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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4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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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은 성경이 여러 차례 말씀하고 있습니다(신6;4, 고전8:4). 또한 신실한 성경교사들 심지어 웨스터민스터신조도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두분 또는 세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심각한 오류입니다(하나님을 한 분이라고 믿는 것을 성급하게 '일신론'이니 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판단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다만 구별되나 분리될 수 없는 삼위가 계실 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유일한 신격(Godhead)(골2:9)과 그 유일한 신격 안에 있는 세 인격들(Persons)(마3:16-17)을 혼동하는데서 오는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더 엄격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이 두분 또는 세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복수의 하나님들을 말하는 다신사상 즉 이단사상입니다. 즉 창1:26에서 하나님이 '우리가..만들자'라고 한 것은 한분 신격 안에 계신 세 인격들이 말씀하심으로 복수로 표현된 것이지 세 신격(또는 세 분 하나님들)이 말씀하여 복수로 표현된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 있어서 장신대 김명용교수님, 한기총 이단상담소장이신 통합측 최삼경 목사님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시는 분들은 이곳에서 이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편입지망생의 김명용 교수 삼위일체 비판
번호:793 글쓴이: 00
조회:19 날짜:2001/01/08 09:13
.. 아래 글은 장신 대 토론게시판에 올려진 글입니다.
작성자: 도0석(killjms2@hanmail.net) (211.198.206.156 of Mozilla/4.0 (compatible; MSIE 4.01; Windows 98))
김명용 교수님의 삼위일체 이해에 대해서...
김명용 교수님의 글에 대한 몇가지 의견.
1.저는 장신대학교 신학과에 편입하려고 준비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2.저는 거기에서 좋은 신학을 배우고 싶습니다.
3.그래서 장신대 교수님의 글들은 특히 유념해서 봅니다.
4.이번에 김명용 교수님의 글도 유념해서 읽었습니다..
5.몇가지의 의문이 생겨서 다음과 같은 글들을 씁니다..
6.김명용 교수님의 글의 특징은 일반적인 신학교에서
삼위일체를 잘못 이해하고 가르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7.김명용 교수님의 의견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8.그러나 저의 생각으로는 틀린 것 같습니다..
9.이제부터 그 이유를 저 나름 대로 써 보겠습니다.
10.글의 순서는 김명용 교수님의 글을 요약한 다음 저의 개인적 의견을
쓰는 것입니다.. 다른 내용은 생략하고 성경을 인용한 부분만 썼습니다.
11.김명용 교수님 글 전문은 제일 아래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12.시작하겠습니다..
A. 김명용 교수님의 글 요약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기타 여러 성경구절 >
위 성경에 대한 교수님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해
=> 이 장면에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분 하나님의 모습을 뚜렷이 인식할 수 있다.
김명용 교수님의 글에 대한 원석의 생각
=>마3:16-17절의 구절은 "세 분의 하나님의 모습을 뚜렷히 인식할 수 있다"
라고 쓸 수 없는 구절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만약마 3:16-17절을 문자 그대로 표현되어진 세분의 하나님으로 이해한다면
다시한번 쓰겠습니다..<마3:16-17절의 구절을 문자 그대로 표현되어진 세분의
하나님으로 이해한다면>""하나님은 사람이다"" 이렇게 이해 할 수 도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표현 되기도 했으니까요.
2.제가 1번 처럼 말 할 수 있는 이유는 삼위하나님을 이해할때는 성경전체를
통해서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경 몇 구절을 가지고 삼위 하나님을 이해
해서는 안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은 분명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같은 분이요
셋하나 하나님=하나셋 하나님=삼일 하나님=삼위 일체 하나님으로 표현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표현 되어야만 인간의 구속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인간의 구원과
연결되어져서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을 만족 시킬 수 있습니다.
셋하나하나님=하나셋하나님=삼일하나님=삼위일체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구속과 중요한
관계가 되는 교리입니다..
