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현실, 잠재된 삼신론` -두번째 글-
성경진리토론방
, 2001-11-28 , 조회수 (720) , 추천 (0) , 스크랩 (0)

(지방)교회를 바로 알자 - 두번째 글

토론자: 김성일(광주교회생활, 대학 4학년)
양제욱(순복음 목포온누리중앙교회, 목사재직중)


슬픈 현실 - 잠재된 삼신론

서 문

먼저 저의 진리 논쟁 제의를 수락한 양제욱 형제님과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 준 한상규 형제님에게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러한 기회를 예비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기도할 때의 저의 느낌은 이런 진리 토론을 통하여 다만 이단이다, 아니다의 시시비비를 넘어서 보석과 같은 진리가 더 드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로 인해 우리 사랑스럽고 또한 놀라우신 주님을 더 알아감으로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부분은 추가하여 신학이 믿는이의 체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학을 믿는이들의 생명의 체험과 별개로 두고 단지 학문으로 보고 공부할 사람만 해야 하는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신학은 결코 우리의 체험과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속주이시며 구원자이신 주님을 아는 모든 믿는이들은 자녀된 도리로서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해야 하며 그 안에서 밝혀지는 하나님에 속한 모든 항목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딤전 2:4).
문체는 "­다'체를 쓰지 않고, 연배의 차이도 있음으로 '-니다'체를 사용하였습니다.

한국교회의 백년이 넘는 긴 역사동안 이 땅에 주님께서 부어주신 축복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최근 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인구의 4분의 1인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조사 방법과 이 수치가 정확한지의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이는 양적으로 한국 기독교가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루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러한 양적 발전과 더불어 많은 불협화음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주로 지엽적인 신학적 성경 해석의 차이와 혹은 소위 "집안단속"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많은 이단적인 단체가 드러나기도 하였지만 정말 신실한 믿는이들도 그 안에 포함되어 원치 않는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종교개혁당시도 마찬가지였으며, 특별히 한국에서는 한국 사람 특유의 기질이 발휘되어 더 심각했는데 예를 들면 과거에 장로교가 순복음측을 이단이라고 한 것이나, 선교단체인 UBF등을 약간의 실행상의 차이로(그것이 결정적으로 이단으로 판정하기에는 불충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단이란 소리를 한 경우가 그러하고 또는 새로운 움직임을 신흥종교로 분류하여 사람들에게 선입관을 주게 하는 경우가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그 파장은 상당한 것이었는데 분별력이 없이 다만 단체의 결정사항을 전부로 여기고 그것을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 선한 피해자가 나오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어왔습니다. 제가 속해있는 (지방)교회는 과거에 어떤 악한 말들이 나오게 될 때 전혀 근거가 없는 거짓에 속한 말들이었으므로 관여하지 않고 다만 십자가아래 머물렀으나, 그것이 정도가 지나쳐 사람들에게 유포되고 그것이 사실인양 사람들에게 악한 선입관을 주게되는 것뿐만 아니라 진리를 가리우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믿음을 위한 선한 싸움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들은 이기는 자 홈페이지를 참고하시면 좋습니다(http://homepages.ihug.co.nz/~youme). 그것이 이번 토론에서 동일하게 적용되게 되었는데 양제욱 형제님이 어떠한 연구도 없이 마치 당연하게 써도 되는 자료로 알고 보고서를 게시판에 올리게 되었고 슬프게도 이 진리를 위한 싸움은 이제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를 포함한 (지방)교회 지체들은 결코 논쟁하기만을 좋아하거나 싸움을 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둡니다. 양제욱 형제님께서 조금만 더 신중하게 자료를 구했었더라면 처음에 언급하신대로 "(지방)교회는 성경적이다"라고 제시하셨을 것이고 이렇게 까지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먼저 양제욱 형제님의 글을 읽으면서 드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사랑 안에서 서술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저는 양제욱님이 왜 이미 예장통합측 최삼경 목사와의 토론에서 충분히 반박되거나 해명된 주제들을 다시 끄집어 내어 중복 토론을 하려고 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마 양제욱님은 이 토론을 시작할 때까지도 자신이 첫 번째 글의 토대로 삼은 「통합측 이단연구자료」가 문제가 되어 최목사와 (지방)교회측이 3년 동안이나 상세한 토론을 한 사실을 몰랐거나 우리 측의 글을 전혀 잃지 않고 토론의 결과도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최 목사나 양 제욱님이 (지방)교회의 신론의 문제점으로 삼은 세 가지는 다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인데 「...셋이 한 영 안에 있다(16쪽), 「수박비유」는 물론이고 그 책자에는 있지도 않은 것인데 최 목사가 잘못 인용했던 「하나님의 경륜 110쪽 내용」이란 것까지 그대로 옮겨와서 문제삼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 이 토론장은 하나님의 진리를 다루는 엄숙한 장이며 단순하게 익명으로 말하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서로의 개인 신상도 밝힌만큼 책임감있는 충분한 연구가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도 연구가 미흡한 상태에서 몇 마디의 단편적인 것을 인용한 불충분한 연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연구하여 결론을 내린 것처럼 비성경적이니, 양태론이니, 교묘한 위장전술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토론자로서의 무책임한 언사가 아닐까요? 양제욱님이 문제삼은 모든 사항들에 대해 이미 충분하게 반박되었으므로 양측의 토론내용을 책자화한 '누가 이단인가'라는 책을 읽어보시라고 한마디로 반박하고 싶습니다. 독자 분들도 공정한 판단을 위해 꼭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관찰방의 교회와 신앙에서 있었던 토론 모음집 "누가 이단인가?" 무료 배포 (2000-10-23)를 참고하세요)

