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성장이란 무엇인가
생명
Eugene , 2012-06-04 , 조회수 (7567) , 추천 (0) , 스크랩 (2)

이제 우리는 생명의 인식에 관한 열 두번째 큰 요점인 「생명의 성장이란 무엇인가」를 보기로 하자. 생명에 대하여 한 걸음 전진된 인식을 가지려면 반드시 생명의 성장이 무엇인가를 또한 알아야 한다. 많은 형제 자매들이 주님을 향한 열성이 뜨거우며 그들이 드린 대가도 적다고 말할 수 없지만 참된 생명의 성장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잘못된 관점과 추구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러므로 그들 안에서 참된 생명의 성장이 십분 제한을 받는다. 이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제 우리는 생명의 길에서 정확한 인식과 정당한 추구를 가질 수 있도록 시간을 드려 생명의 성장이 무엇인가를 전적으로 보기로 한다.

 

생명의 성장이 무엇인가를 보기 전에, 그 반대로 무엇이 생명의 성장이 아닌가를 보기로 한다. 이것은 우리의 인식을 더 깊이 있게 하며 정확하게 한다.


Ⅰ. 생명의 성장은 행위의 개선이 아님

 

행위의 개선은 바로 사람의 행위를 나쁜 데에서 좋은 데로, 악한 것에서 선한 것으로 고치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악을 뉘우쳐 올바르게 되거나 악을 제하여 선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에 교만했던 사람이 이제 겸손해지고, 항상 남을 미워하던 사람이 남을 사랑하게 되고, 전에 조급해하며 쉽게 화를 내던 사람이 이제 성품이 완만하고 조급하지 않게 고쳐지는 것 등을 행위의 개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의 행위가 개선되는 것이 생명의 성장인가? 아니다.

 

왜 생명의 성장은 행위의 개선이 아니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행위와 생명은 절대적으로 다른 두 한계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악이 생명 밖에 있는 것이듯 선도 생명 밖에 있는 것이다. 악이 생명이 아니듯이 선도 생명이 아니다. 선과 악은 성질이 다른 것이지만 다 같은 한계에 속한 것이고 생명 밖의 것이기 때문에 모두 생명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선과 악은 두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한 그루의 나무이다. 생명은 다른 그루의 나무이며 다른 한계에 속한 것이며 다른 왕국에 속한 것이다. 생명과 선악(善惡)은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의 결심과 노력으로 행위를 상당히 개선했더라도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극히 어리고 약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의 개선이 완전히 생명 밖에 있고, 행위에 속한 것이고 생명에 속한 것이 아니며, 또한 그가 개선한 것이 그의 생명의 성장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장은 행위의 개선이 아니다.


Ⅱ. 생명의 성장은 경건의 표현이 아님

 

경건의 표현이란 무엇인가? 경건의 표현은 행위의 개선과는 다르다. 행위의 개선은 사람에 대한 것이고 사람 앞에서 전보다 행위가 좋아지는 것이다. 경건의 표현은 하나님을 향한 것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며 경건한 태도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행위의 개선이나 경건의 표현이나 다 생명의 성장이 아니다.

 

어떤 믿는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며 진지하고 행위나 행동을 가볍게 하지 않고 방종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것들이 생명의 자람은 아니다. 그들은 다만 하나님을 높은 곳에 계신 분으로만 보고 존경하며 두려워 해야 할 하나님으로만 보기 때문에 경외하는 맘이 생긴 것이고 경건의 표현을 갖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 안에 거하시고 사람의 생명이 되시며 이 생명의 법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람 속에서 사람의 하나님이 되시는가에 대하여 조금도 알지 못하며 체험이 없다. 그들에게 경건의 표현이 있지만 그 표현은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의 성장으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그들 안에 있는 생명의 성장의 표현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장은 경건의 표현도 아니다.


Ⅲ. 생명의 성장은 열심 있는 봉사가 아님

 

열심 있는 봉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믿는이가 본래는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하고 아주 냉담했다가 이제 열심을 내고 필사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원래 집회를 자주 참석하지 않다가 이제 집회마다 참석하고, 원래 교회를 관심하지 않다가 이제 교회의 각종 봉사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열심 있는 봉사는 주님을 향한 믿는이들의 불탐과 주님을 섬기는 일에 부지런함을 나타내고 또 그것들은 항상 사람들이 칭찬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열심에는 사람의 흥분과 변덕스러움과 흥미가 섞여져 있을 경우가 많다. 또한 이러한 봉사는 사람의 패기와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고, 사람을 하나님과 더 깊이 연합되게 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더우기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열심 있는 봉사도 생명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생명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역시 생명의 성장이 아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구원받기 전에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을 볼 수 있다(행 22:3). 그때 그는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했지만 밖에서 자기의 흥분과 능력에 의해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생명과 조금도 관계되지 않을 수 있으며 생명의 상태를 조금도 표명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장은 열심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Ⅳ. 생명의 성장은 지식의 증가가 아님