B.제 2위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김명용 교수님의 이해
=>성부와 성자가 동일하다면 성자께서 성부께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 된다.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기도한다.)
1.김명용 교수님의 글에 대한 원석의 생각
아니요.. 전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닙니다..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되신 하나님께서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확장되도록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2.그렇다면 교수님의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됬을지 저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a본질적으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한분"이다라는 의미를 잘못이해하신것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b예수님은 본질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분이요""를 잘못이해하신듯합니다.)
(1)즉 이땅에 계실때도 인간이 되신 하나님께서 아버지 되신 하나님과 똑 같은 전적인
권능을 가지고 계셨다고 이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되신 하나님은 하늘의
그런 권능 모두는 이땅에 계실 동안에는 스스로 취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즉 인간과 똑 같이 이 땅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의 권능을 모두는 스스로 취하시지
않으셨으니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과 한분이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즉 교수님의 글처럼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기도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는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같은 분이시지만 이 땅에 계실 동안에는 하나님의 권능을
스스로 모두는 취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p.s
1. 글을 더 쓰고 싶으나 시간이 그렇게 되지 않네요...
2. 이 외에 몇가지 더 있으나... 그건은 생략하겠습니다.
3. 삼위 일체*삼일*셋하나*하나셋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다음곽 같은 이유입니다..
(1) 삼위 일체*삼일*셋하나*하나셋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해야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큰 은혜임을 알수 있습니다.
(2) 삼위 일체=삼일*셋하나*하나셋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해야
인간이 되신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4.그리고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전혀 무리가 없는 것입니다...(김명용 교수님은 틀렸다고 하시지만..)
이 글은 장신대 게시판 또는 교수님께 그리고 목회와 신학게시판에
그리고 뉴스엔조이 게시판에 올리겠습니다...
작성자: 김0훈(onech@hanmail.net) (211.221.161.81 of Mozilla/4.0 (compatible; MSIE 5.5; Windows 98))
Re: 김명용 교수님의 삼위일체 이해에 대해서...
어거스틴이 틀릴 수도 있지요
안 그렇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말하는 데 모두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어쨌든 서로 조금 틀리다고 해서 싸우지 맙시다
우리가 뭘 알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그저 보여주시는 만큼 얼핏 얼핏 아는 거지요
삼위일체에 대해선 교회 역사상 두 가지의 커다란 흐름이 있어 왔지요
일신론적인 것, 삼신론적인 것
서구교회를 지배한 건 어거스틴을 위시한 양태론적 일신론이었습니다
그 전통이 그대로 우리나라에도 이어졌구요
그래서,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잘못일 가능성이 커지니까
좀 균형을 맞춰 보자는 것입니다
저것을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으면 이것도 좀 알려고 노력해 봐야죠
그래야 우리가 감히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면서 범할 수 있는 실수를 좀 줄일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시지요
또, 우리는 그 사랑을 세 분 하나님을 통해서 체험하고요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모두모두 사랑하고 또 사랑 넘치는 세상 만들고...
어쨌든,
박카스 병 뚜껑에 담은 바닷물 가지고 우리, 내것이 진짜 바닷물이네 네것은 가짜 바닷물이네 하지 말자구요 우리가 안다면 얼마나 아는 거겠습니까 그저 싸우지 말고 오순도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거 외에...
부족한 사람의 소견이었슴다
작성자: 도0석(killjms2@hanmail.net) (211.194.29.215 of Mozilla/4.0 (compatible; MSIE 4.01; Windows 98))
세분 하나님은 나올 수 없어요..(또 수정했음)
두번째 수정입니다...
수정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세분하나님과 한분 하나님의 차이를 조금더 명확이 구분지었습니다.
2.저가 쓴 글 3인칭 단수라는 말은 취소합니다...
<3인칭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한분 하나님에는 3인칭 단수라는
어절을 쓸 수 없겠네요..>
님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1.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2.물론 교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도 없습니다..
