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의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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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gene , 2012-05-26 , 조회수 (2719) , 추천 (0) , 스크랩 (0)

세상과 구분되는 것에 관하여 성경 안에 상당히 많은 명령이 있고 구약에도 상당히 많은 본과 가르침이 있다. 예를들어, 바벨론과 소돔과 갈대아 우르와 애굽은 다 세상의 예표들로서 우리에게 세상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애굽은 세상적인 쾌락을 대표하고 갈대아 우르는 세상적인 종교를 애표하며 바벨론은 세상의 혼란을 대표하고 소돔은 세상의 죄악을 대표한다. 사람은 누구나 애굽에서 나와야 하고 또한 아브라함과 같이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야 한다. 롯은 소돔으로 갔고 이스라엘 나라는 바벨론으로 타락했다. 우리는 다 이런 데서 나와야 한다. 성경은 이 네 곳으로 세상을 대표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세상에서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I.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것으로 예표됨

 

A. 구속의 결과는 나오는 것임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구출하셨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와 애굽땅의 모든 장자들을 치려고 할 때에 문설주에 피가 발라져 있는 것을 보고 멸망케 하는 사자는 지나갔다. 만일 문설주에 피가 없으면 그 집의 장자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문제는 문이 좋은가 나쁜가에 있지 않고 문설주 좌우 인방에 남과 다른 것이 있는가의 여부에 달렸다. 문제는 집에 좋은 것이 있는가의 여부나 그 집의 장자가 효자인가 불효자인가에 있지 않고 피에 있다. 멸망과 구원의 차이는 당신의 가정의 가르침이나 당신의 됨됨이의 어떠함에 있지 않고 당신이 피를 영접했는가에 달려있다. 구원받는 기본적인 요인은 피이다. 이는 당신 자신과 근본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다.

 

은혜를 입고 구원 얻은 사람인 우리들은 다 피로 구속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피가 당신을 구속한 즉시로 당신은 몸을 움직여 집을 나서야 함을 기억하기 바란다. 당신이 보혈로 구속된 후에 집을 한채 사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피로 인해 구원을 얻은 사람은 누구나 그날 저녁에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밤이 되기 전에 어린양을 잡고 우슬초로 피를 바르고 나서 속히 음식을 먹어야 한다. 속히 떠나야 하기 때문에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먹어야 한다.

 

구속의 첫 번째 결과는 바로 분별됨, 곧 나오는 것이고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어떤 사람을 구속하신 뒤 그를 낡은 위치에 남겨 두고 세상 안에서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시지 않는다. 결코 이런 일이 없다. 거듭나고 구원받은 사람은 즉시 지팡이를 손에 잡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멸망케 하는 사자가 구원받은 사람과 멸망 당할 사람 사이에 구분하는 일을 할 때 당신은 즉시 나와야 한다. 멸망케 하는 사자가 당신을 분별할 때 당신은 즉시 몸을 움직여 애굽에서 나와야 한다.

 

지팡이는 길을 걷는 데 사용되는 것이다. 지팡이를 가지고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팡이는 베개가 아니라 길을 가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어른이나 어린아이를 막론하고 구속된 사람은 누구나 구속받은 날 저녁에 지팡이를 쥐고 나가야 한다. 언제든지 피로 구속될 때 그는 곧 이 땅에서 거류하는 나그네가 되어야 한다. 언제든지 애굽에서 나올 그때에 즉시 세상과의 구분됨과 나뉨이 있어야 하고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지 말아야 한다.

 

주일 학교 집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 자매가 있었다. 한번은 그녀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들에게 나사로와 부자 중에서 누구를 택하겠느냐고 물었다. 부자는 현재 복을 누리고 장래 고통을 받는 자이고 나사로는 현재 고통을 당하고 장래 복을 받는 자이다. 여러분은 누구를 택하겠는가? 여덟살 가량된 한 어린 자매가 일어나서 "나는 살아있을 때 부자가 되고 죽은 후에는 나사로가 될래요."라고 말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다. 이는 곧 내가 구원받은 필요가 있을 때에는 어린양의 피를 의지 하지만 어린양의 피가 나를 구원함으로 인하여 나는 더 온당하게 애굽에 거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둘다 소유하려고 한다.