 

믿는이가 더 많은 말씀을 듣고 더 많은 진리를 깨닫고 더 많은 성경을 이해하고 더 많은 영적 명사를 아는 것 등의 영적 지식도 일종의 성장이지만 생명의 성장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지식의 증가는 다만 그의 생각을 더 통달하도록 진보되게 하고 그의 머리에 더 많은 이해를 갖게 하거나 더욱 이해를 잘 하게 할 뿐, 그로 하여금 생명 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인식과 체험에서 자라도록 성령이 그의 안에서 더 큰 계시를 갖게 하거나 생명이 그의 안에서 더 많은 지위를 얻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의 증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케 할 뿐(고전 8:1)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며(고전 13:2) 생명의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장은 지식의 증가도 아니다.


Ⅴ. 생명의 성장은 풍성한 은사가 아님

 

믿는이가 말씀을 전하거나 병을 치료하거나 방언을 할 수 있는 등의 영적인 은사가 나타나는 것도 상당히 귀하지만 역시 생명의 성장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은사들은 단지 성령의 귀한 능력이 그 사람 위에 더욱 임함으로 있는 것일 뿐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자라고 성숙함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한면으로 성령에게 사용되어 밖으로 더 많은 은사를 나타내어도 성령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을 그의 안에 더 많이 조성하게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은사가 많이 나타나는 것도 생명의 성장이 아니다.

 

고린도의 믿는이들은 구변과 지식에 풍족하므로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지만(고전 1:5,7) 생명에 있어서는 여전히 아주 어렸고 육체에 속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였다(고전 3:1). 이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성장은 은사가 많이 증가하는 것도 아님을 보여 준다.


Ⅵ. 생명의 성장은 능력의 증가가 아님

 

믿는이가 하나님을 전보다 더 능력 있게 섬기고 말씀 전하는 것이나 간증하는 것이 전보다 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전보다 더 지혜스럽게 교회를 다스리고 사물을 처리하는 것 등은 다 능력의 증가이지만 여전히 생명의 성장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증가된 능력은 성령이 그에게 준, 밖에서 온 능력일 뿐, 성령이 그의 안에서 생명을 조성하여 그의 영을 통해 그의 안에서 나타난 생명의 능력이 아니기 때문에 생명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생명에 속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능력의 증가 역시 생명의 자람이 아니다.

 

누가복음 9장은 초기에 주님을 따랐던 열 두 제자들이 모든 귀신을 제어했고 각종 병을 치료하는 능력과 권능을 주님으로부터 얻었지만 그 당시에 그들의 영적 생명의 상태가 아주 어렸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것은 능력의 증가가 꼭 생명의 성장이 아님을 충분히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상의 여섯 가지 부정적인 요점에서 볼 때, 생명의 자람은 우리의 행위가 좋게 개선되거나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표현이 있거나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열심 있는 봉사나 영적인 지식의 증가나 우리 밖의 은사가 많이 나타나는 것이나 우리의 일하는 능력이 증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은 다 생명의 성장이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것들을 생명의 성장의 원칙으로 삼는다. 대개 사람들은 믿는이의 행위의 어떠함과 경건의 어떠함과 열심과 지식과 은사와 능력의 어떠함으로 그 사람의 생명이 자랐는가의 여부를 결정한다. 이러한 관념은 정확하지 않다. 노란 구리(銅)는 황금을 매우 닮았지만 황금이 아니다. 이와같이 이 여섯 가지 요점 중에는 다소 생명의 성장과 같은 것들이 있으나 생명의 성장은 아니다. 물론 참된 생명의 성장에는 대개 이 여섯 가지 표현들이 있다. 그러나 이 여섯 가지 요점만으로 생명의 성장을 측량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그럼 생명의 성장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을 우리는 다시 정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Ⅰ. 생명의 성장은 하나님의 성분의 증가임

 

하나님의 성분의 증가는 곧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성분이 되도록 우리 안에 더욱 조화되며 우리에게 얻은 바 되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이 곧 하나님 자신이며 생명을 체험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임을 말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장은 곧 우리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채워지도록(엡 3:19) 하나님의 본성의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완전히 형성되기까지 하나님의 성분이 우리 안에서 증가하는 것이다.


