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12년 장로들과 책임형제들을 위한 국제훈련 메시지에 대한 '아침부흥을 위한 거룩한 말씀'을 평소보다 잘
누렸습니다. 틈틈히 카카오톡과 스토리를 통해 친구맺은 지체분들께 누린 부담등을 아래와 같이 요약해서
보내드렸습니다. 각지 교회에서 생활하시는 형제.자매님들에게 오랫동안 카톡으로 성심껏 보내드려 나름 좋은 호응을
얻었기에 보람을 느꼈는데,
최근 모집회소에서는 누군가 제게 받은 내용을 복사해서 무기명으로 지체분들께 발송을 한것으로 인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원작자로서 내용의 문제성을 들어 봉사하시는 형제님들이 연락을
취해와서 나름 부담을 가지고 공유하려던 마음이 조금 위축되더군요.
물론 나의 부담이 다른 분들에게 똑같은 감흥과 관점을 갖을 순 없지만, 최소한 빛가운데 함께 나아가
봉사자들로서 주님앞에 더욱 정결하게 서기를 바라는 마음 만큼은 충분히 전달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생각, 형제가 빛비춤 받았으면 본인에게 적용하지 다른 이에게 적용함으로 지체들로 하여금
의문부호를 갖게 만들었다고 책망을 받게 되더군요. 당연 저는 빛가운데 너무도 큰 도움을 얻었기에 담대히
그 말씀을 오랫동안 같이 생활했던 모집회소 지체분들이었기에 공유키를 원했고 상당수 지체들께서 틈새시간 누림에
도움이 되었다고 많은 격려를 받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보낸 내용으로 마치 말씀의 당사자로 몰리며 지적받는 느낌이었다는 불쾌감을 어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지극히 아침부흥책자의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하며 조금더 쉽게 구체화 시켰을 뿐
특정인을 거론하거나 특정사실을 언급하진 않고 어느 누구도 해당될 수 있는 원론적인 경계의 말로
함께 깨어있기를 바라며 쓴 글이었답니다.
그래도 이곳의 형제.자매님들께서 아래 내용을 받았을 때 느끼시는
제 부족과 불균형에 도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자나 카톡으로 주셔도 감사합니다. 010-8382-10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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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그 사역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 곧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
(엡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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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회복의 일은 주님의 경륜의 일, 곧 그리스도의 몸의 일이다. 이러한 이상은 반드시 우리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이상이 되어야 하고, 그 일을 해야 한다.
말로는 몸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단지 한 집회소나 한 지방교회의 일만 관심하고 돌보는 것을 분별해 내야 한다. 그것은 몸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한 곳 일수록 유일한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체하려는 군주가 있다.
즉 군주 같은 봉사자가 있다면 빛 가운데 물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성도들이 온전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는 「그 사역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역대로 그 사역의 일을 빙자한 「개인의 사역」이 몸의 건축을 심각하게 훼손시켜 왔다.
심지어 성도들을 온전케 한다는 명분으로 몸의 느낌을 무시하며 성도들의 기능을 대체하는 집회를 강화하는 역주행을 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은사로 교만해진 그가 사역의 흐름보다 개인의 왕국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에 무감각 하면 엉뚱한 동역을 하게 된다.
교회 안에서는 세상과 달리, 일보다 사람을 중요시 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얻고자 일을 하시고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특히 사역의 흐름에 투명하고 절대적으로 서서 본을 보이는 사람을 찾고 계시기 때문이다.
(2012봄 장로.책임형제들 국제훈련 M8 아침부흥후)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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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 (마 7:17)
"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히 있으시기를 ???아멘." (엡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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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사람인가가 우리의 열매를 결정한다. 아무리 연기를 하여도 자신과 성도들은 물론 하나님을 속일 수 없으므로 열매가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우리의 천연적 본능은 가려운 귀(욕망)를 잘 긁어주는 은사 있는 사람들의 말 잔치에 초점 맞추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교회건축을 위하는지, 허물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채 옛길로 내려가게 된다.
그것들은 죄와 연관되는데, 특별히 주님의 일꾼들은 특별한 죄들을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과 주권에 대하여 득죄케 된다는 것이다.
이 죄들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한 자들의 죄로써 '성소에 대한 죄'라고 불린다.
이것은 그의 육체와 자아의 야심이, 시작이신 하나님의 뜻과, 추진능력이신 하나님을 대체하고, 결과는 자신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 이러한 탈취가 교회안에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키게 된다.
(2012봄 장로.책임형제들 국제훈련 M8 아침부흥)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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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우리는 모든 일에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역자들로 추천합니다. 곧 우리는 많은 인내를 하고 환난과 궁핍과 곤경에 처하고 " (고후 6: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받는 나의 고난을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웁니다. " (골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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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님께서는 생활과 일에 있어서 차이가 없으셨다. 즉 그분의 생활은 곧 사역이었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의 생활도 사역에 부합되는 생활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 세계나 세속적인 세계에서는 물론 우리 안에서 조차도 사람의 존재보다는 사람이 하는 일에 더 관심을 집중한다. 즉 드러나지 않는 곳에 숨겨진 존재보다는 드러난 일이나 사역만 주목할 뿐이다.
바울이 본을 보였듯 뛰어난 사역자라면 '뛰어난 생활' 을 살아내야 한다. 많은 시간을 강단에 서고, 자칭 사역자라 하지만 돈과 명예를 이기지 못하고 구설수에 오르는 '형편없는 생활'을 사는 봉사자도 있다.
하나님은 일보다 우리의 존재를 더 관심하시고 평가하시기 때문에, 새 언약의 사역자들인 우리들은 어떤 대우와 환경도 이기는, 성숙한 생명으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살고 일해야 한다. 자신의 존재를 참되게 언급할때 분을 못 이기는 사람은 분별해야 한다
이를 검증하는 길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예비 하셨는데, 곧 그분의 몸의 산출과 건축을 위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이다. 그것은 종교적 환영과 은사를 인정을 받는 복음집회나, 가르치는 활동에만, 관심을 갖는 생활과는 거리가 있다. 즉 참된 교회건축은 그것에 있지 않다.
(2012봄 장로.책임형제 국제훈련 M8 아침부흥)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