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를 바로알자(토론) -첫번째 글-
성경진리토론방
, 2001-11-28 , 조회수 (919) , 추천 (0) , 스크랩 (0)

(지방)교회를 바로알자 -토론-
- 왜 지방교회가 비성경적인가 -
(첫 번째 글)

-들어가는 말-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 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성경은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요3:16)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 전체가 이 내용만으로 씌여지지 않았다. 영생을 얻는 과정도 중요하기 때문에 성경66권이 모두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안의 비성경적인 단체(내용의 전개에 따라 될수 있으면 이단이라는 단어를 절제하겠다)들을 살펴보면 '예수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라는 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다 '예수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단이라는 치명적인 사형선고를 받으며 비판의 소리를 듣고 있다. '예수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이 말이 이단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을 만한 잘못된 말인가. 아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분명히 영생을 얻는다. 그런데 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일까. 그 이유는 그들의 가르침의 과정.... 중간 내용에 거짓을 섞어 놓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전자제품을 하나 만드는데 있어서 마지막으로 완결되어 지는 부분이 박스포장이다. 그런데 아무리 박스포장을 아름답게 했다할지라도 내용물인 제품에서 하자가 있으면 그것은 하나의 완성된 제품이 될 수 없다. 무슨 말인가. 아름다운 포장에만 관심이 있고 즉 핵심 목표만 옳게 설정해 놓고 중간 중간 내용에 비성경적 발언 내용이 들어가 있다면 그것은 진리될 수 없다는 필자의 생각이다.

우연히 이곳 아볼로성경연구를 알게 되어 글을 읽다가 통합측 이단연구보고서를 퍼옮겨 올린게 발단이 되어 이 토론에 까지 오게 되었다.(이 글을 처음 대하시는 분들은 이 사이트에 올려진 김성일님과 필자의 글을 참조하시면 이해가 빠르리라 본다)
솔직히 필자는 (지방)교회에 대해서 깊은 성경적 연구를 해 본적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단지 통합측의 연구보소서를 가지고 있었던게 전부였다. 통합측에서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신뢰하며 믿는 것이 기존교회의 입장일 것이고-필자주- 또한 현재 필자의 입장임을 먼저 밝힌다. 토론을 앞두고 시간을 내어서 워치만니와 윗트니스리의 글을 연구하게 되었다. 사실 이 두사람의 책이 필자에겐 몇권밖에 소유하고 있지 않는다. 신학교때 비교종교학을 공부할 때 사 두었던 소수의 책 뿐이었다. 그래서 기독서점에 둘러보면서 이 두사람의 책을 구하려 했으나 워치만니의 글은 S 사에서 출판을 해서 구할 수가 있었지만 윗트니스리의 글은 한권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렵사리 H 서원에서 윗트니스리의 글을 취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몇권의 책을 소유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안에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이 책들을 다 소화해 내겠는가. 할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 하는 생각으로 여러곳의 정보를 통하여 객관적인 입장으로 성경적으로 비춰가며 (지방)교회가 왜 비성경적인가를 연구하게 되었다.
첫 워치만니의 책을 앞에 놓고 글을 읽기 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했다. "하나님... 지금 이 시간에 저의 솔직한 심정은 이 글을 비판하기 위한 의도가 있어서 글을 대할려고 하니 그러한 저의 생각을 먼저 지워 주시고 비판할 것을 찾으려는 입장에서 하나님의 심정으로 바른 성경적 조명이 비춰지게 하소서...."
필자는 만일 (지방)교회 측의 주장하는 내용들이 성경적이라고 판단되어 진다면 그날(20일 첫 글 올리는 날)에 글의 제목을 바꿀 생각이었다. --- "지방교회는 성경적이다"---- 라고.......
그러나 오늘 -왜 지방교회가 비성경적인가- 라는 글 제목이 올라오게 되었다.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비판할 대상이 아닌 성경의 조명하에 냉철히 연구하며 여러 방면으로 정보를 얻는 동안 오히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지방)교회의 신앙과 신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워치만니와 윗트니스리의 신학적인 사상이 가히 감탄할 정도로 뛰어난 비성경적인 이단사상이 성경적인 것같이 교묘히 위장 전술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얘기하면 성경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아니면 그들의 비성경적인 부분을 찾아 내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하여 많은 이단 연구가들이 (지방)교회의 비성경적인 부분을 잘 찾아내어 교계에 폭로한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필자는 정말 부족한 사람이다. 겸손한 것처럼 보일려고 포장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부족 투성이 이다.
감히 부족한 사람이 이런 지면을 통하여 그것도 다른것이 아닌 성경적인 부분을 논한다는 것에 두렵고 떨림을 고백한다.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한다.

귀하께서 이런 말을 했던것을 상기해본다.