님에 글에 대한 저의 답변입니다.
님의 글
=>어쨌든 서로 조금 틀리다고 해서 싸우지 맙시다
원석 글
=>저기요. 이것은 조금 틀린 정도가 아닙니다...
세분하나님과 한분하나님(1인칭복수)은 엄연히 다릅니다.
도저히 비슷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분하나님은 유일한 참신인 하나님 한분(1인칭복수)과
어떻게 비슷하다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세분 하나님의 정확한 표현은 세분 하나님들입니다.
님 저 말이 맞지요...그렇지요??
세분 하나님이라는 말은 정확히 표현하자면 세분 하나님들입니다...
세분 하나님(들)이라는 말은
성경적으로 전혀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사상입니다..
그 근거를 들수 있는 성경구절도 없습니다....
성경은 오직 한분 하나님(1인칭복수)만을 서술하고 있고
세분 하나님(들)은 성경 어디에도 서술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태복음에서 나오는 성부 하나님과 성령하나님 성자 하나님으로
세례를 주는 장면은 세분 하나님(들)으로 이해 될 수 있는 구절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서는 분명 하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즉 마태복음에서 나타나는 성부*성자*성령하나님도
한분(성부*성자*성령)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맞습니다..
님의 글
=>삼위일체는 교회역사상 일신론적인 것, 삼신론적인 것입니다...
원석의 글
=>일신론 적인것과 삼신론 적인것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고 계신지
몰라서 답변은 달지 않겠습니다..
님의 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시지요
또, 우리는 그 사랑을 세 분 하나님을 통해서 체험하고요
원석의 글
=>님은 삼위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 할 수 있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올바로 이해했다면 세분 하나님(들)이라고 도저히 말 할 수 없습니다..
(윗 글 참조)
그리고 교수님도 삼위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 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그분의 글에 나와 있습니다. 저가 리플도 달았구요....
윗 글을 전제로 몇가지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교수님은 삼위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 그 이유는 삼위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할때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가 동일하다면 성자께서 성부께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 된다.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기도한다.)
이런 내용은 삼위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한다면 절대로 나올 수 가 없는
내용입니다..
a.예를 들자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말과 같은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믿고 이해하고 계신 분들은 a가 틀린것 정도는
알것입니다... 위와 같습니다..
삼위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한다면 교수님의 글처럼
=>성부와 성자가 동일하다면 성자께서 성부께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 된다.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기도한다.)
이런 글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나 올 수 가 없습니다...
위와 같은 글은 마치 a와 같은 글이기 때문입니다...
1.윗글에도 썼지만 교수님께서 왜 이런 글을 쓰셨는지 저 나름대로
추측한 것을 써보았습니다..
(1) 문자 그대로 삼위일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2) 바쁜 도중에 글을 쓰다 보니 깜빡 잊고 실 수 했다.
(3) 열심히 하셨는데 순간적인 실 수로 위와 같은 글이 나왔다.
2.저는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다만 (1)번이 아니였으면
좋겠습니다..
3.님 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삼위일체의 교리는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죽으심과 성령으로 말미암은 신비의 연합으로 새롭게 창조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삼위하나님을 올바로 이해하고 신비의 연합을 이해하면 우리를 한 없는 영광의 빛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빛이 충만함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작성자: 도0석(killjms2@hanmail.net) (211.194.71.22 of Mozilla/4.0 (compatible; MSIE 4.01; Windows 98))
저기여...두분 또는 세분 하나님이란 어절을 왜 쓸 수 없냐면요...
김상훈.. 김소연님...간단하게 쓸게요..
마태복음에서 나오는
성부*성자*성령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제외한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면...
님들과 같이 두분 하나님(들) 또는 세분 하나님(들)이라고 이해되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할때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하나요?