다시 언급하지만 정말 아쉬운 부분은 정확하지 않은 인용을 하신 부분입니다. 저는 양제욱형제님이 지적하셨던 부분을 책을 찾아가며 다 보았습니다. 그러나 인용한 부분『윗트니스 리는 '삼일 하나님'이란 하나님은 성육신의 과정을 거치는 단계를 통해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다"라고 말한다(하나님의 경륜, p.110). 이런 망발이 어디 있는가? 』결코 하나님의 경륜 110쪽에 그러한 단락이 없습니다. 저는 혹시나 잘못 타이핑했나 싶어 11쪽도 찾아보았고 그 좌우 페이지도 보았지만 그러한 구절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서슴없이 망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논리입니까? 저는 있지도 않은 말일 뿐 아니라 거기에다 그것을 부담스런 말을 사용하여 부각시켜서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이것은 양제욱 형제님이 말씀하셨던 것과는 다르게 진지하게 이 토론에 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하고 형제님의 글을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을 것임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사용했던 거짓 자료를 그냥 이용하지 마시고 직접 책을 보고 인용하여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두 번째는 왜 계속해서 이미 삼신론자로 판명된 최삼경 목사의 관점을 지지하는지 아쉽습니다. 같은 교단내에서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최삼경 목사의 관점을 변호하는 그 자체가 우선 약점을 하나 가지고 토론에 들어가시는 것인데 최삼경목사의 관점을 지지한 것은 여전히 최삼경목사에게 던져진 개신교문제연구소의 질문과 한국교회보수협의회의 질문이 형제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관찰방에 10월 23일자 박영준님이 올리신 글을 참고하십시오)

세 번째로 아쉬운 부분은 기반이 되는 성경말씀이 적다는 것입니다.양제욱님은 분명 필자의 생각을 성경을 통해서 제시한다고 하셨지만 우리의 유일한 판정 기준인 성경의 말씀을 인용한 것은 단지 4구절이고 그것도 삼위일체에 관련된 부분은 3구절이고 내용도 한 분 하나님과 변치않는 하나님에 관련된 구절밖에 없었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사상이 위의 단지 몇 구절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설득력은 논리정연한 사상의 전개가 아니라 말씀에 바탕을 둔 언어일 것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많은 이단 연구가들이 (지방)교회의 비성경적인 부분을 알렸다고 하셨는데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단연구가들은 지금까지 (지방)교회에 대한 오해와 거짓정보를 일반성도들에게 알렸습니다 이 점은 우리측이 각 종 오해와 거짓정보에 대해 반박한 글을 모아 놓은 http://homepages.ihug.co.nz/~youme'변호와 확증' 내용을 참고해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러한 문장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지방)교회에 대해 악한 선입관을 갖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지금 저의 마음은 정말 슬픕니다. 이런 말을 해야하는 저의 마음은 슬픕니다. 같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동일한 생명을 나눈 지체들에게 진리의 오해를 받는다는 것은 어떠한 슬픔인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Ⅰ. (지방)교회를 양태론이라고 말한 것에 관한 변호

이제 저는 양제욱형제님의 글에 대해 저의 입장을 변호할 것이며(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미 「누가 이단인가」에서 전부 다루어진 내용이어서 다시 다루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면에서 반론을 통해 양제욱형제님이 변형된 삼신론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진리를 위해 밝힐 것이며 또한 몇 가지 질문도 하겠습니다.

