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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5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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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글5-2
토론쟁점에 대해 여전히 명쾌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진도가 나가면 어려움이 가중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문제제기 된 항목들에 대해 그냥 방치하기도 뭐해서 간략한 답글을 달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광야님 주장) 누가복음16장9절과 관련하여
- (광야님주장)새예루살렘이 처소의 개념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그동안의 논쟁에서 지방교회는 이 새예루살렘이 새하늘과 새땅의 새예루살렘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천년왕국에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⑴ 이 구절에 대한 해석에서 지방교회는 성경 구절을 희생시키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먼저 '영원한'이라는 구절에 대한 부분입니다. 영원한 것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만, 누구나 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과는 상충됩니다.
==답변 및 반박 : 어떤 부분이 성경구절을 희생시킨다는 말씀입니까? 영원한 것은 보상으로 받을 수는 없다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천년왕국 기간에는 “일부만” 보상을 받지만, 천년왕국이 끝 난후의 영원 안에서는 모든 구속된 선민들이 새예루살렘의 완성에 참여한다는 말이 어떻게 무엇이 상충된다는 말씀인가요? 달리기 하는 사람들이 어떤 시간 대에는 소수 잘 뛰는 사람들이 결승점에 도달하지만 결국 나중에 모든 사람들이 결승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말이 상충되는 말입니까? 광야님 말엔 논리의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으십니다.
-(광야님주장) 다음으로 '처소'의 문제입니다. 이는 '처소들'이며, '친구들의 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그들의 집으로 영접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구절은 지방교회가 비유의 내용과 청중을 분리하였을 경우에도, 비유의 내용에 속하지 아니하는 부분입니다.) 지방교회는 주님께서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누구나 다 가는 새 예루살렘에 지혜롭지 못한 청지기는 못가느냐'고 잘못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알고 있는 부분이지만, 어떤 분은 이 구절에 대한 여러 역본의 경우를 올려 주셨습니다. '영원한'이라든가 '처소들'이라든가 하는 말은 새 예루살렘을 증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말들입니다. '기름 백 말'이라든가 '밀 백 석'과는 다릅니다.
⑵ 이 구절에 있어서 지방 교회의 해석이 불분명합니다. 누가복음 15장과 16장 후반부를 고려한 해석을 제시하였음에도 지방교회는 이에 상응하는 해석을 내어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 교회가 위트니스 리의 라이프 스타디를 언급하였기 때문에 저도 그 부분을 고려하여 문제를 다시 제기하였음에도 지방교회는 여기에 상응하는 대답이 없습니다.
==답변 및 반박: 눅 16:9은 광야님이 답변을 하셔야 할 구절입니다. 영원한 처소에 친구들이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 친구들이 자기들에게 복음 전한 사람들을 청지기로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심사)한다는 성경근거가 이 구절 말고 또 어디 있는지 밝혀 보십시오.
광야님은 지금 우리의 거듭난 이후의 생활을 주님자신이 아니라 복음을 우리에게 받은 사람들이 평가한다는 주장을 눅16:9을 근거로 하고 계십니다. 이런 해석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참으로 답답하기만 합니다.
모든 구절들을 정확하게 다 해석하시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시고 (지방)교회측은 자신의 해석과 상응하는 해석을 못 내놓는다고 나무라시니 ...문맥상 불의한 청지기의 복음전파의 내용을 구성하는 눅16:5-7의 기름 백말...밀 백석...등의 정확한 의미를 해석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복음전파 내용에 따라서 청지기 직분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친구들이 판단하신다고 주장하시니 이 부분의 해석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왜 늘 제가 드린 질문은 되묻는 식으로 넘어가시고 답변을 안 하시는지요? 눅16:5-7의 하나 하나의 의미를 꼭 해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름 백말을... 오십이라 쓰라’고 한 말이 복음전파와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광야님 주장) 2. 천년 왕국의 보상 문제와 천년 왕국의 새 예루살렘에 관련하여
⑴ 지방 교회는 주님이 오실 때 보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반드시 상이나 보상을 천년 왕국 시대에만 베푸신다고 고집할 근거는 없을 것입니다.
==반박 및 답변: 주님이 오실 때 보상이 있다는 말을 광야님은 부인하십니까? 누가 주님의 상과 보상을 천년왕국 시대에만 베푸신다고 고집한다는 말인가요? 없는 말을 대상으로 비판을 가하는 광야님의 토론방식은 토로에 혼선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저희는 눅16:9가 말하는 ‘영원한 처소(들)’가 천년왕국에서의 보상이라고만 말했지 보상이 천년왕국기간에만 있다는 주장을 고집한 사실이 없습니다. 핵심을 잘 잡고 토론을 진행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광야님 주장) 특히 누가복음16장9절의 경우가 과연 주님의 재림 시를 말한다고 확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비유 속에서, 주인이 청지기를 불러 그 사무를 박탈한다고 하였을 때, 그 이후에 그는 친구를 사귈 기회가 있었습니다. 과연 주님의 재림시에 그리한다면 언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보상의 시점 문제는 그렇게 쉽게 확정할 것이 아닙니다.
==답변 및 반박: 영원한 처소에 들어가는 것을 평가하는 시점이 언제이냐고 여러 차례 질문드렸지만 광야님은 이에 대해 계속 답변을 하지 않고 계십니다. 광야님 생각에 눅16:2에서 언급한 ‘청지기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고 주인이 그 사무를 박탈하는 시점은 도대체 언제입니까? 무엇이 두려워서 이에 대한 답변을 자구 회피하십니까? 그리고 눅16:9에서 친구들이 영원한 처소로 영접해 드리는 시점은 또 언제입니까?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