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교회들 칼럼
동편 재 , 2014-05-12 , 조회수 (1400) , 추천 (0) , 스크랩 (0)
누가복음 17장에는 언뜻 이해하기에 가혹한 말씀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온 종을 쉬지도 못하게 하고, 피곤한데도 불구할텐데 다시 주인의 음식을 준비하게 할 뿐 아니라, 그 주인이 먹고 마시는 동안에도 수종들게 하고, 거기에 더하여 사례도 없다고 말합니다(7-9절)

그뿐 입니까? 이 모든 것을 다 행한 후에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라고 말하라고 합니다(10절). 만약 요즘 같은 때 이와 같이 아래사람을 부리면,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욱하고 언성을 높이고 때려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왜 이렇게 엄격하신 말을 했을까요? 우리는 자주 조금만 성과가 있으면 '나는 무엇무엇을 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는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이 못하는 것을 나는 해냈다'라는 마음을 가지곤 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마음에 그것을 회상하며 잠잘 때나 밥 먹을 때 조차도 기뻐하곤 합니다.

주인은 '네가 넓은 땅에 많은 씨를 심고 많은 양떼를 치는 수고를 하였으니 나를 시중들 필요가 없다. 너는 가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이 말은 '이제 너는 수고를 했으니 나를 섬기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종의 일과 수고가 주님에 대한 섬김을 빼앗아가게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주님 자신을 섬기는 것'이 밭을 경작하고 양을 먹이는 모든 일보다도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고생하며 주를 위하여 많은 일을 했다고 하여 먼저 자신부터 만족을 얻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 최소한 조금이라도 누려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분은 주님이시고 나는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만지는 말씀입니다. 교만하지 않는 이유는 얼마나 많은 일을 했다하더라도 자신은 무익한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밭을 갈거나 양을 칠 수 있다고 교만해지고 자만해지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사탄을 올무에 빠뜨린 죄는 교만이었습니다(사12:12-14)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배고픈 채로 주님 앞에서 시중들며 그분이 먼저 누리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뿐 아니라 우리는 겸손히 주님께 '주님, 저는 무익한 노예입니다. 저는 단지 밭을 갈고 양을 치며 약간의 일을 했을 뿐입니다. 주님, 이것은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 앞에 조금이라도 성과(열매)가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합니다. '이제는 조금쯤 섬김을 받아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다 교만에 떨어진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이기 때문입니다(잠16:18).

설령 모든 것을 했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쓸모없는 종일 뿐이며, 작은 자 중의 작은 자일 뿐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밭과 양이 아니라, 세상과 심지어 교회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 목적은 '주님 자신'입니다. 

많은 열매, 큰 교회, 엄청난 명예를 얻었을지라도 주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경계하시는 이러한 말씀은 이와 같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눅17:7)을 대상으로 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