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님은 혼동 가운데 계십니다-글쓰는 형식(4-3)
성경진리토론방
, 2002-10-08 , 조회수 (378) , 추천 (0) , 스크랩 (0)
2) 글 쓰는 형식

토론 글을 쓰는 형식도 일정한 룰 가운데 했으면 합니다. 이곳엔 제 3자들도 글을 쓰고 있고 토론 당사자도 여기 저기 산만하게 글을 써버리면 주장 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의 제안입니다. 광야님도 만일 다른 생각이 있으시면 얼마든지 이야기 하시고 서로 조정해 보도록 하지요.


(1) 토론당사자 글은 ‘토론 글1, 2....식으로’ 타이틀과 글의 순서를 표시하기로 하면 어떻습니까?

만일 이에 동의하신다면 광야님의 문제제기와 영원한 처소라는 처음 글 제목 앞에 “토론 글1-1, 토론 글1-2”를 붙여 수정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물론 10/6자로 쓰신 ‘지체님께’도 토론글 2를 붙이시고, 저의 이 글에 대해서 반박하시는 글은 “토론 글3”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제목도 ‘지체님께’처럼 막연한 명칭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요약 반영한 제목을 올리는 것이 더 선명할 것 같습니다.


(2) 주된 토론 글 이외의 글, 지엽적인 항목들에 대한 확인의 글 등등은 별도의 글로 쓸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해당 글 밑에 쓰는 “의견표시란”(comment)을 적극 활용하면 어떻겠습니까? 즉 지켜보는 독자들이 쓰는 공간을 함께 활용하자는 제안입니다.


(3) 윗트니스 리 형제님의 의견을 올려 달라는 주문에 대하여

  물론 정말 몰라서 윗트니스 리 형제님의 의견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올려야 하겠지요. 그러나 광야님은 자신도 라이프 스타디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고, 본인이 (지방)교회 진리를 잘 알고 있다고 본인 입으로 말씀을 하셨음에도 왜 또 이 형제님의 의견을 요구하는지 의아합니다. 그것은 토론의 기본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만일 광야님이 이 형제님의 주장이 자신과 다름을 입증하고 싶으시면 본인이 그 둘을 소개하고 어떻게 다르며 왜 자기 주장이 맞는지를 증명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6 장 자체의 세세한 자구들을 해석하는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님은 이점을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다만 광야님이 눅16:9을 근거로 ‘영원한 처소’가 “들어가는 곳”이고 “물질적인 처소”를 가리키는데 이 영원한 처소가 곧 새 예루살렘임으로 새 예루살렘은 ‘되는 것’뿐만 아니라 ‘들어가는 곳’이라는 논리를 펼치심으로 그 논리를 뒷받침하는 범위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누가복음 16장 해석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러나 광야님은 아래에서 보듯이 “(눅16 장의) 이 단락에서는 그저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 가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들어가는 새 예루살렘“에서 청지기 직분으로 우리를 받아들여주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심으로 스스로 치명적인 모순에 빠지셨습니다.


(광야님 주장)"

... 해석의 이견에 대한 저의 견해를 간단히 다시 정리해 드리죠. 누가복음 16장 9절의 영원한 처소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우리가 믿는이로서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려서 복음을 위해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의한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회계하러 오신다는 말을 들었다면 마땅히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때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의 직분 혹은 사무가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단락에서는 그저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 가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들어가는 새 예루살렘에서 청지기 직분으로 우리를 받아들여주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주체도 이 문맥에서는 주님보다는 친구 즉,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위 광야님의 주장을 요약하면...

1)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도” 영원한 처소에 들어간다.
2) 거듭난 후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지 못했어도” 영원한 처소에 들어간다. 이지요?

  * 그러나 위 두 주장은 설득력도 없고 본문 문맥과도 동 떨어진 엉터리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눅16:9 본문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라고 말합니다. 문맥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귄 결과 영원한 처소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즉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과 '영원한 처소에 들어가는 것'을 연결하는 접속사인 '히나'(2443)는 목적, 한정 또는 결과를 나타내는 ' in order that, so that'의 뜻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본문문맥은 광야님 주장처럼 '친구를 사귀든 안 사귀든 상관없이 다 영원한 처소에 들어간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 엉터리 주장은 광야님 혼자 생각일 뿐입니다.

위 눅 16:9 본문을 “장소에 들어가는 문제”로 해석하려면 일관되게 그렇게 주장하시고, 만일 이것을 “청지기 직분으로 받아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해석하려면 일관되게 그렇게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둘은 하늘과 땅처럼 다른 이야기입니다. 적당히 얼버무려서는 안됩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다른 부분을 아무리 잘 해석하면 무엇합니까? 결정적인 대목인 눅16:9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시고 계시면서....

직접관련이 없어서 세세한 반박을 안 해서 그렇지 광야님의 눅16장 해석은 헛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지난 번에서도 지적했지만 1) 본문에서는 주인의 회계(셈)가 있은 후(2절), 청지기의 불의한 재물로 친구 사귀는 이야기가 나옴(5-7절)에도 광야님은 자신의 고정관념에 따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귄 다음에 회계하는 것으로 이 대목을 풀고 계십니다. 엉터리 본문해석의 한 예입니다.

2) 위 인용문에서도  광야님은 “복음을 위해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의한 청지기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함으로 눅16:1에서 벌써 주인의 재물을 허비함으로 나쁜 소문이 나고  불의한 청지기가 된 그 후  불의한 청지기가 마음을 고쳐먹고(4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을 말하는 본문을  자신의 고정관념을 따라 정 반대로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해석을 자기 마음대로 하시면서 경솔하게 윗트니스 리가 틀렸니 맞느니 하는 것은 “불의 한 것”입니다.

  (광야님이 복음전파를 강조하시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남을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시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복음전파자는 자신을 낮추고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고전9:16).)

그러므로 광야님은 윗트니스 리의 의견을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본인의 성경해석이나 문맥대로 잘 하시기 바랍니다. 정 윗트니스 리의 해석이 궁금하시면 누가복음 라이프 스타디를 가지고 계시다니 궁금한 대목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난 글에서 눅 16장은 믿는 이들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 왕국시대에 그 보상을 얻으라는 취지라는 윗트니스 리 형제님의 해석을 필요한 만큼 올려드렸습니다. 물론 저도 동일한 관점에서 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광야님은 직접 상관이 없는 대목에 대해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시기 전에 이 토론에서 핵심구절인 누가복음 16장 9절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라는 대목이 광야님의 엉터리 주장처럼 진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든 안 사귀든 상관없이 다 영원한 처소에 들어간다”는 말인지를  정신을 차리시고 여러 번 잘 읽어보시기를 정중하게 권해드립니다.


억지로 남을 비판하시려다가 자신이 궁지에 몰리기 보다는 신중하게 말하고 신중하게 표현하시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