"....다짜고짜 저를 비롯한 형제들을 이단으로 매도하시고, 이단에 속한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계도할 상대이기보다는 척결해야할 사람들이다"라는 말씀에는 너무나도 서글픈 마음이 이루말할 수 없었으며..."

물론 서글프고 분한 심정을 이해한다. 귀하가 소속된 곳이 비성경적인 집단이라고 매도한 필자가 얼마나 미웠겠는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계도할 상대이기보다는 척결의 상대로 보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필자가 말한 척결할 대상이란 처음부터 살인하고 그 속에 진리가 없는 또한 거짓말장이인 마귀에게 난자를 말한다.(요 8:44) 또한 처음부터 살인하고 거짓말하는 마귀지 미혹된 하나님의 백성은 아닌 것이다. 귀하도 미혹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으며 참된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아올것을 기대하며 꼭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귀하가 쓰고 있는 잘못되어진 안경을 빨리 벗어 던지고 성경을 면밀히 검토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연구하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필자는 조심스럽게 걱정을 해본다. 왜일까?.... 필자의 주관적인 체험담이다.
비성경적인 곳에 몸담고 있는 젊은이들의 심정을 너무도 잘안다. 그곳에 있으면 그들은 성경을 진실되게 연구하는 자세를 서서히 버리게 된다. 왜냐면 어느 한 순간에 성경이 한눈에 들어와 버렸다는 이상한 착각속에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자신들만의 성경정복을 이룬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속해있는 곳의 변호를 타오르는 젊은 열정을 섞어가며 성토하는 것이다. 일반 기존교회에서 헛된 세월을 보냈다는 것에 분노하며 보상이라도 받을 듯 교회를 공격해 온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비성경적인 가르침에 자신의 생각이 단순화 되어버린것을 모른체 말이다. 귀하는 그런류의 사람이 아닐것이라 사료된다.

아뭏든 이번 토론을 통하여 귀하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길 바란다. 그리고 귀하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증인이 되어지길 원한다. 필자가 비록 미약하지만 연구하며 제시한 토론의 내용들과 여러 사람들이 연구한 글들을 잘 읽으면서 성령님의 참된 인도가 있을때는 그것을 거부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지방)교회에 대해서 바로 깨닫기를 바란다. 필자 또한 반대로 이 부분에 대해 확실히 약속을 한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젊은 시절 한창 하나님의 일을 왕성히 할 수 있을때 하나님의 일을 멋있게 일구어 내길 간구한다. 헛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속해 있는 곳의 정당성을 외치고 있다보면 어느날 갑자기 일할수 없는 밤이 온다.(요9:4) 젊음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언젠가 말했듯이 필자는 화술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속에 있는 말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게 서글플 정도로 안타깝다.

필자를 위해 기도를 빠뜨리지 않겠다는 귀하의 글에 감동이 되어 가슴이 마구 뛰었다. 물론 필자도 귀하를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다.
"...형제님의 기도제목인 "맹인선교"를 저의 기도제목으로도 삼아 이를 위해 기도하겠어요. 형제님...."
지금도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너무나 부끄럽고 이기적인 내 자신이 비춰지면서 귀하에게 미안한 맘이 들어서이다. 왜.... 귀하는 잠시 마귀의 미혹된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필자주) 내 자신이 인정하면서도 귀하에게 한번도 형제님 이라는 말을 써 본적이 없기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한 형제임이 분명이 맞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내 감정과 현실은 다른것......(귀하는 비성경적인 곳에 몸담고 있다-필자주-) 현실은 부정할 수 없는것(필자주)......
부디 좋은 열매가 있어지길 성삼위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리고 이 토론을 위해 개인 토론방을 따로 개설해 준 한상규 형제님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또한 이 토론을 관심있어 하시는 형제,자매님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길 기도한다.
그럼 신론 부분에 대해서 첫 글을 시작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지방교회가 왜 비성경적인가

신론부분에서 삼위일체론에 대해 먼저 생각한다.
통합측의 연구와 많은 사람들이 연구해 놓은 것들과 중복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함에 있어서는 최대한 필자의 생각을 성경을 통해서 제시할 것이다.
신론의 신일합일주의에 대한 것은 준비가 덜 되었다. 최삼경 목사와 지방측의 논쟁속에서 공통분모적 부분이 필자가 이곳에 많이 인용될것 같아 될 수 있으면 두 측의 논쟁의 공통분모적 토론들을 피할 려고 하는데 한계를 느꼈다. 어려움이 많았다. 실은 20일까지 글을 못올린것이 신일합일주의에 대한것 때문이었다. 자료의 부족과 여러가지 여건 때문에 한계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두번째 글에서 이것을 다루기로 하겠다. 오늘은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해보자.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다.