 

피의 구속은 세상에서 당신을 구출해 내는 것임을 기억하라. 당신이 피로 구속함을 받은 즉시 당신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로 변한다. 이는 당신이 세상에 살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당신과 세상 사이에 즉시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구속이 있는 곳에는 항상 이런 상태가 산출된다. 언제든지 당신이 구속을 받을 때 당신은 당신의 길이 바뀌어졌으므로 반드시 세상을 떠나야 한다. 그러므로 피의 나눔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나눔이고 또한 세상 사람과 하나님의 자녀들을 나누는 나눔이다. 당신은 더 이상 세상에 있을수 없다.


B. 바로가 여러 면으로 못가게 하고 어려움을 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애굽에서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볼수 있다! 왜냐하면 애굽이 그들을 붙잡고 놓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가려고 할 때, 바로는 어린 아이와 늙은 자들을 남겨 두고 강한 자들만 나가도록 허락했다. 바로는 늙은 자와 어린아이를 남겨두면 강한 자들이 멀리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 오게 될 것을 알았다. 사탄의 궤계는 항상 우리가 애굽과 철저히 나뉘어 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모세는 처음부터 바로의 만류를 거절했다. 이는 만일 당신이 한가지 물건이나 한 사람이라도 남기고 데려가지 않는다면 멸리 가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바로가 모세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하라. 너희는 애굽에서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광야로 가지 말라. 그런 다음에는 멀리 가지 말라고 그들에게 권했다. 세 번째는 너희 강한 자들만 가라고 말했다. 네 번째는 모든 사람이 다 갈수 있으되 소와 양들을 남겨두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의 길은 그들로 애굽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 사람은 간증이 없게 됨을 안다. 그는 만일 사람들이 애굽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들이 또한 바로를 섬겨야 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도 되어야 하고 사탄의 종도 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면 당신은 분명히 사탄을 위해 벽돌을 굽는 사탄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신을 놓아 주려고 하지 않는다. 놓아 준다 해도 너무 멀리 가지 못하게 한다. 놓아 준다 하더라도 강한 자만 가게 하고 나며지 사람들은 여전히 애굽에 남겨 두라고 한다. 바로는 마태복음 6장의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다. 보물과 사람과는 연결되어 있다. 그는 만일 누가 소와 양을 두고 가면 그 사람이 멀리 가지 못하고 얼마 지난 뒤 다시 소와 양을 좇아 돌아올 것을 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소와 양들로 사람을 따르도록 했고 보물에서 구원을 얻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은 후 당신은 애굽에서 나와 광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 전부 데리고 나와야 하고 모든 재물을 전부 가져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 애굽에 머물게 되고 애굽과 분별이 없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인 우리들이 반드시 세상과 분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C. 우리의 길은 광야에 있다

 

단지 입으로 주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입으로 "오늘 나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다."라고 간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당신 자신이 반드시 그들 가운데서 나와서 분별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보다 더욱 진보된 것이다. 벙어리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아야 하지만 그러나 말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당신은 반드시 세상 사람과 분별되어야 한다. 당신은 과거의 친구와의 인정과 과거의 관계를 유지 할 수 없다. 당신은 오늘 주 안에 있는 당신의 위치를 귀히 여김으로써 과거 당신의 위치에서 멀리 떠나야 함을 보아야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들에서도 나와야 한다. 아마 사람들은 당신을 어리석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귀담아 듣지 말라. 당신은 오늘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 당신과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로 당신과 나의 길은 애굽에 있지 않고 언제나 광야에 있다.

 

신약의 말씀에 따라 말한다면 애굽은 세상을 대표하고 광야도 세상을 대표한다. 애굽은 도덕적인 세상 곧 도덕적 의미가 있는 세상을 가리킨다. 광야는 물질적인 세상 곧 실질적인 세상을 가리킨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실질적인 세상 안에 있지 도덕적인 세상 안에 있지 않다. 우리는 세상이 두 종류로 나뉨을 보아야 한다. 하나는 장소를 말하고 하나는 조직을 말한다. 많은 것들이 이 조직적인 것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보기에 좋은 것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과 허영심을 갖게 한다. 이것이 애굽이다. 세상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의미는 거하는 장소, 곧 물질적인 세상이다.


D. 도덕적인 세상을 떠나야 함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세상의 제도, 이 세상의 조직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물질적인 세상이 아닌 도덕적인 세상에서 벗어남을 가리킨다. 우리는 장소인 면의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인 면의 세상을 벗어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의 광야이다.