Ⅱ. 생명의 성장은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의 증가임

 

생명은 하나님 자신이지만 우리의 생명으로 오신 하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한다. 우리 각 사람이 거듭날 때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다시 한번 탄생하여 우리의 생명이 되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얻었을 때에는 이 생명이 아직 어리고 성숙하지 못했다. 이것은 곧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이 아직 어리고 적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추구하여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더 많이 살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얻을 때,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은 우리 안에서 점점 증가하며 자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자람이다. 이 생명은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므로 이 생명의 성장은 곧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이 증가하는 것이다.


Ⅲ. 생명의 성장은 성령의 지위의 확장임

 

우리는 생명이 다만 하나님과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성령임을 말한 적이 있다. 생명의 체험은 곧 성령을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명의 자람은 곧 성령이 우리 안에서 더 많은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의 성령의 운행하심을 좇고, 성령이 우리 안에서 기름바름으로 있는 가르침을 순종할 때 성령은 우리 안에서 더욱 깊고 넓게 위치를 확장하며 우리 안에서 생명이 더욱 많이 자라게 된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장은 곧 성령의 지위가 우리 안에서 확장되는 것이다.


Ⅳ. 생명의 성장은 사람의 성분이 감소되는 것임

 

앞의 세 가지 요점은, 믿는 사람 속에 하나님의 성분이 증가하고 그리스도의 신장의 분량이 증가하고 자라며 성령의 지위가 확장되었을 때 곧 그의 생명이 성장된 것임을 말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하나님 편에서 말한 것이다. 이제 다시 우리 편에서 보기로 하자.

 

첫째로 생명의 성장은 사람의 성분이 감소되는 것이다. 사람의 성분이 감소되는 것은 사람 속의 아담의 옛 창조의 성분이 감소되는 것으로서, 사람의 냄새가 감소되고 하나님의 냄새가 증가하는 것이다. 어떤 형제는 아주 열심이 있고 어느 자매는 매우 온유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생명이 자란 것 같지만 모두가 사람의 성분과 냄새일 뿐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분을 만지거나 하나님의 냄새를 맛보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느 형제나 자매의 생명이 자랐는가의 여부를 보려면 다만 그의 밖의 행위가 어떠하며 경건함과 열심이 어떠하며 그의 지식과 은사와 능력이 어떠한지를 보아서는 안 된다. 반드시 그런 것들 속에 하나님의 성분이 증가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성분이 여전히 많이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사람의 성분의 감소가 곧 하나님의 성분의 증가이다.

 

믿는이에게 생명 안에서의 참된 성장이 있다면 그의 모든 말과 행동과 생활과 일들 모두가 당신으로 하여금 그가 자신을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존하며 자신의 총명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음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사람의 냄새가 적은 반면에 하나님의 냄새가 많아진다. 즉 사람의 성분이 감소되고 하나님의 성분이 증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장은 하나님의 성분의 증가일 뿐 아니라 사람의 성분의 감소이기도 하다.

 

이 점은 상당히 중요하지만, 형제 자매들이 인식하기에 쉽지 않다. 십여 년 동안 말씀의 사역으로 주님을 섬겨 온 우리들도 이 점을 형제 자매들 안에 넣어 줄 수 없었다. 어떤 때에는 우리의 말을 수긍하면서도 형제 자매들이 실행할 때는 여전히 행위의 개선과 열심으로 봉사하는 것 등을 생명의 성장의 표준으로 삼는다.

 

한번은 어떤 지방에 갔었는데 그 지방 교회의 몇 책임 형제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지방의 어느 자매가 말하는 것이나 걷는 것이 다 확실하고 고요하고 온유하며 참으로 신령하고 생명이 충만하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그들에게, 만일 그런 것이 신령함과 생명이라면 천주교 예배당 안의 마리아상이 더 온유하고 고요하기 때문에 그 자매보다 더 신령하고 생명이 충만한 것이리라고 말했다. 그녀의 그 고요함과 온유함에는 사람의 냄새가 충만하기 때문에 다 사람의 성분이며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믿는이의 생명이 어떠한가를 단정하려면 다만 그의 밖의 표현에 의할 것이 아니라 그가 표현해 낸 것이 어떤 냄새와 성분인가를 만져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냄새인가, 사람의 냄새인가? 하나님의 성분인가, 사람의 성분인가? 그것을 만져야 한다. 많은 때 우리의 보는 눈은 정확하지 않지만 냄새는 항상 정확하다. 당신이 어떤 옷을 아주 깨끗하게 보았겠지만 냄새를 맡아보면 비로소 더러운 냄새가 가득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 속의 생명의 상태를 판정하려면 차(茶)를 맛보는 것과같이 그 냄새를 맛보아야 한다.