필자가 가장 중점을 두고 다루고 싶은 것이 삼위일체론이다. (지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은 분명한 양태론적 삼위일체이다. 교회사에 행해졌던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지만 생략하겠다. (예.. 사벨리우스.파트리파시안주의.터툴리안,존아스쿠나게스... 등)
앞전에 얘기했던대로 윗트니스리의 신학적인 사상이 가히 감탄할 정도로 뛰어난 비성경적인 이단사상이, 성경적인 것같이 교묘히 위장 전술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 바로 이 삼위일체론에서도 적나라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먼저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한분이라는 것은 누구나 얘기한다. 성부는 몇분인가?... 물론 한분이다. 성자와 성령도 각각 한분이다. 그런데 성부는 성자와 성령인가? 라고 물으면 일반 기존 교회에서는 '아니다' 라고 확실히 대답한다. 왜냐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독립된 인격체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방교회에서는 애매모호한 대답이 십중팔구 나온다. 왜 일까? 그것은 윗트니스리의 교묘한 전술이 잘 먹혀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답은 이렇게 나온다. "성부는 성자와 성령인가?"라고 물으면 "아니다"라고 우리와 같은 대답을 하면서 이런 말이 뒤에 나온다. "성부는 성자와 성령이 아니지만(필자주)...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하나님의 경륜」, p.16)으로 세 인격이 한 영안에 있는 '삼일(三一)하나님'이 되었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정리를 해보자. 지방교회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 인격으로 구별되지만 한 영으로서 한 영안에 셋이 있다고 말한다.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한 영안에 세 인격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인격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 정리를 해보면. 인격은 지정의가 있고 또한 인격과 인격만이 서로의 의 사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때 분명히 성부에게 하신것이다. 인격자대 인격자로서의 대화이신 것이다.
양식론자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한 본체( Nature)로 묘사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하나님의 세가지 측면(aspests)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양식론자가 삼위(three Persons)를 믿는다고 말할지라도 그는 단지 위(Person)라는 말을 재 정의한 것이며 순수한 성경적 삼위일체보다 '경륜적인'(economic) 삼위일체를 신앙하고 있는 것이다.(현대종교 1992.10월호)
분명히 아버지는 아들에게 2인칭 대명사 '너(YOU)를 사용하셨다.(눅3:22) 인격대 인격으로서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윗트니스 리는 '삼일 하나님'이란 하나님은 성육신의 과정을 거치는 단계를 통해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다"라고 말한다(하나님의 경륜, p.110). 이런 망발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미 완성되어진 완전한 분이시다. 그런분이 어떻게 과정을 거치는 단계를 통해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될 수 있겠는가. 성육신 이전 이미 하나님은 전능자 이셨고, 완전한 하나님으로 계셨던 것이다. 이런 예를 들때 (지방)교회의 삼위일체관은 비성경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삼위일체관을 정리해 보겠다. 윗트니스 리는 수박비유로 삼위일체를 말한다. 즉 하나님은 수박 덩어리요, 아들은 조각난 수박 조각이요, 마지막으로 성령은 우리 몸에 들어가는 수박즙이라는 것이다(이것에 대해서는 뒤쪽에서 비판하겠다)
먼저 삼위일체의 뜻 부터 알고 넘어가자. 라틴어의 파생어로 "트리니티"이며 "하나안에 각각셋"이란 뜻이다. 이것을 우리가 논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론으로 접목시킬때 하나가 무엇인가. '하나님'이라는 복합적인 단일로서 '하나' 이신 분이시다. '각각셋'이란 뜻은 독립적인 인격체로서의 '각각' 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이라는 '하나'로서는 분리될 수 없지만 개체로서는 독립적으로 분리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라는 '하나' 안에 '성부.성자,성령' 이라는 각각의 개체가 독립적 인격(지,정,의)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성경에서 가장 가까이 비교될수 있는 비유를 들어보자.
창2:24 을 보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여기서 주목해야 될 단어가 '한몸'에 '한'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에하드'로 '하나'라는 뜻이다.
풀어 보겠다. 남자와 여자라는 독립된 인격체가 각각 있다. 그들은 결혼을 하였다.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여기서 한몸이라는 것은 '부부' 라는 본체로 보면 된다. 본체 즉 한몸(부부)은 '하나(에하드)'로서 분리 분리될 수 없지만 개체로서는 독립적인 인격, 즉 남,여 로 분리 된다는 것이다. 분리된 인격체이지만 그들은 한몸(에하드)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부(본체)로서는 하나이지만 남,여(개체)로서는 분리된 것이다. . 더 쉽게 가정으로 예를 들어 보고 접목시켜 삼위일체론을 비교하겠다.