 

우리에게 세상은 무엇인가? 펜톤(D.M. Panton)은 한마디 좋은 말을 했다. "내가 살아 있을 때 세상은 하나의 길이고 죽을 때는 하나의 무덤이다." 믿는이들이 이땅에 살아 있을 때 세상은 하나의 길에 불과하고 죽을 때에는 그가 묻힐 하나의 무덤에 불과하다. 우리는 반드시 세상 사람과의 분별이 있어야 한다. 세상 사람이 볼 때 당신은 광야에 있는 사람이요 나그네 된 자이다.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세상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E. 세상에서 우리는 기거하는 자요 나그네 된 자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기거자요 나그네 된 자임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 도덕적인 세상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나온 자들이다.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우리를 머물게 하려고 한다. 만일 당신이 그 안에 머문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을 좀더 가까이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을 조금 더 가까이할 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들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남겨 두고 재물을 남겨 두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단 남겨 두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 이후로 우리의 얼굴은 약속의 땅을 향해야 하고 우리는 세상과 분별되어야 한다. 그 분별의 근거는 바로 피이다. 피가 당신을 산 것이다. 피에 의해 사신 바 되지 않은 사람은 애굽인들이고, 구속받지 않은 자들은 세상 사람들이다. 구속된 사람은 다른 세상의 사람이 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상을 벗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시계 점포에 가서 시계를 샀다고 하자. 시계를 산 후에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사고 난 후에 떠나는 일이 생긴다. 나는 시계를 산 후에 거기 두고 주인에게 쓰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사는 것이 곧 떠나는 것이다. 사는 일이 발생하는 곳에서 떠나는 일도 발생한다. 오늘 내가 쌀 가게에 가서 쌀 한가마를 산다면 이 한 가마의 쌀은 점포를 떠나게 된다. 사는 것은 곧 떠나는 것이다. 그분에 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떠나야 함을 기억하기 바란다. 사람이 주님의 피에 의해 사신 바 될 때 즉시 약속의 땅으로 가야 한다. 한 사람이 사온 바 될 때 그는 떠냐야한다. 사온 바 되지 않은 사람은 나올 필요 없고 일단 사온 바 된 자는 다 나와야 한다. 사온 바 된 사람은 주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내가 주님에 의해 사온 바 되었다면 즉시 세상을 떠나 주를 좇아가야 한다.


II. 어떤 일들에서 세상과 분별되어야 하는가

 

세상과 분별되어여 할 일들

 

아마 여러분은 우리가 어떤 일들에서 나와야 하고 어떤 것들이 세상으로 계산되고 어떤 일들에서 세상 사람과 분별이 있어야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이것을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영이 먼저 세상에서 나와야 함을 보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여전히 세상에 속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아래 일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백가지 일에서 떠났다 할지라도 당신 자신이 아직 세상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들을 벗어나는 것은 차후의 일이고 사람의 벗어남과 영의 벗어남과 마음의 벗어남이 우선되어야 한다.

 

아무튼 그 사람 자체가 철저히 애굽에서 나오고 세상과 분별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두렵지 않다. 그런 다음 우리는 처리의 원칙을 가져야 한다. 어떤 일들에서는 세상 사람과 분별이 있어야 하고 어떤 일들에서는 세상 사람과 화목을 유지해야 한다. 고의로 사람들과 문제를 삼지 말아야 한다. 가정에서든 사무실에서든, 어디에서나 우리는 사람들과 다툼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다섯가지 일들을 언급하겠다.


A. 세상사람이 그리스도인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

 

여러분은 세상 사람이 그리스도인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에서 모두 떠나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세상 사람이 되는 데서 시직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각각 어떤 기준이나 표준을 정한다. 만일 당신이 이런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다면 당신은 끝난 것이다. 당신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도 이런 일을 하느냐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그러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끝난 것이다. 당신이 이방인에게 발견되어 그가 당신에게 "당신 그리스도인도 이런 장소에 오십니까?"라고 말한다 하자. 이방인들은 많은 장소에 간다. 만일 당신이 그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말한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옳다고 말할 것이다. 어떤 일들은 죄이다. 그가 그 일을 할 때는 그가 말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것을 행할 때에는 그가 당신에 대해 말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인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들을 행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이다. 이방인이 당신 그리스도인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하는 일들에서 우리는 떠나야 한다.