Ⅴ. 생명의 성장은 천연적인 생명의 파쇄임

 

믿는이의 천연적인 생명의 파쇄가 곧 그의 생명이 자랐다는 증거이다. 천연적인 생명의 파쇄란 곧 우리의 천연적인 능력과 재간과 보는 눈과 방법이 다 성령과 십자가에 의해 처리받아 파쇄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형제는 본래 그의 행함과 행동, 심지어 주님을 위하여 일하고 교회를 다스리는 것들도 모두 자신의 천연적인 능력과 재간과 안목과 방법을 의지한다. 모든 것을 자신의 능력과 재간을 의뢰하고 자신의 안목과 방법에 의존한다. 후에 십자가의 처리를 통과하고 환경에서의 성령의 징계를 받아 그의 천연적인 생명이 어느 정도 파쇄되었기 때문에 다시는 자신의 능력과 재간과 안목과 방법을 신뢰하여 사역하거나 일을 처리하지 않게 된다. 천연적인 생명이 이렇게 파쇄된 사람은 다시는 그의 천연적인 생명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며 그의 천연적인 생명을 의존하여 살지 않고 계속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생명을 의존하여 사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이러므로 그 안에서 생명이 자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장은 곧 천연적인 생명의 파쇄이다.


Ⅵ. 생명의 성장은 혼 각 부분이 정복당하는 것임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인인가를 말할 때에는 육체의 못 박혀 죽음을 주의해야 하고, 생명의 성장이 무엇인가를 말할 때에는 혼이 정복당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생명의 성장은 적극적인 면에서 성령의 지위의 확장이지만, 소극적인 면에서는 혼 각 부분이 정복당하는 것이다.

 

천연적인 생명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다 혼을 의존하여 산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혼 안에는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세 부분이 있다. 그러므로 혼에 의해 산다는 것은 곧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지에 의해 산다는 것이다. 사람의 혼은 특별히 강하고 두드러져 사람은 그 부분에 의해 살기 마련이다. 일을 만날 때에도 반드시 그 부분으로 대응하게 된다.

 

주님을 잘 아는 어느 형제는, 사람이 걷다가 부주의하여 벽에 부딪힐 때 항상 코가 먼저 벽에 부딪히는 것처럼 몸의 특별히 돌출한 부분이 먼저 벽에 부딪힌다고 말했다. 우리 혼의 상태도 이와 같다. 생각이 특별히 강한 사람은 일에 부딪힐 때 반드시 생각이 먼저 오고, 감정이 특별히 풍성한 사람은 일에 부딪힐 때 항상 감정이 먼저 움직이고, 의지가 특별히 강한 사람은 일에 부딪힐 때 반드시 의지가 앞장설 것이다.

 

십자가의 처리를 충분히 거친 사람은 혼의 각 부분이 정복당하여 그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깨져 정복되므로 전과같이 두드러지지 않게 된다. 일에 부딪힐 때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사용할까 두려워하게 되며 생각이 먼저 나오지 않고 영이 먼저 나오며, 감정이 먼저 움직이지 않고 영이 먼저 움직이게 되며, 의지가 앞장서지 않고 영이 앞장선다. 이것은 바로 혼으로 하여금 앞장서지 않게 하고 영으로 하여금 앞장서게 하는 것이며, 혼에 의해 살지 않고 영에 의해 사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생명 안에서 자란 사람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성장은 혼의 각 부분이 정복당하는 것이다.

 

앞에서 생명의 성장의 열 두 가지 요점을 본 우리는 참된 생명의 성장은 우리 편에서는 감소되고 파쇄되고 정복당함이요, 하나님 편에서는 증가되고 자라고 확장됨임을 알았을 것이다. 이것들은 생명의 성장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인식이며, 우리가 장차 언급해야 할 영적 체험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것들에 대해 철저한 이해와 정확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위트니스 리
[생명의 인식, "생명의 성장이란 무엇인가", 한국복음서원]


사랑과기쁨
2012-06-04 10:17:04   추천
아멘!
참된 생명이 무엇인지 다시일깨워주신
주님을 찬양 합니다

신성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으니
정상적으로 자라는것이 생명의특성

날마다 순간마다 돌이키며
나를 잃어버리고
영으로 돌이키길 원합니다

이러한 신선한 생명의 글들을
보고 누리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2012-08-31 20:51:02   추천
귀한 자료에 감사드립니다. 담아 갑니다.^^
통영교회
2015-08-06 23:41:33   추천
결론은 생명의 성장을 위해 먹고 마시는 길밖에 없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