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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20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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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삼위일체관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점검해 보는 '리트머스시험지'는 의외로 매우 단순합니다. 그리고 선명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로 그것을 판단합니다.
귀하께서 쓰신 두 가지 중에서 두번째 것이 약간의 논쟁거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또 오해의 소지를 주는것 같은 뉘앙스도 있습니다.
첫번째 것은 안에 예수님이 계심을 확신하느냐는 구원관에서 물으시는 것 같고 두 번째 것은 조금 어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시다 시피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방교회에서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삼위일체의 진리를 너무 정교하게 교리화해서 문제가 될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타당하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성경의말씀을 믿고 받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교리화 할 때 진리의 폭은 좁아 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한번도 인간이 만든 교리처럼 설명한 곳이 없습니다.
삼위일체가 중요하다고 해서 어디도 삼위일체는이런것이다 하면서 교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예정론과 예지론만해도 그렇습니다. 성경에 예정논은 있되 예정논의 교리는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예정논을 신봉하는 어떤 형제가 "난 복음전도가 불필요하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구원받을자를 다예정해 놓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예정논을 신봉하는 형제가 열심히 전도를 합니다. 그래서
그 형제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예정논을 믿으면서 왜 전도 하십니까? 그 분의 말 "내가 전도하는 것도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보다도 교리를 앞세웠기 때문입니다.
구하께서도 두 번째 것은 성경보다 너무 앞서가 논쟁거리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성경적으로 쉽게 생각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 하셨다 영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변화된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면 예수님은 내 안에 들어 오신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예수님이십니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여기엔 귀하가 쓰신 것처럼 어렵게 길게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필요합니다.
귀하께서 그런 논쟁을 하려면 예수님은 영으로만 부활하셨는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는가에서 영으로만 부활했다는 주장이 있을 때 하셨어야 할 내용이라고 사료 되어 집니다.
저는 지방교회에 신론이라고 하는 귀하에 주장에 좀의하해 하고 있습니다. 지방교회의 형제들은 워치만니나 위트니스의 신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일나는 분들이라고 생각 됩니다. 저는 워치만니를 존경합니다. 그는 독립교회와 달비의 영향을 받고 성경의 핵심적인 진리들을 집대성 했습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교과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방교회 형제들은 너무 한 사람을 신봉하는 바람에 위트니스리가 교주가 아닌가 할 정도로 의구심을 가지게 합니다.
만약에 지방교회내에서 성경진리에 뛰어난 어느 한 지도자가 워치맛니나 위트니스리가 말한 교리에서 색깔이 다른 말을 한다면 그리고 성경과 양심의 믿음에 따라서 했다면 그 지도자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도 워치만니나 위트니스리의 말만 가득차 있다면 천주교의 교부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회의 에서의 교리와 다를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루터는 생명을 걸고 천주교의 잘못된 믿음을 오직 성경이라는 주체로 뛰쳐 나왔습니다.
지방교회에서 오직 성경위가 아니라 워치만니나 위느니스리의 교리위에 서 있다면 지방교회는 좋은 점도 있겠지만(그들이 성경대로 믿은 신실한 자였음으로) 심각한 오류에 빠질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 합니다.
교부들의 교리가 다 틀리지 않다는 것을 귀하도 아실것입니다.
천주교는 성경의 무오성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도 믿습니다.
삼위일체도 그들의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 완전한 하나님 이신 예수님도 그들의 것입니다.
그들이 틀린 것도 있습니다.
교황제도
면죄부
연옥
마리아께 기도
그밖의 많은 것들
천주교의 지도자들은 감히 교부들과 교황청에서 선포한 교리들은
거부할 수 없습니다. 성경과 다르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워치만니나 위트니스리는 우리의 형제지 신이 아닙니다.
위트니스리나 또 지방교회의 버금가는 지도자가 나타나
성경과 다른 믿음오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작은 가지들이
숲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지방교회의 형제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를 들어 위트니스리가 워치만니에서는 두두러지게 나타나지 않는 '주의이름을 부름' 같은 것은 교계의 실신한 그리스도인들 까지도 논란의 관심이되고 있습니다. 만일 위트니스리가 성경에 맞지 않는 범주로 몰고간다면(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음) 형제교회들은
누구도 반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방교회들은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에 99%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지방교회의 형제들은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죤 밀턴이나 죤 번연, 쯔윙글리, 칼 바르트, 스폴죤, 허드슨 테릴러, 달비등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로 폭을 넓여야 합니다. 신약의 사본들이 5000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보아도 알듯이 한 사람을 너무 신봉하면 진리의변개가 (그래서 성경의 원본이 없음) 반드시 일어납니다.
지방교회가 이단시비가 자꾸 벌어지는 것은 지방교회에서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지방교회에서도 아시는 대로 구원파들은 지금 구원을 강조하는 침례교 조차도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중요한 구원을 증거하는데 이단으로 몰린것은 자기들만의 구원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모든 교회에 구원이 없다고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지방교회는 스스로 회복교회라고 했습니다. 이 내용은 번번히 다른 교회는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에 속한 지방교회만이 하나님의 이기는 자요 회복교회라고 함으로 이단 시비를 좌초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워치만니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사람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등의 탁월한 교훈과 따름을 오히려 맊고 있습니다.
지방교회는 이렇게 말해야 옳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회복교회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우리 외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종을 통해서 우리와 간은 교회들이 엄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다.
쓰다 보니까 다른데로 흐르게 되었네요 제 말이 너무 주제넘은 말이 되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적었습니다.
되돌아가서 워치만니는 1920년 이후에 활동을 했고 삼위일체는 교부들에 의해서 정리되어져 있습니다. 삼위일체와 마찬가지로 삼일론도 설명하다보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교부들이 정리한 삼위일체와 워치만니(근원대 근원)말일 삼일론을
다릅니까? 같은 것은 무엇이고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공개적으로 질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