 

어떤 청년들은 구원 받았지만 부모가 아직 구원을 받지 않았다. 때로 이 자녀들은 집에서 어떤 것들을 요구하는데 부모들은 주 예수를 믿는 너희들도 이런 것들을 요구하느냐고 말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그리스도인의 행위가 이방인의 교정을 받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다. 아브라함이 거짓말을 함으로 아비멜렉의 책망을 들은 것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방인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세상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기고 애굽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기는 일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


B. 주님과의 관계가 일치되지 않는 일들

 

또한 어떤 일들이든 당신과 주님 사이의 관계를 일치되지 못하게 하는 것들도 제거해 버려야 한다. 이 세상에서 주님은 수치를 당하셨으므로 우리는 여기서 영광을 얻을 수 없다. 이땅에서 주님은 강도와 같이 못 박히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사람의 환영을 받아서는 안 된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서 행하실 때 귀신 들린 자라는 훼방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매우 사상이 있고 총명한 자요 가장 이성이 있는 자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주님이 거치신 길은 또한 우리가 거쳐야 할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일치되지 않은 일들을 다 제헤 버려야 한다.

 

주님은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마 10:24)라고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이 우리 주님을 이렇게 대하였으므로 그들이 우리를 달리 대하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우리 선생을 이렇게 대하였으므로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달리 대하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렇지 않다면 우리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우리와 주님 사이에는 분명 뭔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의 어떠하심을 따라 그분을 좇아 가야 한다.

 

나사렛 사람 예수를 따르는 자들인 우리는 영광을 얻는 사람들이 아니라 수치받기로 예비된 자들임을 보아야 한다.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비된 자들이다. 사람이 주님을 처음 만날 때 주님은 그에게 그분을 따르려는 자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신이 주님께로 오기 전에 주님은 이미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주님이 당신을 오라고 하신 것은 십자가를 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우리가 걷는 길은 바로 이 길이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주를 좇을 수밖에 없다. 주님의 세상과의 관계는 곧 당신의 세상과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주님과 일치된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달라서는 안된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은 십자가가 세상과 주님 사이에 서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쪽은 주님이고 다른 쪽은 세상이며 중간에는 십자가가 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십자가를 사용하는 것이다. 세상은 나의 주님에게 십자가를 주었기 때문에 세상은 십자가 저편에 있다. 오늘 내가 주님 편에 서 있은즉 나는 십자가를 거쳐야 세상으로 갈수 있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하나의 사실이자 또한 하나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설 수 없다. 나는 사실도 역사도 없앨 수 없다. 세상은 십자가에 내 주를 못 박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 갈 수 없다. 만일 십자가가 사실이라면 세상의 못 박힘도 내 몸에서 영원한 사실이다. 십자가를 없앨 수 없다면 십자가에 못 박힌 세상도 없앨 수 없다. 오늘 십자가가 제해지지 않는 한 나는 세상 쪽으로 갈 수 없다. 더욱이 나의 주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나는 십자가를 그냥 넘어 갈 수 없다. 오늘 나는 이미 십자가 이편에 있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부모나 형제가 피살되었는데 살인한 그 사람이 사과하러 온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람이 이미 죽었는데 또 무슨 사정을 말하십니까? 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무슨 말을 해도 다 좋겠지만 사람이 이미 죽었는데 말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같은 원칙으로 십자가가 여기에 있는 데 또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세상이 나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이제 내가 주님 편에 서 있으므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세상아, 너는 네 위치에 서서 나를 쳐다 보라.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내가 서 있는 이 위치에서 볼 때 너 역시 십자가에 못박혔다. 이제 양편은 서로 교통을 가질 수 없다. 너는 내게로 올수 없고 내가 네 쪽으로 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십자가는 변함없는 사실이다. 만일 내가 십자가를 취소시킬 수 없다면 세상 또한 내게로 가져올 수 없다. 나의 주님이 이미 죽으셨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

 

당신은 십자가를 볼 때 십자가를 자랑으로 삼는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에 대하여 세상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고 또한 세상에 대하여 나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이다. 아무튼 십자가는 역사요 십자가는 사실이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신은 이편에, 세상은 저편에 있고 중간에는 십자가가 있다. 당신의 눈을 떠서 보는 것은 십자가이다. 세상을 보기 위하여 당신은 반드시 먼저 십자가를 보아야 한다.

