는 선민들의 멸망과정입니다
언제나 똑같은 방법으로 이래도 저래도 하나님을 멀리하는 인간들의 수레바퀴굴러가듯이 반복되는 하나님의 보호와 배반의 연속이 들어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도움은 폭도에 살인마인 삼손을 보내기 까지 할수있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보호를 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급기야 에스더에서는 하나님의뜰이 아닌 세상왕의 뜰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말씀엔 하나님을 찾지않았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바리새인같은 율법사들도 하나님을 찾지않은것이고 요즘의 신학자들도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것은 말씀을 기대하지 않는 다는뜻입니다 성경을 보고 어디에 말씀하고자 하시는것이 있는지를 알려고 해야하고 그것을 가르쳐달라고 보게해 달라고 지혜를 구해야하는데 그들은 지혜를 구하지않습니다 그저 글자만 보고 사람앞에 높아지기위해 노력만 하지요 그것이 하나님을찾지않는것입니다
결국 에스더에 이어 욥기가 등장하며 예수님과 선민들의 설전이 있게됩니다 그리고 다음에 시편에 다윗의 위(자리)에 앉으신 예수님의 말씀이 아래위로 훈계와 기도를 드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일종의 취임사라고 할수있습니다
그다음에 나오는것이 잠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법입니다
그다음에 전도서로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군사로 쓰임받을자들
에게서 세상의 찌꺼기를 떨어내는 작업을 하십니다
그뒤에 훈련장을 나온 군사를 노래하고 그에게 찬사를 보내며 기대를 하시는 예수님의 지혜자를 위한 노래가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마태복음의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말씀은 욥부터 아가까지의 바탕을 전제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의 이해를 위해서는 욥부터 아가를 지나야한다고 제가 말하는 것입니다
한편 구약은 말씀속에 예수님이 서서히 드러나는 구조이고 마태복음에서 완연히 드러나며 다시 뒤로가며 계시록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가리워 가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가령 복음서의 말중 요한 복음은 착시현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논리의 전개로 되어있어서 사람들이 많은 혼동을 합니다
서신들의 내용들도 저자가 없는 책은 분명히 말씀이 살아있으나 저자가있는것엔 사람의 말이 상당히 섞여있는것을 알수있습니다
가령 디모데 전후서 같은 내용들을 보면 아예 처음부터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라는 전제를 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신학자들은 목회서신이라 말하며 그것을 사람들에게 적용합니다 디모데전서1장 9절을 보십시오
누구에게하는 말인지.
너희는 이렇다는 것을 전제하고 한말을 가지고 목회를 하니 이 말로 어떻게 하나님께 속할수있겠습니까 계시록의 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겠는것 ..다시말해 풀한포기 잎사귀조차 만들수 없고 그것이 어찌 창조되는지 모르는 피조물인 인간주제에 별의 별희안한 도무지 사람이 닿을수없는 말들을 억지로 풀어가며 자기들의 상상으로 이놈저놈 다르게 말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법이 있는것이 아니고 지금 현재나의시점에서 말씀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잠시뒤의 일도 모르는 주제를 망각한 짓들을 자행하며 사람들을 모아 죽이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말아야하겠습니다 미물주제에 사람앞에 높아져 감히 하나님의 정체를 알아보자는 식의 사고는 패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