A. 수박 비유

수박비유에 관련된 또 하나의 훌륭한 답변으로 아래와 같은 이용선형제님의 10월 25일자 「양제욱님의 첫글에 대한 부분적인 답변」을 참조하여 주십시오. 『"수박 비유"는 … "하나님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시나 한 분"이신 진리를 설명하려고 그 비유를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인 사람이 되시고(요1:1, 14), 그 육신된 마지막 아담이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는 진리를 설명하려고 그 비유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 요한복음 1장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셔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낡은 생각처럼 삼분의 일 하나님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신격(Godhead- 개역 성경에는 '신성'이나 원문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습니다(골2:9). 하나님이 사람이 되실 때 성령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되었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와 함께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의 '아버지의 독생자'에서 '의'는 헬라어로 '파라-para'로써 ∼로부터 ∼와 함께, 영어로는 from with의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고(요14:10),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죽고 부활하셔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는 생명 주는 영이 되셨으며(고전15:45) 성령을 제자들 안으로 불어넣으셔서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셨습니다(요20:22, 7:36-39). … 윗트니스 리가 우리에게 수박 비유를 든 것은 이와 같은 신성한 계시를 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하늘에 계시지만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십니다. … 우리 안에 생명으로 와 계신 면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 삼위일체 진리 전체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가 아닙니다. 이 점을 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윗트니스 리가 이 비유만으로 하나님을 가르쳤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책에서 삼위일체 진리를 명확하고 균형있게 다루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영원히 동시 공존하시고 영원히 상호 내재하신다는 진리를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삼일성(삼위일체)의 본질적인 면과 경륜적인 면도 구분하여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수박비유는 경륜적인 삼위일체의 방면이며, 수박, 수박조각, 수박즙을 말할 때 각각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아들과 성령님이 함께 상호내재하시는 아버지, 아버지와 성령이 상호내재하시는 아들, 아버지와 아들이 상호내재 하시는 성령의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을 양제욱님같이 아버지만, 아들만, 성령님만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세 하나님들을 각각 떨어진 분으로 보는 삼신론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간접적인 증거입니다.

경륜적인 면과 본질적인 면은 박영준형제님이 일목 요연하게 잘 설명하셨으므로 관찰방의『저 역시 동의합니다. 그리고 김흥태님께 약간의 원론적인 답변(2000-10-26)』을 꼭 참고해 주십시오. 그 부분을 저의 글의 일부로 포함하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김흥태형제님도 이 부분에서 의문을 가지셨던 것 같은데)하나님의 경륜적인 역사의 각 단계 안에서 그분의 영원한 동시 존재와 상호 내재 안에 계신 삼일성의 본질적 성품은 그대로 유지 된다는 것입니다. 신격으로서의 셋은 그 셋이 상호 내재하면서 동시 존재하기 때문에 구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거듭 말씀드리지만 수박비유에 대해서는 최삼경 목사와의 토론시 충분히 반박되었음으로 '누가 이단인가' 책자의 해당부분을 반드시 읽어보시고 그래도 의문이 있으시면 그때 더 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B.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이다」(하나님의 경륜 16p)를 인용한 부분
이 부분은 「누가 이단인가」에서 충분하게 다루어진 주제이므로 반복해서 다룰 필요를 못 느끼며 본 글을 올린 후 「누가 이단인가」에서 양태론 논쟁에 관련된 부분을 따로 발췌 게재하도록 하겠습니다.