아니잖아요... 하나님께서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할때 이렇게 이해해야한다고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서 인간의
이성이 그렇게 이해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아요...
1.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요...
위 1번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해요..
어케 시작이 없고 끝도 없을 수 있죠?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그리스도인은 이성을 위 말씀에 순종하는 거예요..
즉 ""하나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이시구나.""이렇게요...
마태복음도 위와 같은 이치에요...
성부*성자*성령을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면
성부(한분)성자(두분)성령(세분) 하나님이 되요..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부르 실 때 그렇게 부르라고 허락하신 적이 없어요..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이 부르실때 성부(한분) 성자(한분) 성령(한분)하나님
즉 한분 하나님(1인칭복수)이렇게 부르라고 말씀 하셨다는 거예요...
이해가 되세요??
다시쓰면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부르실때 이런생각을 해요되요..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부를때 세분 하나님으로 불러도 되나요?""
(타락한 인간의 이성으로는 당연히 세분 하나님이지만..)
하고 질문을 한뒤 하나님께서 세분 하나님(들)으로 부르기를 허락하시면
그렇게 불러야 되요... 하나님에 대한 정의는 인간이 타락한 이성으로
하나님을 정의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를 해주셔서 그 말씀 그대로
이해하는 거예요...
그러나
위 질문에 하나님은 자신을 세분 하나님으로 부르기를 허락하신적이 없어요..
절대 없고 성경 어느 구절에도 없어요. 단지 인간의 타락한 이성으로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을 이해하니..성부(한분)성자(두분)성령(세분)이렇게
이해한거예요...
그러면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을 부를때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하나님께 질문을 합시다..
""하나님,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하나님의 대답.
""한분하나님(1인칭복수)""
이제 대답이 된것 같은데요.
김명용 교수 세하나님들 글 비판
번호:584 글쓴이: 00
조회:24 날짜:2000/11/09 01:11
.. 아래 내용은 '복음과 상황'에서 김민우라는 필명으로 장신대 김명용 교수의 세하나님들을 비판한 글을 쓴 것을 보고 어떤 분(Seeungmmshin@aol.com-이메일주소는 원문을 가공한 것임)이 보내 온 것입니다. 보내온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민우님, 제가 영어 Internet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의 어떤 회사는 한글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문서로 글을 보내야 합니다. 지난번 보낸 편지는 하단에 있습니다. 좀 수고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민우님,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 드립니다. Internet을 통해서 삼위일체 토론을 보았습니다. 님은 좋은 뜻을 가지고 계시는 줄로 압니다. 한가지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꼭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김 명용 교수의 글에 대한 한국에서의 반응들을 알고 싶습니다. 이 반응이 한국 교회의 건강 상태를 알려 줄 것입니다.
2)제가 김 교수의 글에 답변을 길게 썼는데 효과 있게 한국에 발표하려면 어느 잡지가 합당할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름, 주소, 전화, 이 메일, 편집장 성함, 기관 이름, 성향 등)
제가 외국에서 삼십여 년 살다가 보니 한국 형편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 교수의 실수는 수정되어야 합니다. 한국 문화는 신학자들이 이런 경우 글을 쓰지 않는 모양입니다. 실력도 문제가 되겠지만, 원수 만들지 말자는 정서가 강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글을 한 번 쓰면 벌떼처럼 감정으로 덤벼드는 것도 피곤한 일입니다. 무모한 일을 부탁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김 교수의 글에 답변으로 쓴 제 글은 제가 20때와 30때 초에 미국에서 알려진 신학대학원에서 교부 신학을 강의하던 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단지 걱정은 한국어 사용이 많이 서툰 점입니다.
수고를 끼치게 되어 죄송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I was very pleased to hear from you.
I have written an article in Korean, arguing against a tritheism of Professor Kim. I believe he was mistaken, academically. What bothers me most is the silence of Korean churches on this issue. I am asking a favor of you and you will see my need explained in the message attached as 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