 

새 신자인 형제는 반드시 주님에게 이끌리어 주님의 상태가 곧 그의 상태임을 보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많은 질문을 제기 한다. "이 일을 행할 경우 세상을 접하게 되지 않나요? 그 일을 해도 되나요?" 우리는 그에게 하나의 원칙을 줄 수 있을 뿐 한가지 한가지를 다 말해 줄 수는 없다. 세상과 십자가는 상반되고 세상은 나의 주와 상반된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의 마음이 열려 있고 하나님 앞에서 강퍅하지 않다면 주님 앞에 나갈 때 이 두가지의 차이를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무엇이 세상이고 무엇이 세상이 아닌가? 당신이 주님 앞에 나가기만 하면 그것을 알게 된다. 당신은 다만 한 마디 곧 이 일에 있어서 나와 이 땅에 계셨던 주 예수와의 관계는 어떠한가를 물어보면 된다. 당신과 세상 사람과의 관계가 주님과 세상 사람과의 관계와 동일하기만 하면 된다. 만일 당신의 위치가 주 예수의 위치와 다르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린양은 죽임을 당하셨다. 어린양을 따르는 우리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 하든지 따라가야 한다.(계 14:4)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이 위치에 서 있다. 무릇 주님과 같은 위치에 서 있지 않고 주님의 위치와 상반된 것은 다 세상이므로 반드시 그것을 벗어나야 한다.


C. 우리의 영적인 생명을 소멸시키는 모든 일들

 

세상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끝이 없기 때문에 한가지 한가지를 다 지적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한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붙잡을 수 있다. 이는 곧 당신의 주님 앞에서의 영적인 생명을 소멸시키는 모든 것들이 바로 세상이라는 것이다. 만일 어떤 일이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이다. 만일 어떤 일이 당신에게서 하나님의 밀씀을 읽는 취미를 사라지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이다. 만일 어떤 일이 당신으로 하여금 사람 앞에서 입을 열어 간증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이다. 만일 어떤 일이 당신으로 하여금 주님 앞에 나갈 때 간격을 느끼게 하거나 죄를 자백할 필요를 느끼게한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이다. 세상은 곧 나를 냉담해지게 하고 위축되게 하며 주를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식어지게 하는 그런 공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광범위한 원칙을 얻는데, 곧 하나님 앞에서 나의 영적인 상태를 가라 앉게 하는 것이 바로 세상이다. 그런 것들은 반드시 거절해야 한다.

 

아마 어떤 사람은 어떤 일에 조금도 죄가 없는데도 세상적인 일이라 계산할 수 있느냐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이 볼 때 많은 일들이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을 또다시 행했을 때 내 속에 있는 불결이 타오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양심이 약하게 된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서 성경을 읽으면 입맛이 없다. 읽을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읽히지를 않는다. 이런 일을 하고서 사람 앞에서 간증할 때에 할 말이 없고 속이 공허하다. 그러므로 문제는 죄가 있는가 없는가에 있지 않고 그 일이 나의 영적인 생명을 소멸시키는가의 여부에 있다. 나의 영적인 생명을 소멸시키는 것들은 모두 세상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거절해야 한다.


D.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것들

 

또 한가지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은 바로 인사(人事)적인 문제이다. 어떤 사교나 왕래나 연회이든지 우리의 등불을 말 아래 두게 하는 것들은 다 세상이다. 친분이나 연회나 인사에 있어서의 왕래와 같은 이 많은 사교들은 당신의 빛을 말 아래 두게 하고 당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못 나타나게 한다. 그들이 거기서 말하고 있을 때에 당신은 예의 있는 체 하면서 그들의 말을 듣고 또 웃어야 한다. 당신 안에서는 억압을 느끼는데 얼굴에는 미소를 띠어야 하고 안에서는 세상임을 느끼면서도 밖에서는 그것에 동의를 표해야 한다. 속에서 그것이 죄라고 느끼는데도 밖에서는 옳다고 말해야 한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서 사람과 왕래할 수 없다.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바로 사교 곧 사람과의 왕래에서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여 점점 사람들에 의해 세상에 끌려간다.

 

그러므로 갓 믿은 지체들은 처음부터 여러분의 위치를 분명히해야 하고 여러분은 선택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고의로 사람들과 왕해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침례자 요한이 아니라 주님을 좇는 자로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과 왕래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위치를 지켜야 한다.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존중할 수 있을 뿐 범할 수는 없다. 내가 그리스도인의 위치에 설때 아마 사람들은 나에 대하여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반드시 그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참으로 세상과 분별된 길을 가고자 한다면 사람과 왕래할 때마다 반드시 나의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함을 주의해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인의 위치를 나타낼 수 없다면 갈라지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시편 1편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죄인이 가는 길을 간다면 언젠가 당신은 그의 곳으로 가게 된다. 만일 당신이 경건치 않는 사람들과 같이 서 있다면 언젠가 당신은 경건치 않음에 오염된다. 죄악과 경견치 않음은 전염된다. 우리는 병균을 피하듯 이런 일들을 피해야 한다.