C. 하나님의 경륜 110쪽에서 인용했다는 내용은 처음 언급한 것처럼 본래 책에 없는 것임으로 반론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실수를 삼가시고 직접 원문을 확인하시고 비판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Ⅲ. 반론 및 질문 - 양제욱형제님에게 잠재되어져 있는 삼신론적인 관념에 대하여

이제 변호에 이어 양제욱형제님이 제시한 글 중에서 보여지는 변형된 삼신론적인 관점에 대해서 반론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양제욱형제님을 이단으로 몰아붙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위해 분명하게 할 것은 해야함으로 쓰는 것이니 형제님은 분명한 답변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A. 반론 - 부부론과 가족론
양제욱형제님은 반복해서 삼위의 상호내재 개념이 생략된 독립된 인격체, 개체로서의 셋을 유난히 강조함으로 삼신론에 가까운 사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양제욱형제님은 세 위격간의 상호내재를 인정하지 않으십니까? 인정하신다면 뒤에서 다시 구체적으로 묻겠지만 왜 가족론 혹은 부부론으로 예화를 드셨는지도 성경 말씀을 들어 설명하여 주십시오. 양제욱 형제님이 소개하신 가족론 예화는 아버지, 아들, 어머니가 셋으로 명확히 구별된다는 점은 분명하게 전달하셨지만 그 세 식구가 '상호내재' 하지는 못함으로 각각 분리된 세 하나님들을 나타내는 예화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양제욱형제님은 세 위격간의 상호내재를 부인하고 독립된 개체로서의 세 인격체를 보는 것이므로 삼신론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양제욱 형제님은 참으로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의 관계가 한 가족인 아버지, 어머니, 아들의 관계처럼 상호내재관계는 없이 각각 분리된 셋으로 믿으십니까? 이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B. 질문

1. 형제님은 경륜적인 삼위일체를 인정하시는 가요? 인정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분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셨으며 믿는이들은 어떤 경로로 주님을 영접하는지 설명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이 성육신 하신 것에 대해서 단지 아버지는 분리되어 하늘에 남아 계시고 아들만 육신을 입었다는 관점을 지니고 계십니까? 즉 성육신 하신 분은 2격인 아들만이시고 아버지와 성령님은 분리되어 하늘에 남아 계십니까?

3. 형제님은 세 위격간의 상호내재를 인정하십니까? 인정하신다면 왜 가족론 혹은 부부론으로 예화를 드셨는지도 성경 말씀을 들어 설명하여 주십시오.

4. 어떻게 한 영 안에 세 인격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저에게 물으셨던 것은 세 인격이 세 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로 물어보신 것입니까?

5. 예수님의 지상 사역시 아버지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사셨음을 인정하십니까?

6. 만일 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이 인간가족의 구성원처럼 분리시키는 것이 성경적인 삼위일체라면 이사야 9장 6절의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셨는데 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말씀과 고전15장 45절의 「마지막 아담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나니」라는 말씀과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라는 성경말씀도 양제욱 형제님 기준에는 양태론 이단이 될 것입니다. 성경본문을 이단으로 만드는 양 형제님의 기준이 정당한 것입니까?

형제님의 삼위일체관을 확인하기 위해 여쭈어 본 것이니 피하지 마시고 답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Ⅳ. 성경적 삼위일체관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이번 토론의 자리를 통해서 단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넘어서서 부족하게 나마 진리를 제시하고 싶은 것이 저의 마음입니다. 먼저 이 토론은 삼위일체에 관한 것으로서 그에 파생된 이단인 삼신론과 삼위 양식론 혹은 양태론이 중점이므로 독자들을 위해서 양제욱형제님이 간단하게 언급했으므로 조금 더 정의하겠습니다. 더불어 이런 기회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삼일 하나님에 관하여 더 분명한 관점을 갖기를 원합니다.

A. 성경적 삼위일체론
1. 하나님은 유일한 분이십니다.(시 86:10, 사 45:5, 엡 4:6, 딤전 2:5, 고전 8:4)

2. 하나님은 삼일으로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십니다(마 28:19).

3. 셋 모두 하나님이십니다. (벧전 1:2, 엡 1:17, 히 1:8, 요 1:1, 롬 9:5, 행 5:3, 4)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몇 분의 하나님이 계십니까? 오직 한 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모두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오직 한 하나님만이 계실 수 있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다만 「나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4. 셋 모두 영원하십니다(사 9:6, 히 1:12, 7:3, 히 9:14).

5. 셋 모두 동시에 존재하십니다(요 14:16-17, 엡 3:14-17, 고후 13:13, 고전 12:4-6).

