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 건너 만나리?
교회들 칼럼
동편 재 , 2014-05-19 , 조회수 (1266) , 추천 (0) , 스크랩 (0)
믿는 이들이 죽음을 요단 강으로 간주하고, 가나안 땅을 하늘 나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개념입니다. 그 곳은 훗날 죽어서 가는 하늘 나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 살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요단강 겅너가 만나리'라는 찬송가 가사는 많은 오해를 가져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거쳐 요단강을 건너 얻은 땅은 1)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가는 장소이며, 2) 그들이 살기 위해 의지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3) 하나님의 원수들을 패배시킬 수 있는 장소이며, 4) 하나님께서 그분의 왕국을 세우실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며, 5) 하나님께서 그분이 표현을 위해 거처를 소유하실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 땅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졌고,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이 건축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땅이었습니다. 이것은 훗날 죽어서 가는 하늘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고, 옛적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예표로 이루어졌고, 오늘날은 믿는 이들을 통해 실제로 이루어지는 이야깁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땅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1:12)는 바울의 말은, 성도들에게 할당된 몫(a share of the allotted portion of the saints)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바울은 좋은 땅인 가나안 땅을 배경으로 이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2장 6절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좋은 땅에서 살면서 그 땅의 풍성한 산출물을 누렸듯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풍성(엡3:8)을 누릴 수 있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고 살고 행동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땅은 그리스도입니다. 잘못된 해석이 잘못된 오해를 가져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살고, 의지하고, 원수를 멸하는 땅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다른 모든 왕들을 죽였던 바로 그 장소요, 다윗과 솔로몬이 건축했던 하나님의 성전을 위한 바로 그 장소인, 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안식을 누리는 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영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