가) A가정(본체)이 있다. 그 가정안에는 아버지,어머니,아들(각각 독립된 인격체 즉 개체로서 셋이 있다)
하나(에하드)의 가정(본체)으로서는 분리되지 않고 지,정.의,가 있는 인격체로서 아버지,어머니,아들 로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분리되어 있지만 그 셋은 A가정 이라는 본체안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제 하나님의 삼위일체로 비교해 보자. 가)와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쉬우리라 본다.
나) 하나님(본체)이 있다. 그 하나님 안에는 성부,성자,성령(각각 독립된 인격체 즉 개체로서 셋이 있다)
하나(에하드)의 하나님(본체)으로서는 분리되지 않고 지,정,의,가 있는 인격체로서 성부,성자,성령으 로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분리되어 있지만 그 셋은 하나님 이라는 본체안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분 하나님이 아니다. 쉽게 얘기해서 가)로 적용을 한다면 아버지,어머니,아들이 셋이 있다고 해서 세가정 이라고 말하지 않는것 같이 성부,성자,성령이 셋이지만 세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오직 한가정이고 .... 오직 하나님은 한분일 뿐이다.
성경으로 확인해 보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6:4)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엘로힘(복수)이시며 오직 "하나"(에하드-복합적단일)이신 분이십니다.
그럼 윗트니스 리가 수박비유로 삼위일체를 말했던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
윗트니스 리는 수박비유로 삼위일체를 말한다. 즉 하나님은 수박 덩어리요, 아들은 조각난 수박 조각이요, 마지막으로 성령은 우리 몸에 들어가는 수박즙이라는 것이다. 무서운 말이다.
이런 설명은 개체 인격이나 독립성을 파괴하는 말이다. 독립적인 인격(지,정,의)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비유로 들어 얘기를 했다고 할지라도 그 비유는 적절치 못한 것이다. 이 비유를 옮긴다면 십자가에서 성부,성령이 함께 못박히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왜냐면 이 수박비유는 독립성이 파괴되어 있기 때문에 함께 행동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즉 조각난 수박으로 있을때에는 수박 덩어리로서의 독립성이 상실되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쉽게 예를 들어 귀신론의 베뢰아측의 삼위일체론을 거론해 보자.
"집에서는 아버지요 학교에서는 교수요 베뢰아에서는 장로인 것처럼 같은 사람이 장소에 따라 인식이 다른데 이것이 삼위일체라는 것이다(현대종교 1986,10월호 p.94 김기동씨 주장:필자주) 이것은 수박비유와 상통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한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라 하겠다.
만약 이런 비유를 든다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것은 자신 안에 있는 아버지께 기도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베뢰아에서 말하는 아버지로서 만약 병원에 입원을 했다면 교수도, 장로도 함께 병원에 있게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이라 한다. 몇가지를 쉽게 들어보자
가)머리가 셋이며 몸이 하나
나)태양은 하나인데 열,빛,속도의 비유
다)클로바와 같이 잎이 셋이며 몸이 하나
라)삼각형의 세 꼭지가 있으나 중심이 하나
위의 비유가 전부 비성경적인 삼위일체론이다.
윗트니스리와 지방교회는 이러한 양태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 윗트니스리는 하나님의 경륜에서 "우리는 주님이 아들이시며 또한 아버지라 불리우심을 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이 성령이라고 읽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그리스도께서 또한 성령도 되심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원천으로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표현으로서 하나님은 아들이시다. 전달로서 그분은 성령이시다. 아버지는 원천이며 아들은 표현이다. 그리고 성령은 전달이며 교통이다. 이것이 삼일 하나님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분명히 비성경적인 발언이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다.(히9:13) 아버지가 원천이며 표현으로서 아들, 전달로서 성령으로 표현하는 것이 삼일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분명하게 비성경적인 발언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말은 한 인격으로 세부분을 나타내는 양태론적 삼위일체이다. 즉 성부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릴때 표현으로 오셔서 성부가 성자의 모습으로 달리시고 죽으시고 또한 그일들을 전달하는 전달자로 다시 성부가 성령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삼위일체론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잘못되어지면 우리의 구원론까지 빗나가 사망의 늪으로 빠질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귀하에게 질문을 한가지 하겠다. 위의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성경적이라고 보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발생된다.
성부는 예수님이다. 고로 성부는 성령님이다. 귀하의 답변을 듣고 싶다.

맺는 말

사실 얼마되지 않는 이 글을 쓰기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사실 글 쓰는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데 책을 읽는 시간 때문에 곤욕이다)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첩첩으로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미비 투성이다. 그리고 전달받는 김성일님에게 바르게 이해될 수 있도록 전달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해를 구하며 천천히 읽어 주었으면 한다. 다음번 글에는 정말 최선을 다하여 연구하며 보다 새로운 것을 위해 노력하겠다.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도 안다. 김성일님도 학교생활 때문에 매우 힘들 것이라 사료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의 공통점이라는 정상에서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 해주었으면 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명기 6:4 )

양 제욱 (온누리중앙교회)


[출처: http://holybible.hanm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