6. 셋 모두 우리 안에 계십니다(엡 4:6, 요 14:20, 골 1:27, 고후 13:5, 요 14:17). 아버지가 우리 안에 계시고, 아들이 우리 안에 계시며, 성령 또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이 아주 분명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체험을 따르면 몇 분이 우리 안에 계십니까? 하나입니까, 셋입니까? 하나입니다! 문자로는 셋 인 것 같지만, 우리의 체험으로는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이 성경적인 삼위일체론이며 여기에 두 극단으로 말미암은 이단이 있는데 하나는 삼위 양식론이고 하나는 삼신론입니다.

B. 삼위 양식론 혹은 양태론
삼위 일체에 대한 삼위 양식론적 관념에 따르면 아버지, 아들, 영은 동등하지 않고 영원히 공존하지도 않으며, 다만 하나님이 세 번 연속적으로 나타나신 것이거나 세 가지의 일시적인 행동 양식일 뿐입니다. 사실상 일원론의 한 형태인 삼위 양식론은 그분 자신의 속 존재가 삼일(三一)이신 것을 부인합니다. 삼위 양식론은 그리스도의 존재 혹은 나타남의 한 양식으로 간주합니다.

C. 삼신론
삼신론은 삼위 양식론에 비해서는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삼신론에 따르면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셋으로 분리된 하나님입니다. 신격의 위격에 대한 구별을 넘어서 분리가 강조될 때, 그 결과는 언제나 삼신론이 될 것입니다. 이용선형제님이 인용하셨던 것 같은데 『위격(pers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관하여 달라스 신학교 창설자 중 하나이자 대단히 존경받는 성경학자인 그리피스 토마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언어가 그러하듯이, 이 용어도 부적절하다는, 심지어 명백한 오류라는 비난을 받기 쉽다. 확실히 그것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삼신론에 빠지게 된다. 신격을 구분하는 의미로 그 용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그것은 분리함과 같은 의미의 구분이 아닌, 본질적으로 상호 내재함 또는 포함함과 연관됨 구분을 의미한다.』(The Principles of Theology, 30p)


윗트니스 리 형제님은 아래와 같이 양 극단의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잡힌 성경적인 삼위일체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서 나는 삼일 하나님에 관해 많은 메시지들을 전해 왔다. 만일 그 메시지들 안에 있는 어떤 문장들을 그 문맥으로부터 끄집어 낸다면, 내가 삼위 양식론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또 어떤 문장들을 그 문맥으로부터 밖으로 끄집어 낸다면, 마치 내가 삼신론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물론, 나는 삼위 양식론도 삼신론도 가르치지 않는다. 신성한 삼일성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우두머리인 어거스틴은 어떤 때는 삼위 양식론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또 어떤 때는 삼신론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 삼위 양식론자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동시존재와 상호내재를 믿지 않는다. 그들과는 달리 우리는 신격의 셋의 동시존재와 상호내재를 믿는다. 그러나 신성한 경륜에 있어서 그 세 분은 연속적인 세 단계 안에서 제각기 역사하시며 존재하신다. 그러나 그분들의 경륜적인 역사와 나타나심에 있어서조차도 여전히 그 셋은 본질에 있어서 동시 존재하며 상호내재 하신다.』(신약의 결론, 하나님, 38p)

영원히 구별되고 상호내재하는 삼위를 믿는 사람이 양태론자가 될 수 있나요?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삼신론이란 이단사상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Ⅴ. 신학과 믿는이의 체험과의 관계 - 신학, 아니 진리를 알아야 할 필요성
어쩌면 그분의 구원을 누리고 있는 지금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아는 것이 왜 필요한지 의아해 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삼위일체론에 대해서는 어렵기 때문에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대부분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우리의 한계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한계를 말한 것이지 연구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이 주신 이해로 그 안의 감추어진 보화를 캐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넘어서는 것은 도를 지나친 것이나, 연구하지 않고 안주하는 것은 게으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는 것입니다. 위의 삼일성의 경륜적인 부분을 참고하신다면 하나님이 왜 삼일이셔야 했는가를 이해하고 주님께 찬송과 경배를 돌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시기 위하여 삼일이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누림과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양제욱형제님. 이 모든 사항을 잘 읽어보시고 성령의 평강의 인도를 따라 비성경적이라고 말하셨던 것을 사과하여 주세요. 그리고 앞으로 더 나은 교제로 함께 하기 원합니다. 다음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김성일(광주교회)


[출처: http://holybible.han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