E. 약한 믿는이들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

 

또 한가지는, 만일 당신이 하는 일이 양심이 약한 사람을 넘어지게 한다면 그것도 세상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이런 것에서 떠나야 한다. 앞에서 우리는 세상 사람이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에 대하여 말했고 이제는 가장 연약한 그리스도인이 할 수 없다고 여기는 일에 대하여 말한다. 만일 당신이, 이방인이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일을 행한다면 곧 간증을 잃게 된다. 또한 당신은 가장 얕고 약한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된다고 여기는 일은 할 수 없다. 이것은 성경의 명령이다. 강한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일이 아닌 약한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일이다. 그 일 자체로 볼 때 그들이 말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양심이 약하기 때문에 그들을 실족케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당신을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는 그 행함은 그들을 실족케 한다.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일한 것이 아니요"(고전 6:12)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가하나 그들에게 세상으로 보이는 것들은 그들을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이 든 예는, 만일 고기를 먹는 것이 형제를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용이한 것이 아니다. 누가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을 수 있는가? 바울의 말은 고기 먹지 않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디모데서에서 그는 채식주의가 틀렸음을 특별히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그가 기꺼이 극단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바울 자신으로 말한다면 그는 고기를 먹든 먹지 않든 상관이 없다. 당신은 분별이 있겠지만 당신을 따르는 자들은 분별이 없다. 당신 자신은 어디에 이르러서 멈춰야 할 것을 알지만 당신을 따르는 자들은 몇 걸음 더 걸으면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른다. 당신은 고기를 먹어도 상관이 없겠지만 얼마 후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절에 가서 제사의 고기를 먹거나 우상을 숭배하러 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일들이 세상과 실지로는 관계를 갖고 있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들을 세상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III. 세상으로부터 나올 때 모든 것을 소유하신 주님에 의해 받으신 바 됨

 

고린도 후서 6장 17-18절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고린도 후서 6장에 이르기까지 신약 전체에서 이곳에서 처음으로 '전능하신 주'를 언급했다. 이 '전능하신' 주님은 곧 '엘샤디아(Elshadia)'로서 '엘(El)'은 하나님이고 '샤(sha)'는 어머니의 가슴 혹은 젖이고 '샤디아(shadia)'는 젖이 있음이다. 히브리어에서 '샤디아'는 모든 것을 소유하다는 뜻이다. 모든 구약에 언급된 '전능하신 하나님'은 다 '엘샤디아'이므로 마땅히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어머니의 젖은 자녀의 필요이다. 어머니의 가슴에 젖이 있다는 것은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공급이 다 그 안에 있다는 뜻이다. '샤디아'의 어근은 어머니의 가슴으로서 모든 것이 다 있다는 뜻이다.

 

고린도 후서 6장 17절은 "너희가 저희 중에서 나와서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단지 입으로만 말한 것이 아님을 보았는가?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위하여 많은 것들에서 떠나고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며 관계를 끊어버리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며 너희 두 손이 비어서 아무 것도 없을 때 내가 너희를 영접하리라"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주님의 영접하심을 느끼는 사람은 모두 세상과 분별된 사람임을 기억하라.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서 주님을 보배로 느끼지 않는 원인은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땅의 것들을 보배로 삼는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영접하심을 모르고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인 것과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모르며, 또한 이 말을 하신 분이 모든 것을 소유하신 주이신 것을 모른다. 당신은 이 말의 특별함을 보았는가? 이런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전능하신 하나님이 라는 단어가 유용하다. 나는 모든 것을 버렸으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필요하고 한 아버지가 필요한데 그는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시편은 우리에게 "부모가 나를 떠날 때 여호와가 나를 영접하신다"고 말한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시편에 또 이런 말씀이 있다. "내 마음이 쇠잔할 때 주는 내 마음과 육체의 힘이라."(시 73편).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모든 맛이 여기서 나온다. 여러분은 한쪽의 것을 버려야 다른쪽의 것을 얻을 수 있다. 눈 먼 장님은 회당에서 쫓겨난 후에 주님을 만났다. 만일 당신이 여전히 회당 안에 있다면 당신은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만일 우리가 밖으로 쫓겨난다면 우리에게 주님의 축복하심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 신자들은 세상으로부터 나와야 주의 달콤한 맛을 맛볼 수 있다. 그쪽의 것을 내려놓을 때 이쪽에서 주님을 맛보게 된다.


워치만 니
[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 "세상과의 분별", 한국복음서원]